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부터 두 무릎 수술을 하고 병가를 사용하며 집에서 요양 중이다. 무릎 수술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줄 알았더라면 아마도 수술을 피할 수 있는 방법들을 더 연구해보고 그대로 따라 했을 것이다.
물론 그동안 줄기세포 치료, 한의 치료, 물리치료 다 해보았지만… 다리의 무릎을 절단하고 티타늄으로 무릎을 만들어 새로 끼워 넣은 것이니, 아프지 않으면 이상한 거지!
새로운 티타늄이 내 다리의 살과 신경들과 어우러져 정상적으로 자리를 잡기까지, 아물어야 하는 과정은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그리고 통증제가 마약성 성분들이 주종이라, 이 역시 부작용이 여간 많은 게 아니다. 무릎 수술받고 한 달부터는 약물에 의한 우울증과 고립감에서 벗어나고자 무던히 노력을 했다.
첫 번째로 직장 동료들과 매일 하루에 한 번씩 통화를 하며 직장의 사정이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일에 대한 결정을 하는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감사하게도 오랫동안 일을 하면서 동료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어서 가능했다.
“사무실에 레지나가 없으면 일하는 게 재미없다”는 동료들의 고백도 있었고, 또한 우리를 찾아오는 정신이 불안한 고객들, 중독자 또는 홈리스 가족들의 사랑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아마도 나의 오픈 마인드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가능하면 더 따뜻하게 도울 수 있는 길을 찾다 보니,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그들의 가슴을 편안하게 해주지 않았나 싶다.
물론 동료들에게는 그룹의 리더로서 이들이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려고 노력했다. 가끔씩 팀 멤버들을 데리고 나가 점심을 사주기도 하고, 직장 동료들의 가정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꽃다발과 위로의 카드를 보내주었다.
가족 중 누군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동료에게는 케어 패키지를 준비해 맛있는 초콜릿, 과자, 작은 책 등을 넣어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그 동료가 돌아와서는 그 작은 사랑에 감동해 한바탕 울어버리곤 했다. 우리 직장 내 우리 팀은 29명, 전체 직원 1,000여 명 중에서도 미국 전국에서 온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진 전문가들이다.
이들과 함께 20여 년간 일해 올 수 있었고, 한국인으로서 리더십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나의 특별한 점이었다.
한국인, 크지 않은 키의 작은 여성, 미국인이 아닌 한국 태생으로 영어가 조금 부족할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를 장점으로 잘 활용할 수 있었다.
우리 직장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직원 특별 회의를 하는데, 때로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어릴 때 좋아하던 노래나 영화 이야기를 돌아가며 나누기도 한다.
“가장 맛있는 브라우니(초콜릿)는 누가 만들었는가?” 같은 주제도 자주 나온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온 나는 이런 이야기를 잘 모를 때도 있지만, 당황하지 않고 어릴 때 들었던 한국 동요를 알려주고 불러주며 새로운 문화를 접할 기회를 주었다.
어릴 적 내가 좋아하던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노래는 우리 직원들이 나에게서 배운 애창곡이 되기도 했다.
직원들이 심슨 TV쇼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콩쥐 팥쥐’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는데, 이들은 “콩쥐 팥쥐가 미국의 신데렐라 이야기와 비슷하다”며 신기해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내가 속한 직장 단체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최선을 다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다.
세상엔 완전한 것은 없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
가끔씩 생각해본다.
40여 년의 미국 생활 중 내가 얻은 것들, 알고 있는 것들. 어쩌면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누구보다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의 다양성을 알고 있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그래서 그 정보들이나 필요한 아이디어를 누군가에게 제공하고 도와준 일이 30여 년 내 삶의 중심이 되었다.
그냥 도와주는 일이 사람들의 삶인데, 나는 그것을 직업으로 하고 있었으니 그 또한 감사한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때에 따라 지치기도 하고, 무작정 도움만 요구하는 사람들 때문에 머리가 아픈 일도 많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움에 감사하며 새로운 자리에서 새롭게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럴 때면 가슴이 뿌듯하다. 내게 주어진 일에서, 나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아이디어와 노력을 통해 세상에 힘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늘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번 무릎 수술을 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다 낫고 좋아진 후에는 혼자 사시는 분들, 주위에 아무도 없는 분들이 무릎 수술을 받을 경우 돌봐줄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야겠다는 것이다.
