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보통 공항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따라서 공항에서의 안 좋은 경험은 모처럼의 외국 여행을 순식간에 망칠 수 있다. 그런 경험들은 대체로 사소한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 사려 깊고 훌륭한 디자인을 선보이거나 고객의 경험과 피드백에 귀 기울이면 쉽게 고칠 수 있는 문제들이다.
누구나 탑승권 때문에 낭패를 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한참 전의 일이지만 나도 탑승권을 잃어버려 어렵게 재발급을 받은 뒤 다음 날 간신히 탑승한 적이 있다. 나는 한때 탑승권 간소화를 주장했다. 전산 기록과 신분증만으로도 탑승객 확인이 가능할텐데 왜 꼭 몇 겹의 탑승권을 거치적거리게 소지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은 드디어 그런 불편이 없어졌지만 다소 늦은 감이 있다. 그래도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아무리 작은 문제라도 시정하려고 노력하는 이러한 공항을 만날 때면 반가울 따름이다.
각국 정부는 현재 대규모의 공항을 짓는 사업에 경쟁적으로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한 자료에 의하면 머지않아 전 세계 항공 승객의 숫자가 연인원 100억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초고속 성장 산업을 몰라본다면 국가간 경쟁에서 한참 뒤처질 것이다. 급격히 변하고 있는 승객 경험 트렌드를 등한시하던 미국도 이제는 정신을 차린 듯하다. 뉴욕공항을 비롯한 몇몇 국제공항은 이제서야 증축 자금을 확보하는 등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일부 아시아 공항들의 발전은 미국의 경우보다 몇십 년은 앞선 듯하다. 미국의 공항은 특히 승객서비스 면에서 최악의 점수를 받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 싱가포르는 이러한 변화를 정확히 감지하고 12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자금을 투입해 2019년 '쥬얼'이라는 신청사를 증축 개장했다. 쥬얼 청사는 이제 구청사와 더불어 연간 9천만 명의 승객을 소화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새로운 공항에 가보면 공항이 단순히 일시적으로 거쳐 가는 곳이 아니라 일종의 쉼터로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프리카 정글을 연상시키는 신비한 분위기 속에 40m 높이의 지붕에서 떨어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폭포와 공원, 공연장과 박물관, 300여 개의 엄선된 식당과 상점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치는 볼거리와 방대한 규모에 방문객은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이제 다른 나라의 국제공항 기획 담당자들은 좀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하느라 골치가 아플 것으로 보인다.
고객은 적절한 규모와 볼거리가 뒷받침된 경험 속에서 감동을 받는다. 하드웨어는 자금 투입으로 설치가 가능하지만 눈높이에 맞는 고객 경험을 설계하는 일은 짧은 시간에 단순히 자금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많은 기업이 상품개발 전략 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그들은 소비자에게 습관을 바꾸도록 요구하는 제품을 개발한다. 소비자는 당연히 그러고 싶지 않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려 하는 것은 잘못된 전제다.
실례로 20년 전 한 창업 회사가 마우스 대체용 전자펜으로 '스타일러스 펜'을 출시한 적이 있다. 이 회사는 사람들에게 연필이나 볼펜을 쥐는 습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필기도구를 컴퓨터에 사용하는 습관은 없었다. 기업의 전략적 착오였다.
사람들의 습관을 바꾸려면 수많은 시간과 노력과 마케팅 예산이 필요하다. 그러한 것들을 투입한 뒤 그 모든 시도가 결실을 맺을지 인내심을 갖고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소비자가 당신의 생각대로 행동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사업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과거 20년 동안 실패한 사례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두 바퀴 자동차 세그웨이, 안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만든 구글 글라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폰, 아마존의 파이어폰과 애플의 뉴턴, 그리고 보잉의 737 맥스8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모든 사례는 고객 경험을 철저히 연구하지 않았거나 등한시한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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