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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10/29  조이시애틀뉴스
[김수영 이야기] 위험한 호기심

최근 일론 머스크가 선보인 ‘하늘을 나는 자동차’ 소식을 접하며, 기술이 인간의 상상을 어디까지 현실로 옮겨 놓을지 새삼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러다 문득 오래전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나도 젊은 날, 자동차를 타고 하늘을 날아 본 적이 있다. 다만 내 경우에는 첨단 기술이 아니라 분별을 앞질러 버린 호기심이 문제였다. 지금은 웃으며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글로 써 내려가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스무 살 후반, 하는 일에 탄력이 붙고 삶에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갖고 싶던 것들을 하나둘 손에 넣는 기쁨과 함께, 그 성취를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자랐다. 

특히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은근히 자랑하고 싶었던 젊은 날의 허영은 때로 새로운 자동차의 모습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새 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보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내보이고 싶은 성취의 표정이기도 했다.

새 차를 사던 날, 판매 책임자가 당부했다. 처음 3,000마일까지는 엔진이 과열되지 않도록 천천히 운전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이지요’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 약속을 성실하게 지켰다. 주차할 때도 누가 문이라도 열다가 흠집을 낼까 봐 널찍한 구석 자리를 골랐다. 차를 모시고 다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문제는 3,000마일을 넘긴 뒤였다. 이제 길들이기도 끝났겠다, 차의 성능도 알아보고 다른 차와 얼마나 다른 실력을 갖췄는지도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속도계였다. 숫자는 시속 180마일까지 새겨져 있었다.

시내에서는 35마일, 프리웨이에서는 55~60마일로 다니던 때였다. 그런데 160마일, 180마일이라니. 대체 얼마나 빠른 걸까. 속도계에 저 숫자를 써 놓았으니 그만큼 달려도 되는 차가 아닐까. 지금 생각하면 계기판의 눈금을 허가증처럼 읽은 셈이다.

호기심이 앞서자 나름대로 그럴듯한 계획도 세웠다. 차가 없는 한적한 곳에서 잠깐만 밟아 보고 곧바로 속도를 줄이면 될 것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 단속에 걸릴 일도 없으리라 여겼다. 위험한 생각일수록 당시의 내 머릿속에서는 참 쉽게도 결정이 되었다.

벨뷰에서 동쪽으로 I-90을 탔다. 엘런즈버그를 지나 컬럼비아강 다리를 건너니 곧게 뻗은 일직선 도로가 나타났다. 앞에도 뒤에도 차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액셀러레이터를 서서히 밟기 시작했다.

60, 70, 120, 140마일.

속도계의 바늘이 올라갈수록 익숙하던 도로가 낯설어졌다. 마침내 160마일에 가까워졌다고 느낀 순간, 차체가 붕 뜨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람을 타고 이쪽저쪽으로 몹시 흔들리며 날아가 내려앉는 듯했다. 분명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 같았지만, 운전석에서는 조금도 멋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 오늘 내가 죽는구나.’

궁금했던 속도의 정체를 알아보기도 전에 공포가 온몸을 덮쳤다. 나는 곧바로 속도를 서서히 줄였다. 시속 65마일쯤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안도의 숨이 나왔다. 불과 1분도 안 되는 조금 전까지 답답하게 느껴졌을 속도가 그토록 편안하고 고마울 수 없었다.

다시는 하지 말자. 절대로, 절대로.

마음속으로 후회하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데, 약 1마일 앞에 주 경찰 순찰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했다. 분명 앞뒤로 아무도 없었는데, 저 경찰은 어디서 나타났을까. 가까이 가자 경찰관이 빨간 경광등까지 켜고 차 밖에 서서 손짓했다. 그가 기다리던 손님은 나였다.

나는 이미 속도를 줄였다는 사실에 기대어 무슨 일이냐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물었다. 잠깐 사이의 일이었고 도로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생각이 아직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경찰관의 설명은 간단했다. 상공의 헬리콥터가 내가 시속 120마일로 달리는 것을 확인했고, 무전 연락을 받고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앞과 뒤만 살폈다. 하늘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경찰관이 면허증을 받아 벌금 고지서를 쓰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사정을 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친 사람도 없고 다른 차에 피해를 준 것도 없으니, 한 번만 봐주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날 사고가 나지 않았다는 행운을 내 잘못이 가볍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나 보다.

경찰관은 난폭운전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설명했다. 차를 압류하고 수갑을 채워 데려갈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내가 한 일이 잠깐의 장난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고지서에 적힌 금액은 580달러. 당시로서는 엄청난 돈이었다. 속도계의 숫자가 궁금했던 대가는 뜻밖에도 달러로 적혀 있었다.

경찰관은 앞으로 또 좋지 않은 기록이 생기면 면허가 정지될 수도 있다며,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당부했다. 오래전 일인데도 그 경찰관이 무척 잘생겼다는 기억은 남아 있다. 수갑 대신 벌금 고지서를 받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마운 마음에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기술의 진보를 보여 주는 시대에도, 내 기억 속 자동차는 여전히 그날의 도로 위에 있다. 잠깐 몸이 떠오르던 감각과 운전대를 잡은 채 밀려오던 공포, 그리고 길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경찰관의 모습까지 또렷하다.

이제는 시속 70마일쯤으로 속도를 올리려 해도 그날의 기억이 먼저 브레이크를 건다. 젊은 날의 나는 차의 성능이 궁금했지만, 정작 몰랐던 것은 내 판단의 한계였다.

돌아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으니 웃음도 섞는다. 그러나 그날을 추억으로 남겨 준 것은 운전 솜씨가 아니라 운이었다. 다시는 그런 호기심에 운전대를 맡기고 싶지 않다.



김수영 
힐릭스부동산 대표
전 평통 시애틀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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