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이 식당에서 2시간 이상은 넉넉히 잡고 가야 할 타코마라니, 하필 두 달에 한 번 주방 요리사 한 분이 빠지는 화요일이라니, 캐셔가 3시에 퇴근하는 날이라니... 콘서트에 가는 걸 온 우주가 합심하여 막기라도 하는 듯, 난관은 겹겹이었다.
콘서트에 가기 위해서는 밤 9시 마감 때까지 대신 일 해줄 사람을 찾아야 하고, 대체할 주방 요리사도 있어야 했다.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가야만 하나, 회의가 들어 포기할까 하는 순간, 2018년 이문세의 시애틀 공연은 이것이 유일하고 앞으로 기약도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 도착한 공연장은 과거 항구도시의 영광을 보여주는 타코마 다운타운 한복판의 고풍스러운 극장이었다. 1백년은 훌쩍 넘었음직한 건물에 개성 넘치는 카페와 펍, 클럽, 앤티크 가게들이 이어진 끝에 오늘 공연이 열릴 극장이 보였다. 공연 내용을 알리는 홍보용 전광판은 화려한 네온이 아니라 보드빌 시절의 흑백 글자판이었다. 건물 주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입장을 서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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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Nick Kwon |
오랜만의 나들이에 들뜬 사람들, 우연히 마주친 지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얼굴들은 모두 기대와 설렘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연령도, 성별도 다양했다. 모르긴 해도 그들도 모두 나처럼 어떤 사정과 핑계들을 넘고 헤친 끝에 여기 와 있는 거겠지. 어두운 공연장에 입장해 아직은 텅 빈 무대를 바라보는 마음은 늘 복잡하다. 게다가 이문세다. 적어도 우리 나이대의 사람들이라면 ‘이문세’를 자신의 어느 한 시절과 분리해서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그 기억이 모두 아름다울 수는 없겠지만 떠올리면 가슴 밑바닥이 뭉클해지는 추억일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저런 감상에 젖어 있는데, 갑자기 무대가 시작되었다. 붉고 번쩍이는 턱시도 웃옷, 흰 바지에 흰 구두. 화려한 ‘씨어터 이문세(Theater Lee Moon Sae)’라는 공연 제목에 어울리는 등장이었다. 흰 정장을 맞춰 입은 밴드와 화려한 댄스팀까지 뮤지컬 같기도, 밴드 공연 같기도 한 분위기는 보드빌 전성기 시절의 극장 공연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이문세의 말처럼 첫 무대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 숱한 히트곡들 중 어떤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몰라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흥겨웠다. 연달아 이어진 곡들은 ‘밤이 머무는 곳에’, ‘난 아직 모르잖아요’, ‘비 내리는 거리에서’로 굳이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떠오르는 가사들을 흥얼거리며 곧장 공연으로 빠져들었다. 무대 뒤로 비춰진 서울의 야경을 배경으로 첫 무대가 끝나자 이문세의 재담이 이어졌다.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그는 애청자들의 사연에 늘 다정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에게 실연의 아픔을, 짝사랑의 서글픔을, 절친에게조차 말하기 어려운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는 그때처럼 거기 모인 1천 여 관중들의 마음을 헤아렸다. 알바에게 맡겨둔 가게를, 함께 왔으면 좋았을 친구들을, 부모님께 부탁한 아이들을, 이 공연장 바깥에 있는 모든 것을 잊으라고 했다. 한 줄에 한 명쯤 ‘난 이문세 별론데, 이문세 노래라곤 ‘난 아직 모르잖아요’밖에 모르는데, 그건 벌써 불렀고’ 하고 있을 관객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그게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더 크게 소리 지르고, 발을 구르고 뛰었다. 80, 90년대 롤러장 분위기를 낸 무대에서 ‘할 말을 하지 못했죠’, ‘밤하늘을 날아서’ 같은 밝고 경쾌한 노래가 흐르며 분위기가 고조되는가 싶었는데, 영상으로 공연을 준비하던 작은 작업실로 관객들을 안내했다. 그리고 공연 전 다녀왔던 케냐의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얼룩말과 사자들의 초원, 한국의 산과는 다른 아프리카의 산을 보여준 그는 케냐의 밤하늘을 펼쳐보였다.
