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원(武溪園)이라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려, 마을버스 타고 부암동 주민센터 앞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서울의 또 하나의 매력적인 전통 문화공간 무계원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세종대왕의 삼남이었던 안평대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종로구 부암동의 무계정사지(武溪精舍址)에 조선 말기 서화가 이병직의 집이었던, 익선동 상업용 한옥 오진암(梧珍庵)의 자재를 옮겨와 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탄생한 곳이다.
무계정사지는 1447년 안평대군이 화가 안견에게 꿈에 본 무릉도원을 묘사하여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했는데, 그 후 이 동네를 지나다 이곳이 그 꿈속의 풍경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 정자를 지어 시를 읊으며 활을 쏘았다고 전해지는 장소이다. 현재 무계원은 전시, 교육,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공간이며 상설로 한 동에서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전시하고 있다.
근년 강원도 내륙의 산골이나 울릉도 산속에서 나름 무릉도원이 이런 곳이구나 했던 기억이 있다 보니, 무계원에 전시된 몽유도원도의 도원경이 단순히 남의 그림 같지 않았다.
안평대군의 꿈속 이야기를 속닥속닥 듣는 기분으로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감상하였다. 그러나, 이 무계원에 전시된 몽유도원도는 복사본이며 원본은 일본 나라현에 있는 덴리(天理)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2025년 3월, 무계원 행랑채 아담한 온돌방에서 3D 몽유도원 영상과 신숙주, 박팽년 등 22명의 15세기 문사의 안견 몽유도원도에 대한 감상을 직접 적은 두루마리 영인본 몽유도원도를 보면서 이 귀한 몽유도원도 그림과 명필들의 글씨가 일본에 있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하게 되었다.
문화재의 소유권 논쟁과 관련하여 ‘문화 국가주의’(cultural nationalism)와 ‘문화국제주의’(cultural internationalism)가 구분된다. 문화 국가주의는, 한 국가의 문화재는 그 문화재를 창조한 국가에 귀속한다는 개념으로 원산지 국가로의 반환이 주장의 핵심을 이룬다. 반면, 문화 국제주의는 문화재가 특정 문화나 국가의 소유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것이라는 입장이다.
원산지 국가가 아니더라도 문화재를 유지하고 보존할 더 나은 환경의 국가가 문화재를 소유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위키백과, ‘문화재 반환’) 이런 논의를 참조로 둘러보면, 2025년의 한국은 문화재를 잘 보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나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원한다면, 탈취된 문화재는 당연히 원산지인 한국으로 반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환수하기 위해서는 500억원의 비용이 예상된다는 언급도 있다. (‘몽유도원도 반환, 먼 미래 이야기 아니다’, 오마이뉴스, 2024. 07. 13)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거나 금액을 추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소 거리를 두게 된다.
문화재가 아무리 중요하지만, 현재 우리는 전 지구적 관점에서 과거의 보존보다는 현재의 가난이나 질병의 극복 같은, 사람 살리는 일에 동시적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세계 유명 박물관의 원산지 문화재는 잘 보존되어 더 많은 사람에게 보이고’ 그럼으로써 오히려 세계인에게 그 원산지에 대한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문화 국제주의 입장을 현실에서 인지하게 된다.
2025년 3월 11일부터 2025년 4월 6일까지,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는 피바디 에섹스박물관 소장 ‘평안감사 도과(道科) 급제자 환영도’를 한국의 기술에 의해 8평 병풍으로 복구하여 전시하고 있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고 낱장이던 그림은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에서 전통 기법과 과학적 보존 기술에 의하여 마치 어제 그린 것처럼 생생하게 복원되었다.
병풍 속 군중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이 원래의 색감과 정교한 붓질로 재생되어 그 시대 대규모 연회의 면면이 오늘의 영상처럼 흥이 나게 재현된 것이 매우 흥미롭다. 피바디 에섹스박물관 소장 ‘활옷 (여성 혼례복)’도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에서 보존 처리하여 함께 선보였다. 이 복원된 작품들은 본 전시회가 끝난 후, 다시 미국으로 보내져 2025년 5월 개관될 피바디 에섹스박물관 한국실에서 소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처럼 국외 반출된 우리 문화재를 한국의 보존 기술로 복원하고 그 유물을 교류 전시한다면 실질적으로 우리는 그 문화재의 창조자로서 유물의 보존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단의 이러한 해외 우리 문화유산 보존 방식은 너무나 뜻깊은 활동으로 공감하며 감사했다.
덕분에 늘 미뤄두었던, 리움미술관 고미술전 상설전을 관람하였다. 가야, 신라시대의 금속 공예품, 고려청자, 조선백자, 그리고 신사임당작으로 전해지는 그림과 정조의 친필 등 정말 귀한 작품들이 공들여 전시되고 있었다.
어두운 박물관 실내에서 저 공예품을 빚어내고 그 유물을 쓰다간 사람들의 손길을 느낀다. 우리는 이렇게 같은 땅에서 만난 것이다. 같은 시간 다른 관람객들도 내가 좋아하는 고려시대 그릇을 보고 다들 정말 좋다고 입을 모은다. 다른 사람도 나 못지않게 내가 끌린 작품을 같이 좋아하고 나처럼 같이 연배가 푸근하다.
리움미술관을 나와 용산 근처 몇몇 갤러리를 들러 그림도 감상하고, 버스 정류장 앞의 공예품 전시관에 들러 자개로 된 열쇠고리 몇 개를 샀다. 친구로부터 요즘 한국에서는 열쇠를 안 써서 열쇠고리는 필요 없다는 평을 들었다. 그래도 미국이나 유럽 친구 선물로는 괜찮겠지.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soonyoun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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