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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10/27  조이시애틀뉴스
[기획특집] 서북미 한인사회 뿌리를 찾아서 (2)...초기에는 사진으로 색싯감 구해

1940년대 미군에 입대한 오리건 한인들. (박락순 여사 제공)


해방직후 포틀랜드 지역에 거주한 한인들은 애국심이 대단해 일본인 상점은 절대 이용하지 않았으며 49년부터 그레샴에서 거행한 삼일절 행사를 칼같이 지켜 전원 참석했다고 1949년 유학와 그레샴에서 평생을 보낸 박락순(85) 여사는 회고했다.


그 당시 포틀랜드 일대에 거주한 한국인들 가운데 노총각이 많았으나 백인과의 혼인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모두 한국에서 사진으로 색싯감을 구해왔다는 것이다.


지난 67년 유진, 코발리스 등지에서 모여든 60여명의 한인들이 그레샴에서 오리건한인회를 결성했다. 비교적 여유가 있었던 박 여사 주택의 지하실에서 한인회가 태동한 것이다. 


지난해 작고한 박 여사의 남편 해리 박씨가 3,4,6대 오리건한인회 회장을 지냈고 박 여사 자신도 두차례에 걸쳐 회장직을 맡았다.


초기에 딸기, 야채를 재배해온 40에이커 규모의 박씨 묘목원은 지금은 원예를 전공한 맏아들 로드니 박(60)씨가 정원수만 전문적으로 재배하고 있다. 로드니 박씨는 포틀랜드 메트로 의회 의원도 역임했다.


지난 70~80년대에는 포틀랜드, 그레샴 지역 한인 수천명이 비버튼, 윌슨빌, 밴쿠버 등지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전자회사 텍트로닉스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이 회사가 90년대 들어 영업부진으로 대규모 감원을 실시하자 많은 한인 직원들이 자영업에 눈을 돌려 그로서리, 식당, 세탁소, 모텔 등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오리건주 한인수는 지난 77년 3천명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포틀랜드, 비버튼을 중심으로 3만명에 달할 정도로 크게 불어났다.

 

자신의 결혼식 사진을 보여주는 박락순 여사


61년 한국에서 대학생으로 군복무 중 유학시험을 패스, 지원한 14개 대학 가운데 가장 먼저 연락온 포틀랜드대학으로 유학온 신윤식(77) 신신부동산 대표는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친 후 포틀랜드에 정착한 케이스다. 


그가 포틀랜드대학에 입학한 61년에는 한국 유학생 3명이 있었고 국제결혼한 12가정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한국에서 50달러를 손에 쥐고 유학온 그는 당시 한학기 등록금이 250달러에 달해 10센트짜리 커피 한잔 사마시는 것도 주저할 정도로 궁색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여름방학 동안 식당에서 버스보이로 일하며 무려 1천350달러라는 거액을 벌었다. 당시 한국의 대통령 봉급보다 많은 돈을 만지게 됐다는 것.


신 대표는 당시에 학생신분으로 취업을 하면 안돼기 때문에 이민국 관리의 눈을 피해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일하며 "영주권 딴 사람을 보면 마치 하늘의 별을 딴 사람처럼 부러워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결국 취업을 통해 불과 2달만에 영주권을 취득한 그는 연세대 상경대를 졸업해 대우그룹을 창업한 김우중 회장과는 동기동창이다.


오레곤한인회 창립멤버인 신 대표는 "1964년 창립한 한인회는 삼일절, 광복절과 함께 크리스마스 행사를 매년 가졌다"며 이러한 한인회 행사에는 유진과 코발리스에 거주하는 한인들도 모였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한인회장을 지내던 1976년에 '한인의 밤' 행사에 최은희, 엄앵란, 구봉서, 곽규석, 배삼룡, 송춘희, 정미조 등 한국의 쟁쟁한 연예인들이 모두 참석한 성대한 행사로 각지에서 무려 1천여명의 한인이 모여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며 당시의 감격을 잊지 못했다. 


아이다호주를 거쳐 오리건주로 이주해온 초기 그레샴 한인 이민자들 (박락순 여사 제공)


1989년 비버튼-천안 자매도시 결연
천안시에서 비버튼 중앙도서관에 한국책 1천2백권 기증


그는 1989년 당시 래리 콜 비버튼 시장과 함께 한국을 방문시 천안에 들러 양 도시간 자매결연을 맺고 그후 25년간 자매도시위원장을 역임하며 비버튼과 천안의 교류확대를 위해 노력했다.