물론 메디케이드를 받으며 정부의 보조를 받는 분들은 케어기버를 배정받아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평생 일해왔음에도 돈을 많이 벌지 못해 모아둔 돈이 없고, 또한 매디케이드나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정도의 수입을 약간 넘어서 이런저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 있다.
이번에 내가 수술을 받고 집에서 병가를 하며 그런 상황을 충분히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그분들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게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여러 가지 구상 중이다. 이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들을.
지난해 5월 백악관에서 청소년 포럼이 있었다. 그 포럼에는 미국 각지에서 선발된 청소년 수백 명이 초청되었는데, 강사로는 미국에서 성공한 여러 훌륭한 사람들이 초청되었다.
그중 한 사람은 지금 LA 축구팀에서 주전으로 활약 중이며, 영국 토트넘에서도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손흥민 선수였다.
나는 손흥민 선수의 자기 일에 대한 열정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아주 좋아한다. 더욱이 손 선수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아버지의 철학 때문이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님은 당당하다. 이분의 말을 듣다 보면 그냥 힘이 생긴다.
“이 세계의 벽은 절대로 높지 않아. 자신감을 가지고 해봐!”
“가슴만 뛰는 축구선수가 아니야. 가슴하고 내가 함께 뛰어야 해!”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돼.”
“목적을 위해서는 투자해야만 해. 투자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거야.”
“전성기라는 말은 내려가야 할 때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떻게 내려갈지를 준비해야 한다.”
“스스로 철저히 관리하고, 개인이 가져야 할 책임감을 확실히 해야 한다.”
“집중해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다. 손흥민이 골을 넣었다고 해서 그 결과는 혼자 한 것이 아니다. 11명이 함께 만든 결과다.”
“그래서 늘 겸손해야 한다.”
“99% 노력과 1%의 운이다.”
“과거에 발목 잡히면 미래는 없다.”
위의 귀한 말들은 손웅정 님의 어록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분을 존경한다. 생각이 밝고, 늘 노력하며, 절망하지 않는 굳건함이 있다.
손흥민 선수가 백악관의 초청을 받고 고민을 많이 한 모습이 미디어에 나왔다. 자신이 그 초청에 응해야 하는가, 아니면 거절해야 하는가. 많은 고민을 하는 모습이었다.
혹시라도 현 미국 정부의 정치적 쇼에 자신이 꼭두각시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다. 팬들 역시 “정치에 휘말리지 말고 축구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손 선수가 13살에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연습생으로 지내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겪은 인종차별과 생활고, 질시를 똑같이 되갚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축구로, “골”로 답을 준 성실한 모습은 감동적이다.
많은 고민 끝에 손흥민 선수는 아버지와의 통화 후 이렇게 결정했다. “현 정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나를 초청했는지는 모르지만, 이 자리는 내게 주어진 기회다. 이 기회를 통해 아시안으로, 세계인으로 우뚝 서기까지의 노력이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인종이나 배경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볼 수 있는 시선을 만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청소년 포럼에서 손흥민 선수의 5분 연설은 이렇게 시작됐다.
“사람들은 제 개인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내가 게임을 할 때 ‘동양인’이라고 야유를 보냅니다.
그런데 나는 그들에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경기에서 골을 넣는 것입니다.
나의 에너지를 싸움에 쓰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경기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 모습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다르다고 틀린 것이 아닙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출 수는 없습니다.”
“유럽에서 뛸 때 사람들은 ‘키가 작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유럽 사람처럼 게임을 하고 유럽 사람처럼 행동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을 따라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나는 나답게 살아갈 것입니다.”
“내가 배운 것은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나처럼 그대로 살면서 경기와 삶에 임했습니다.
세상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은 ‘유니크하다’는 것입니다.
그 유니크함이 어우러지면 엄청난 조화의 세계가 됩니다.
다르다는 것은 특별함입니다.”
소셜워커, 워싱턴가정상담소 소장
이메일: regina.chae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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