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년간 나는 매년 많게는 수백 건의 사업 제안서를 검토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스탠퍼드 연구 단지에서 창업 인큐베이션 센터를 운영했으며, 그 후로도 개인 펀드를 통해 다수의 프로젝트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그중 일부는 수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성장해 상장되거나 높은 가격에 인수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왜?”라는 어리석지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한번은 그야말로 완벽한 조건을 갖춘 사업가에게 투자한 적이 있다. 창업자의 경력이나 사업 전략이 나무랄 데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조건들조차 사업의 실패를 막지는 못했다. 나는 돈만 잃은 것이 아니었다. 기회도 잃었다. 당시 그와 비슷한 또 다른 스타트업을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망설이다가 투자를 포기한 바로 그 회사가 요즘 흔히 말하는 대박을 친 것이다. 그렇다면 팀원들의 경력도 풍부하고 사업 계획서도 나무랄 데 없었던 그 회사는 도대체 왜 망했을까? 밤하늘에 빛나는 비즈니스 은하계에서 자신의 별이 항상 밝게 반짝이기를 원한다면 그 원인을 집중 탐구해볼 필요가 있다.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은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창업교육 센터인 와이 콤비네이터(Y Combinator)의 설립자다. 그는 자신이 창업을 도운 500개가 넘는 기업 중에 37개가 적어도 4,000만 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트위터에 올린 적이 있다. 그런데 와이 콤비네이터는 지원자 중 3~5%만을 선택한다. 즉, 500개 기업도 만 개가 넘는 기업 가운데 선택된 것이다. 결국 와이 콤비네이터에 사업 계획서를 들고 찾아간 수천 개의 스타트업 가운데 극소수만이 700만 달러의 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성장했거나 성공적인 출구 전략을 달성했다는 뜻이다.
유잉 매리언 카우프만 재단의 2012년 보고서에 따르면, 벤처 펀드 100개 가운데 공개시장등가를 뛰어넘는 수익을 낸 기업은 고작 20개뿐이었다. 100개 펀드 중 62개의 수익은 공개시장에서 얻는 수익만도 못했다. 그렇다면 스타트업보다 크고 견실한 회사들은 어떨까? 그들은 다를까?
설립된 지 100년이 넘은 시애틀 지역 사업체 세 곳의 이야기가 <시애틀 타임스>에 실린 적이 있다. 세 기업은 건축자재를 공급하는 뮤추얼 머티리얼스(Mutual Materials), 중장비를 취급하는 넬슨 트럭 운송(Nelson Trucking), 해양 시설물을 제작하는 맨슨 건설(Manson Construction)로, 모두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 위치한 기업이었다. 그들은 환경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기사에 따르면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았다.
1. 가족 구성원이 기업 업무에 계속해서 관여한다.
2. 자사의 핵심 사업에 충실하되 소비자 선호도를 반영한다.
3. 진보적인 기술을 도입한다.
4. 1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안정적인 경영이 이루어지며 부동산 자산 비율이 높다.
이 기업들이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같은 핵심적인 특징 덕분이었다. 오랜 세월 함께 일한 직원들은 마치 가족처럼 지냈고, 이 관계를 바탕으로 힘겨운 불황도 이겨냈다. 이 기업들이 경기 침체를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을 금융 자산보다 귀하게 여기는 경영 방침에서 알 수 있듯이 돈을 버는 데에만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이직률은 낮았고, 세 기업 모두 세대 간 다리를 놓는 일에도 능숙했다.
그러나 모든 대기업이 같은 운명을 맞이한 것은 아니다. 한때 유명했던 대기업 중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곳도 많다. 몽고메리 워드나 팬암, 엔론은 모두 미국을 대표하는 창의적인 기업이었지만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 RCA, TWA, MCI처럼 한때 매일같이 보이던 줄임말은 단어 목록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더욱 혼란스러운 사실은 수많은 대기업이 시장 여건이 가장 좋을 때 몰락한다는 것이다.
▶저자 이인 교수 소개 및 연재 안내
<저작권자 ⓒ 조이시애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www.joyseattle.com/news/45743
관련기사
Powered by Newsbuild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