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역시 비즈니스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다. AI는 전자 공학 분야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인공지능이 애완동물을 대체하는 날이 머지 않았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수리도 하고 글도 쓰고 장기를 두며 사람을 이기기까지 할 것이다. 아카데미 수상작 <그녀>에서처럼 실제 인간관계를 대신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은 배우고 성장할 수도 있다. 이쯤 해서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똑똑해질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이 언젠가는 인공지능보다 덜 똑똑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인공지능이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지 않을지 궁금하다. 이 게으름은 우리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일상 생활의 패턴을 바꿔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삶을 편하게 해주는 인공지능과 앱이 사람의 두뇌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일상에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GPS다. 10여 년 전만 해도 미국자동차협회(AAA)나 주유소에서 얻은 도로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거리를 가늠하고 도착 시간을 계산했던 운전자들은 네비게이션의 등장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가라는 낯선 목소리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시작했다. 옛날 방식으로 길을 잘 찾던 동네나 도시에서조차 습관적으로 네비게이션을 켠다.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왔거나 고장이 나면 집 전화번호도 생각이 나지않을 경우도 있고 지주 다니는 길도 잊게되어 길을 잃기도 한다. 우리의 뇌가 게을러진 것이다.
노래방 기계는 또 어떠한가. 누구나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운전 중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열심히 따라 불러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최소한 몇 곡은 곡조와 가사를 정확히 기억했다. 그러다가 노래방 기계가 나왔다. 노랫말이 차례대로 눈앞의 화면에 흘러갔다. 노랫말에 자신이 없어진 건 그때부터였다. 샤워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려고 해도 머릿속을 맴도는 노랫말은 쉽사리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노래방 기계가 없는 곳에서 누가 혹시 나에게 노래를 시킬까봐 걱정이 앞서게 된다.
이 같은 사례는 오늘날 우리의 두뇌가 게을러진 것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직감을 사용하지 않으면 비즈니스 감각도 잃는다. 삶을 더 편하게 해준다며 지름길을 제시하는 도구들이 도리어 우리의 기억력과 창조력을 퇴보시키고 있는 중이다. 인간을 태만하고 나태하게 만들어 뇌의 가장 뛰어난 영역인 상상력을 활용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용하지 않으면 퇴보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결과다.
나는 일을 하거나 글을 읽을 때 보통 안경을 쓴다. 수십 년 동안 매 3, 4년 마다 안경을 바꾸었는데, 안경을 새로 맞출 때마다 매번 검안을 하고 도수를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 불편했다. 그래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내 눈이 게으름을 피우는 건 아닌지, 눈이 자기가 할 일을 안경에 미루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던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안경에서 처방 받은 렌즈를 빼내고 도수가 없는 렌즈를 테에 끼워서 사용하기로 했다. 혹시 내 눈이 스스로 초점을 찾고 눈 근육을 강화시키지 않을까라는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나는 지금도 운전을 하거나 영화를 볼 때 약간이라도 흐릿하게 보이면 이 도수 없는 안경을 쓴다. 잘 보일 거라는 시그널을 뇌가 눈으로 보낼 거라 믿고 계속 뇌를 훈련시키는 중이다. 신경과학적으로도 내 실험이 완전히 터무니 없지는 않았다. 신경외과 의사이자 의학전문기자인 산제이 굽타(Sanjay Gupta) 에모리(Emory) 의대 교수는 시간이 다소 걸리긴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두뇌를 재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골프도 즐기는 편인데, 요즘에는 조금 더 정확한 거리를 계산하기 위해 많은 골퍼들이 거리 측정기를 필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정확한 게임을 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나는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일단 내 눈부터 튼튼히 만들고 감각 기관을 향상시키는 두뇌를 단련시켜보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또한 균형감각을 키우기 위해 간단한 집안일을 할 때 틈틈이 왼손을 쓰는 중이다. 지금까지 감각 지각 능력을 높이고 두뇌 운동도 시킬 겸 이 같은 소소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내 골프 점수는 여전히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친구들은 가끔 나의 엉뚱한 발상에 대해 놀리기도 한다. 이를 테면 나는 리모콘의 발명이 비만의 주범이라고 생각하는데, 리모콘이 소파에서 일어나 TV까지 오가는 동안 칼로리를 소비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간다는 논리에서다. 온종일 푹신한 소파에 쭉 뻗고 기대 앉아 한 손에 리모콘을 든 채 온갖 종류의 정크푸드를 먹으면서 TV 채널만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당연히 살이 찌지 않았겠느냐는 주장이다.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많았던 청소년 시절, 라디오는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드림박스였다. 나는 라디오를 늘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드라마, 스포츠, 콘서트, DJ의 팝송 프로그램을 주로 들었는데 특히 드라마를 들으며 머릿속으로 온갖 상황을 상상하는 재미가 당시엔 큰 낙이였다.
하지만 TV 시대가 도래하면서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훨씬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상상력이나 IQ가 점점 감퇴하는 기분이 든다. 컬러 TV와 인터넷, 스마트폰 시대를 거쳐 AI가 사람을 대신해 주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지금, 모든 인간이 바보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섬뜩한 생각이 든다.
성공적인 기업을 일구는 과정에서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리모콘은 없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뇌와 의지력이다. AI가 인간의 일상 생활을 점령하는 시점이 오더라도 결국은 우리가 해야 할 몫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저자: 이인 교수, 시애틀에 거주하는 한인 벤처캐피털리스트 겸 싱가폴국립대학(NUS) 경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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