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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07/29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 장마 속, 순천만

더운 것만 생각하고, 장마를 미처 생각 못 한 채로, 순천으로 향했다. 중간에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그래도 달리고 달려, 강도 산도 바다도 아닌 습지에 도착했다. 


순천만습지. 언젠가부터 한번 가보고 싶던 그 도시에 들어서자, ‘대한민국생태수도 순천’이라는 입간판이 올 곳에 온 것을 확인시켜 준다. 예약한 숙소에서 잠시 기다리는 사이 프랑스에서 온 단체 청년이 우르르 현관을 통해 들어왔다. 요즘은 내가 처음 가는 곳에서 외국인을 먼저 만난다.

가고 싶은 곳은 순천만습지와 언젠가 잡지에서 본 매혹적인 옛 담 모습을 지닌 순천낙안읍성이다. 순천에 갈 곳도 많고 먹을 것도 많지만, 이 두 곳은 우선 보고 싶었다. 

밤새 쏟아지던 비가 걷히니 거리는 더욱 깨끗해진다. 지역 인사의 조언을 받아, 순천왜성-순천만국가정원-순천만습지-순천낙안읍성을 둘러보기로 당일 일정을 정했다.

순천왜성은 조선시대 성으로 임진왜란 당시 왜장이 쌓은 성이라 해서 순천만 가는 길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왔다. 고립될지 우려될 정도이기에 주차장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비교적 이른 아침임에도 이미 구경을 마치고 비탈길에서 내려오는 한 무리의 일행을 본다. 비 사이로 길을 떠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구나! ‘모든 것은 계속될 뿐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순천만국가정원에 입장했다. 사전 지식 없이 정문을 통과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넓고 쾌적한 별천지가 펼쳐진다. 마치 경주의 고분을 연상시키는 구릉과 구릉이 연결된 독특한 구조는 일상과 단절된 초월적 감각을 선물한다. 그곳에서 호수를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니, 순천만국가정원으로부터 순천만습지를 이어주는 ‘스카이큐브’ 타는 곳이 나타났다.


스카이큐브란, 정원역에서 출발해 순천만역까지 4.62km의 구간을, 지상 3.5m에서 10m 높이의 레일을 따라 이동하는 소형무인궤도차이다. 키오스크로 표를 발급받아 안내에 따라 탑승하였다. 공중 레일 위를 달리는 기분은 무섭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종착역에 내려 안내판을 보니, 50m 앞에 순천문학관이 있다.

애호가의 마음으로 굳이 습지 탐방에 앞서 문학관에 들렀다. 순천문학관은 김승옥 소설가와 정채봉 동화작가의 기념관을 중심으로 초가 마을 형태로 조성되어 있었다. 두 작가 관 각 초가의 마당에는 꽃밭과 장독이 있다. 순천에서 종종 아담한 장독대를 보는데, ‘흙이 흐르는 길’을 본 듯이 심금을 울린다. 

전시관으로 꾸며진 초가의 방은 문학가의 작품, 활동, 업적 등이 잘 진열 소개되어 있다. 과하지 않게 냉방까지 유지되고 있어, 구석구석 잘 다듬어진 한국의 문화 역량과 지역문화 사랑을 실감한다.

김승옥 작가의 연보를 보니 아버지가 여순사건으로 사망했다는 부분이 있다. 단어 일부분을 흰 종이로 덧붙여 수정한 것이 보이는데, 아마 여순사건의 일부 용어를 지운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추측하였다. 

관광지도에는 나오지 않지만, 숙소로 걸어가는 길을 인터넷 지도로 보니 가까운 곳에 ‘여순항쟁역사관’이란 곳이 있었다. 당도해 보니 공공시설물은 아니고, 상가라인의 한 점포 같은 곳에 유리 외관의 닫힌 문 앞이었다. 

하얀 종이에 ‘기억하는 자들이 사라지면, 역사는 왜곡된다.’ ‘여순항쟁역사관, 순천유족회 방문안내, 전화번호,’ ‘전국에서 많은 분이 오시니 예약해서 안내를 받기 바란다.’ 등의 안내문이 쓰여 있다. 그러나 전화 연락은 되지 않았다. 모처럼 현지 방문으로만 들을 수 있는 육성을 기대했는데 이루지 못했다.

순천문학관을 둘러본 후 다시 ‘갈대열차’라는 이름의 교통약자를 배려한 개방형 전기 관광버스에 탑승하여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순천만습지에 도착하였다.

그 아름답고 싱그러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내가 본 장마철에도 좋았지만, 다른 관람객에게 물으니, 매해 가을에 순천만 갈대축제가 있듯이, 가을에 진짜 멋있다고 한다.


관광안내서의 ‘광활한 갯벌과 바람에 일렁이는 황금빛으로 물든 갈대밭은 여행자를 가장 설레게 한다.’라는 문구가 새삼스럽다. 한국은 명소를 볼 때마다 ‘다른 계절은 어떨까, 춘하추동 더 다르게 멋있겠지?’ 하는 생각이 매번 든다. 소위 ‘찍는 곳마다 화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뿐이다.

다음은 가고 싶은 목록 2위인 낙안읍성으로 달려갔다. 길이 생각보다 멀고 (순천만국가정원으로부터 19.9km) 다소 굴곡져서 놀랐으나, 그만큼 순천이 넓은 곳이라고 한다. 

읍성 입구 앞 광장에서 ‘낙안 3.1 독립운동기념탑’과 태극기를 흔드는 만세 운동 모형을 보았다. 바람 따라 밀리면서도 장마 후 더욱 깨끗해지는 순천만의 싱그러운 갈대 풍경처럼, 낙안읍성 앞 태극기의 펄럭이는 물결은 새로운 순천(順天)의 샘솟는 초록 갈대로 이어져 겹쳐지며 함께 펄럭인다. 

낙안읍성은 원형이 남아있는 현존 조선시대 대표적인 읍성으로, 읍성 안 민속촌에 실제 주민이 거주하는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이다. 다양한 민속, 민박 체험도 가능하고, 대장금 등 많은 사극 드라마를 촬영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번 순천 방문은 순천만과 낙안읍성을 먼저 방문했지만, 지역민은 송광사나 선암사, 혹은 ‘순천드라마촬영장’이나 행동의 ‘문화의 거리’ 방문을 적극 추천하였다. 그중 ‘문화의 거리’를 들러, 전통주머니 전시회 등 여러 갤러리의 훌륭한 전시회를 보고 문화거리 특유의 감성을 느끼고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순천역 가까이에 있는 예전 양곡창고를 청년 창업의 장으로 재활용한 청춘창고 공간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 이웃의 무인 호텔 입구가 매력적인 그림으로 잘 꾸며져 있어 가까이 가 보기도 하였다.

어디를 가든 모든 장소를 들를 수는 없는 법, 7월 중하순에 장마는 끝난다. 그렇게 조심하고 예방했는데 올해도 집중호우로 인한 일부 지역에서의 인명 피해 소식이 전해진다. 장마인 줄도 모르고 떠나온 짧은 이번 여행, 피해를 본 지역을 안타까워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애도를 표한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soonyoun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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