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베이션, 즉 혁신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도록 만드는 건설적인 충돌의 산물이다. 물리학자 윌리엄 폴라드는 "배움과 혁신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어제의 것으로 내일도 충분히 버틸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성공한 자의 오만"이라고 했다. <걸리버 여행기>로 유명한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 역시 "진정한 비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기술"이라고 했다. 기존 제품이나 생각, 분야를 바꾸거나 완전히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것이 혁신이다. 최초의 전화기는 발명품이었지만 최초의 휴대전화와 스마트폰은 세상을 바꾼 대혁신이었다.
PGA 골프 스타인 리키 파울러는 유난히 인기가 많다. 메르세데스 벤츠, 퓨마, 레드불, 타이틀리스트, 롤렉스 등 굴지의 기업 열두 곳의 로고가 그의 모자나 셔츠, 골프백에 빈틈없이 새겨져 있다. 그야말로 움직이는 광고판이다. 연중 광고 스폰서 계약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천만 달러가 넘으며, 어떤 해는 이 수입이 상금으로 버는 수입보다 서너 배나 높다. 골프 선수의 몸값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인기에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90년대 중반, 실리콘밸리에 소재한 명문 골프장 로스앨터스 컨트리클럽의 회원이 된지 얼마 안 되어 나는 이 골프장이 미국에서 유명한 LPGA 선수인 줄리 잉스터의 홈 코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골프장에서 자주 마주치다 보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고 그녀의 남편 브라이언과 두 자녀, 그리고 이들이 키우던 애견까지도 함께 자주 어울렸다.
어느 날 브라이언으로부터 줄리가 메인 스폰서를 결정하기 위해 몇몇 회사로부터 신청을 받아 검토를 하는 중이라는 말을 듣고 애국심이 발동한 나는 그에게 한국 기업을 찾아볼테니 한 달만 결정을 미뤄달라고 했다. 나는 곧바로 미국 시장의 마케팅에 수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는 한국의 다국적 기업 몇 곳에 연락을 취했는데, 전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늘 해 오던 대로 한국 선수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방침을 추구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글로벌화에 대한 관점이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희망을 접었다.
줄리 잉스터는 당연히 미국 회사와 스폰서 계약을 맺었고, 1999년과 2002년에 최고의 시합인 US 오픈에서 우승을 거머쥐면서 엄청난 인기몰이와 함께 몸값도 급상승했다. 아쉬운 경험이기는 했지만 한국 내에 국제화를 가로막는 장벽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그녀는 이후에도 눈부신 활약을 하며 LPGA에서 총 서른한 차례, 메이저에서 여섯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미국 대 유럽 연합팀의 여자 골프 대항전인 솔하임컵에서는 최고인기상과 공로상을 받았다. 그리고 온 가족이 두 아이를 데리고 시합에 나가 남편은 캐디로 활약하는 가운데 줄리는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당당히 우승을 거머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자랑스러운 어머니로 각인되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지금도 명예의 전당 수상자답게 국제대회에서 국가대표 단장이자 LPGA 맏언니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며, 최고의 어머니라는 이미지를 가진 선수로 대중으로부터 오랫동안 존경받는 명사가 되었다. 한국이라는 우물 밖으로 나와서 국제적인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회를 인지하지 못한 한국 기업의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미국 친구들은 박세리 키즈가 2000년 이후 잠시도 빈틈을 주지 않고 LPGA 시합을 휩쓸며 상금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놀린다. 한국 선수들은 미국 팬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기량이 뛰어나서 정말 자랑스럽기 그지 없다. 그런데 큼직한 한글 로고가 새겨져 있는 모자를 쓴 한국 선수들의 모습이 미국 TV에 방영되는 것을 보면 뭔가 어색할 때가 많다. 스폰서가 한국 시장을 겨냥한 회사인 듯한데, 국제대회에 어울리는 로고나 이미지 메이킹을 고려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www.joyseattle.com/news/46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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