양 도시간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천안시에서 한국도서 1천2백권을 기증, 한인 밀집지인 비버튼 중앙도서관에 비치되는 성과도 거뒀다. 


당시에는 매년 천안시를 찾았던 신 대표는 사재를 털어 1만달러를 기부, 천안시에 비버튼의 상징인 비버 동상을 세우도록 했다고 말했다. 시에서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신 대표의 흉상도 함께 세워줬다.


신 대표는 73년 오리건주 최초의 한인 부동산 브로커로 부동산중개업에 뛰어들어 굵직한 매매를 성사시키며 상당한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신 대표에 따르면 오리건한인회 첫 회관은 학교건물을 12만달러에 매입, 9년 후 3배 오른 가격에 팔았고 이어 새로 구입한 현 한인회관도 150만달러를 전액 완불해 100% 소유하고 있는 미국내 한인회관 10곳 가운데 하나로 타 한인회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오리건한인회관은 2세들에게 한글교육과 함께 문화강좌도 열고 라인댄스, 뜨개질, 유화 등 한인들의 문화공간으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어 자랑스럽다고 신 대표는 말했다.


1913년 15세 나이에 가족과 함께 이민온 박동환씨의 여권 사진 (박락순 여사 제공)


오리건주의 한인 인구는 지난 10년새 별다른 변화가 없다. 다른 지역으로 이민온 한인들의 제2의 정착지로 이주해 오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


오리건한인회장을 역임함 유형진 공인회계사는 LA, 뉴욕, 시애틀 등지의 한인들이 포틀랜드를 제2의 정착지로 선호한다며 특히 LA 폭동 이후 캘리포니아주 한인들이 대거 유입됐다고 설명했다.


유 회계사는 자신도 워싱턴주 켄트에서 반년간 거주하다 지난 77년 살기 좋다는 소문을 듣고 포틀랜드로 이주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 한인회장으로 재직하며 한인 이민 10주년 역사를 기록으로 남긴 다큐멘터리 비디오 '선구자(SunGuJa, A Century of Korean Pioneers)'를 제작했다. 워싱턴대학(UW), UCLA 등 한국학이 개설된 미국 내 대학에도 배포된 이 프로그램은 오리건주 공영방송인 OPB에서 두번이나 방영할 정도로 주류사회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당시에 제작을 총괄한 유 회계사는 "한인 이민자들의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역사적인 소명의식에서 시작한 작업"이었다며 "일본인 강제 수용소 등을 제작한 다큐멘터리 전문제작자를 기용해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유 회계사는 오리건주 유진에 본부가 있는 홀트양자회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 입양아가 10만명이 넘을 정도로 오리건주 이민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고 말했다.


한인 2세 교육에 관심을 갖고 오레곤한국학교 설립을 주도한 그는 앞으로 한인회관 안에 이민박물관을 세워 한인 이민역사를 후세들이 볼 수 있도록 남겨주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1961년 포틀랜드로 유학온 신윤식 신신부동산 대표


60년대 중반 첫 한인교회
선원, 농업실습생 상대로 선교


오리건주 최초의 한인교회는 64년 김관규 목사가 설립한 포틀랜드 한인교회로 미국인 30명을 포함한 67명의 교인이 모여 창립예배를 올렸다.


이어 67년에는 포틀랜드 한인장로교회가 문을 열었다. 이 교회를 세운 김상증 목사는 2010년 별세했다. 


신윤식 대표와 마찬가지로 61년 유학생으로 포틀랜드에 도착, 뉴버그의 조지폭스 칼리지에서 영어와 신학을 공부한 김 목사는 선원, 유학생, 농업실습생 등 24명으로 목회를 시작했다.


포틀랜드 한인장로교회는 90년대 초에는 신자수가 7백명 수준으로 불어나며 서북미 지역 최대 규모의 한인교회로 성장했다.


김 목사는 "초기에는 일자리와 아파트를 구해주거나 통역, 운전면허시험을 도와주는 등 이민자들의 손발 역할을 통한 선교사업을 벌였다"고 회고한바 있다.


포틀랜드항에 매일 5척씩 들어오는 외항선의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등 선원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했고 지금도 한국 선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사업이 포틀랜드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획특집 3편에서 계속)


초기 이민자의 결혼식 사진 (박락순 여사 제공)

오리건주 최초의 한인 농장 가운데 하나인 그레샴 박씨 묘목원의 트랙터

유형진 전 오리건한인회장이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다큐멘터리 '선구자'를 보여주고 있다.

오리건주 첫 한인교회인 포틀랜드한인교회의 예배 모습 (출처=포틀랜드한인교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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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사진=조이시애틀뉴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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