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좋은 9월이었다. 한국의 관광지들이 많지만 필자는 관광지 이외 지방 도시들, 관광도 없고 도시도 크지 않아 가볼 기회가 없었던 지역의 풍물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
한번은 TV 방송에서 ‘아빠 어디가’라는 프로가 있었는데, 전남 화순에 동네가운데로 천(川)이 흐르고 사람들이 그곳에서 빨래를 하는 풍경을 보여주었다.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가볼 일이 생기지 않는 그런 곳은 영상을 통해 간접 구경을 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지난 9월 21일 그 정도로만 알고 있던 화순에 모임이 있어 가 보게 되었다.
모임을 끝낸 후 1일 정도 근처 마을구경을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아무래도 정해진 일정을 보내고 정신 차리고 보니 광주의 KTX연결역인 송정역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래서 화순은 포기하고 그런 낯선 느낌으로 또 가고 싶은 곳이 또 있었는데 유명한 항구, 목포다.
15년전인 2002년에 목포 사는 지인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서울에서 주중의 일이 너무 빠듯해서 별도 여행에 대한 준비없이 바로 서울역에서 목포행 무궁화 밤샘열차를 타고 갔었다. 마중 나온 지인이 자신의 집으로 필자를 안내했고, 그날 하루 종일 목포에서 일정을 보냈었다.
필자는 바삐 오느냐 현금을 찾을 시간이 없었기에 은행의 현금인출기로 현금을 찾으러 갔다. 그런데 주말이다 보니 이용객이 많아서 현금인출기에 현금이 바닥이 나서 통장에 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뺑뺑 돌아 다른 은행들을 갔으나 마찬가지였다.
서울 같으면 어떤 지역이든 중심가 현금인출기에 사람이 아무리 많이 온다 한들 인출기계에 돈이 없을 수 있는 상황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지도 못한 지역의 경제규모 이었다. 그 후 필자는 국내지역의 여행을 갈 때는 가능한 미리 현금을 찾아서 간다.
그때 목포에 갔을 때 친구와 영화를 봤고 여객선터미널에 가서 가까운 섬에 갔었다. 배를 타고 섬에 간다는 사실자체가 환상을 채우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섬에는 마치 각본이라도 있는 듯 그 당시 배우 유승호가 미운 7살을 연기한 ‘집으로’ 에 나온 할머니처럼 기역자로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있었다.
혼자 사시는할머니는 매일 할아버지묘소를 다녀 오시며 근처 잡초도 뽑고 텃밭을 일구고 사신다고 하였다. 조금 전 영화에서 할머니를 봤는데 바로 섬에서 그런 할머니를 보다니 무슨 장자(莊子)가 되어 나비 꿈을 꾸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먼 항구에서 다시 좀 더 먼 곳으로 배를 타고 떠나보고 싶었다. 목포에서 떠나는 배는 참 많다. 흑산도, 홍도, 비금도 등 많이 듣던 이름의 섬들, 전혀 들은 적이 없는 이름의 근처 섬들, 제주도 울릉도 등 먼 곳, 또 일본 등 국외선 들도 있다.
무엇보다 더 마음을 끄는 것은 이름을 들은 적은 없지만 매표소에 운행일정이 적힌 지역의 작은 섬들이고 더 나아가 그 섬들 사이에 마치 무인도처럼 사는 사람이 적은 섬들이다. 배들은 섬을 지나가며 섬 사이 다른 섬에서 또 사람을 태운다.
그 중에서 유명한 하의도(荷衣島)를 가보고 싶었으나, 그 섬은 멀기도 하고 배 시간도 이미 끝났다고 해서 그때 가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가보리라 배 시간을 기억해서 이른 아침 하의도행 쾌속선을 타고 대망의 하의도를 향했다. 운행시간은 1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섬에 도착하니, 전에 인천에서 인근 섬을 갔을 때처럼, 섬 안에 마을버스가 들어오는 배의 시간에 맞춰 승객을 이어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마을버스를 타지 않고 서서히 관광표지를 따라 걸으면서 길 옆 벤치에 앉아 보기도 하면서 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하의 3도 농민운동기념관’을 찾아 관람했다.
이 섬은 15대 대한민국대통령 (1998.02~2003.02)을 배출한 섬이고 특이하게 농민운동기념관이 있었다. 내부시설과 전시관은 손색없이 꾸며져 있었는데,주말인데도 관람객은 많지 않았다. 덕분에 편하게 천천히 전시물을 둘러보며 새삼 농사를 짓고 산다는 것에 대해 느끼는 점이 많았다.
그곳에서 섬에 콜택시를 불러서 김대중 전 대통령 (1924~2009)의 생가를 방문했다. 잘 꾸며져 있었고 한 바퀴 둘러보고 천천히 되돌아 나와 덕봉강당이란 고택에 들렸다. 그곳에서 마을을 빠져나와 선착장 쪽으로 돌아 나왔다.
역시 여행은 떠나는 것이 남는 법. 온 보람이 있었다. 무엇보다 유명 관광지와는 달리 한적하고 외지면서도 뭔가 물씬 익어서 영글어 안겨 드는 것이 있다. 전선 위의 참새, 가을들녘의 벼이삭, 염전, 무궁화, 나비, 하얀 새, 그리고 들큰한 아열대성 훈풍과 등돌린 그림자들. 이렇게 좋은 곳이 한국에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역사에 ‘만약에’ 라는 말은 필요 없다지만, 만약에 노벨평화상을 탄 전직 대통령이 무사히 임기를 마치고 스스로 이곳으로 귀향하여 여생을 보냈으면 어땠을까. 국내외 유수한 인사들이 이 먼 목포항의 매력에 빠지고 급증하는 인파로 섬으로 향하는 배들은 증가하고 섬은 구석구석 바빠졌을 지도 모른다. 지역경제는 활발해지고 국토의 균형발전은 순식 간에 이루어졌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것은 만약이었고 만약에 그런 일은 그냥 흘러갔기 때문에 섬은 한적하게 여백을 남기고 정적에 빠져든다. 이 섬은 앞 편에서 소개한 여행작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이면 반드시 봐야 할’ 것이 잘 배어있는 천상의 장소이다.
선착장에서 표를 끊고 배를 타고 돌아오는 순간 그 섬에 다시 가고 싶다. 그때는 더 많은 사람과 와서 민박을 정해서 며칠 쉬면서 섬을 많이 걸어 보고 싶다. 그때도 자유여행으로 와서 순간순간 알 수 없는 결정들에 여정(旅程)을 맞추며 결국에는 돌아와 귀가의 안도감을 누려 보리라.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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