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2017.3.30 (목)
 http://www.joyseattle.com/news/20406
발행일: 2014/11/04  조이시애틀뉴스
[기획특집] 서북미 한인사회 뿌리를 찾아서 (3)..."우리 가족이민 1백년 됐어요"

박락순 여사의 1951년 결혼식 사진.


서북미 한인 이민사의 산 증인인 오리건주 그레샴에 거주하는 박락순 여사(85) 가족의 이민사는 문자 그대로 한인들의 미국 이민역사다.  


박 여사 가족은 2011년 그레샴에서 가족의 이민 1백주년을 기념하는 성대한 모임을 가졌다.  LA, 뉴욕, 하와이 등지에 거주하는 5대에 걸친 80여명의 박씨 후손들이 그레샴 농장에 모여 힘든 이민생활을 이겨낸 자랑스러운 한인의 삶을 자축하는 행사였다. 


8순이 넘는 노인에서 어린아이까지 참석한 가족들은 2세는 노란색, 3세는 청색, 4세는 하늘색 그리고 5세는 녹색의 티셔츠를 입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박 여사는 강릉고 졸업 후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함께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서울대학에 입학했다.


당시에는 크게 부족한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대학을 2년만에 졸업시켰다는 것.  대학에 교과서도 제대로 없었고 그나마 일본어 책으로 공부를 하고 교수도 일본어로 강의를 하는 상황이었다.  1949년 3월 서울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박 여사는 바로 유학 수속을 시작, 그해 5월말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포틀랜드에 도착했다.


박 여사가 포틀랜드대학에 입학할 당시에 한국에서 유학온 남학생 2명이 재학 중이었다. 자신의 전공인 생물은 여학생의 입학을 불허했기 때문에 여성을 받아들이는 간호학과에 입학했지만  수업이 어려워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뒀다. 


5대가 자리를 함께한 박락순 여사 가족의 이민 100주년 기념식(2011년).


박 여사는 1951년 소개로 만난 해리 박씨와 결혼했다. 당시는 한국이 전쟁 중이어서 고국의 부모 생사확인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레샴의 농장으로 시집온 박 여사는 지금까지 63년을 이곳에서 살고 있다. 박 여사의 장남 로드니 박씨가 올해 환갑을 맞았다. 


부군인 해리 박씨의 부친 박경수씨는 1905년에 이민온 케이스. 박경수씨와 시어머니 임소사씨는 일본여권을 소지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박 여사는 "우리보다 앞서 온 한국 이민자들은 상상 못하는 고생을 했다"며  "처음 몬태나에 도착한 이들은 아침에 문이 얼어 열리지 않을 정도의 혹한을 견뎌야 했다"고 말했다.  추위를 견디지 못한 이들은 한국이 해방을 맞은 후 살기 좋다는 오리건주로 이주해왔다.


해리 박씨는 1947년에 부모를 따라 아이다호주로 왔고 박 여사는 1949년에 오리건주로 유학와 만나게 된 것이다.  1949년 당시에 포틀랜드, 세일럼, 캔비, 그레샴 등 지역에 한인 이민자 20여 가정이 있었다고 박 여사는 회고했다.


박씨 가족의 그레샴 농장에서 초기에는 딸기와 야채를 재배했으나 나중에는 정원수를 전문으로 재배하는 농장으로 탈바꿈했다.  박 여사는 농장의 한쪽에 텃밭을 일궈 호박, 고추, 옥수수, 상추, 배추, 총각무 등 한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야채를 재배하고 있다. 


그레샴 농장에서 직접 트랙터를 운전하는 박락순 여사 (1980년도).


박 여사에 따르면 1950년대에 포틀랜드 인근의 콜벗에 거주한 신영철-김진도 부부가 자녀와 함께 전국을 돌며 한국 음악을 공연했다. 당시에는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없어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상을 입고 한국 음악과 무용을 공연했다는 것이다. 


1960년 이후 포틀랜드에 한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세일럼, 코발리스 등에서 유학생들이 김치를 먹기 위해 그레샴 농장으로 찾아왔고 의학을 공부하러 온 한국 유학생 상당수가 포틀랜드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박 여사의 장남 로드니씨는 대학에서 화훼를 전공한 후 1977년부터 농장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둘째 조이스씨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차남 더글라스씨는 그레샴에서 소아과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막내 토마스씨는 시애틀의 제약회사 엠젠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남편 박씨가 별세한 후로는 외출마저 뜸한 박 여사는 매일 밭에 나가 채소를 가꾸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박 여사는 주위에서도 그동안의 삶을 기록해보라는 권고를 받는다며 "오리건 한인 이민역사를 남기는 것이 꿈인데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박락순 여사의 시아버지 박경수씨가 자녀들과 함께 찍은 사진.

박락순 여사의 자식 4남매.

그레샴 농장에서 60년 넘게 살고 있는 박락순 여사.

요즘도 농장의 텃밭에서 소일거리로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박락순 여사가 고이 간직하고 있는 자개장이 방안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관련기사:

 

[기획특집] 서북미 한인사회 뿌리를 찾아서(1) ... 하와이서 건너와 새둥지

[기획특집] 서북미 한인사회 뿌리를 찾아서 (2)...초기에는 사진으로 색싯감 구해


기사/사진=조이시애틀뉴스 기획취재팀
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저작권자 ⓒ 조이시애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유니뱅크
 
  l   About Us   l   기사제보   l   개인정보보호정책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