그 밤하늘의 배경으로 그는 우리에게 잠든 동료들에게 살며시 불러 주고 싶었다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오로지 통기타 반주 하나에 맞춘 ‘그녀의 웃음소리뿐’이 흐르는 동안 웃고 떠들던 사람들은 고요해졌다. 그랬다. 우리가 사랑했던 이문세는 그런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랑이 전부였던 어린 시절, 모두 내 얘기 같은 그의 노래에 울고 웃었다. 그런 노래들, ‘옛사랑’, ‘사랑 그렇게 보내네‘, ‘사랑이 지나가면’, ‘그대와 영원히’ 같은 곡들이 이어질 때 내 옆에 있던 이는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울다가 웃다가, 소리 지르다 깔깔대는 우리에게 그는 미루지 말라고, 남들은 비웃을지 모를 작은 기쁨, 지금 해서 즐거운 일들을 하라고. 자신처럼 멀리 떠나는 긴 야영이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음악을 들으며 차 한 잔 마시는 일,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 계절이 바뀌는 거리를 잠깐 걷는 일 같은 것들을 말이다. 그 뒤로도 우리는 그의 노래를 새로운 노래와 옛 곡까지 여러 곡 이어 들었다. 댄서들을 따라 춤도 추고, 손뼉도 치고, 큰 소리로 노래도 따라 불렀다. 전 세계의 한인들과 이어달리기를 하듯 ‘이별 이야기’도 불렀다.
인기 아이돌 ‘빅뱅’이 다시 불러 어린 세대까지 열광시킨 ‘붉은 노을’을 끝으로 공식적인 공연이 끝났다. 얼마간의 사람들이 떠나고 비공식적인 앵콜곡 두 곡을 더 부르는 동안 제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무대 앞으로 가까이 다가와 함께 노래 불렀다. 우리 모두는 그를, 그의 노래를 안다. 그가 우리의 어느 시기를 함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더 이상 추억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고 느꼈다.
무대가 끝나고 돌아 나오면서 문득 아무도 따라 부를 수 없었던 첫 곡이 떠올랐다. 그가 여전히 지금을 노래하는 가수임을,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임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을까? 이곳에 오지 못할 숱한 이유들이 있었지만 오길 잘했다 싶었다. 이문세가 지금, 여기를 노래하는 가수이듯, 나 역시 오늘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얻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우리가 손에 잡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한 가지다. 다음에 또 이렇게까지 해서 뭔가를 해야 하나 싶을 때, 오늘의 충만함을 기억할 것이다. 당신도 그랬으면.
로비에서는 이문세의 최근 앨범 ‘New Direction’을 팔고 있었다. 무려 15집이었다. 내 기억은 3집, 4집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가 계속 노래 부르는 동안 나는 어디에 있었지? 문득 쓸쓸했다. 다음 날 아침, 앨범을 차량 CD 플레이어에서 재생시켰다. 앨범의 첫 곡은 어제 아무도 따라 부르지 못했던, 공연을 연 바로 그 노래였다. 노래 제목은 ‘Love Today’, 우리가 모두 아는 옛날의 이문세가 오늘, 지금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휘파람을 불며 고개를 끄떡거리며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면서
종이비행기 접듯이 마음을 접고
내가 못 하는 건 시간에 맡겨
오늘은 제발 나를 찾지 말아요
오늘은 나를 못 본 척 해줘요
바람이 불어서 더 좋아
혼자라서 더 좋아
다른 사람 상관없이
마음의 무게 없이
오늘은 날 사랑해
내게 좋은 것만 생각하는 love today
이현주
작가
출판기획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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