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말까지 나의 신발에 대한 애착은 심했다. 사고 싶은 신발이 있는데 가격이 비싸면 그 신발 가게를 자주 드나들며 신발이 세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구입하곤 했다.
일년에 한두 번씩 우리 사무실에서는 상담사들끼리 서로를 위한 오픈 상담 시간(테라피 그룹)을 갖는다. 각 카운슬러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어느 날 우연히 거라지를 정리하다가 신발장 안의 내 신발만 세어 보니 70여 켤레가 있었다. 그 신발들이 마치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스스로에게 "내가 왜 그러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왜 나는 신지도 않는 신발을 이렇게 사다가 모셔 두는 걸까.
내가 구입한 신발 중에는 구두가 너무 오래되어 유행이 한참 지나 신기도 뭐하고, 굽이 높아 지금은 신으라고 해도 절대 사양할 것들도 있었다.
그날 오픈 상담 테라피 시간에 각자의 문제점과 마음속 무거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신발에 대한 강박증을 솔직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를 상담해 주던 정신과 테라피스트이자 우리 사무실의 고참인 카일 박사는 내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더니, 내가 어릴 적 늘 언니의 신발을 물려받으면서 사실은 그것이 좋지 않았는데도 엄마가 하라는 대로 언니의 신발을 신고 다니며 불편함을 참고, 엄마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행동을 반복했던 것이 내 의지와는 달랐기 때문에 마음 한켠에 늘 새 신발에 대한 욕망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후 나는 테라피를 받으며 신발을 사고 싶은 생각이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래, 괜찮아. 신발은 편하면 돼. 신발은 많이 있을 필요가 없어."라고 스스로에게 암시를 하면서, 7개월 후부터는 우리 집 거라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신발들을 거의 모두 멕시코 선교를 가는 친구 부부에게 도네이션으로 보내게 되었다.
멕시코 엔세나다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 친구 부부가 차를 타고 가기에, 한 번도 신지 않았던 70여 켤레의 신발을 가지고 가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거나, 아니면 팔아서 선교기금에 사용하라고 주었다.
그때 내가 고이고이 모셔 두었던 신발들을 보내며 마치 소중한 것들을 떠나보내는 느낌이 들었다. '아하! 내가 아끼던 신발들을 시집보내는구나!'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 이후로는 보통 사람들처럼 신발이 낡으면 구입하게 되었다. 워낙 많이 걸을 일이 없으니 운동화 말고는 신발이 닳아서 없어지는 일도 거의 없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