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집을 나선다.
우리 집은 원형 막다른 골목의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 동네 집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아마 오래전 이곳은 물길이 흐르던 산골짜기였거나, 아니면 깊은 바다였던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도 땅을 파면 크고 작은 자갈과 커다랗고 다듬어진 바위 같은 돌들이 많이 나온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도 벌써 3년째다. 30여 년간 살던 동네를 떠나 이곳에 왔을 때는 이웃들과도 어색했다. 무엇보다 이전에 살던 곳과 달리 이 지역은 이민자가 거의 없고 백인 가정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으로 이사 온 이유는 무릎 통증이 심해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단층집을 찾던 중, 팬데믹 기간에 아들이 이 지역에 단층집을 구입해 두었지만 해외와 다른 주로 장기 출장을 자주 다니다 보니 집을 비워두는 시간이 많았고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집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1968년에 지어진 이 집은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하나 수리하며 살기 좋은 공간으로 바꾸었다. 넓은 뒷마당에는 하늘 높이 치솟은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햇살이 거의 들지 않았다. 시의 허가를 받아 몇 그루를 베어내고 나니 뒷마당도, 집 안도 한결 환하고 밝아졌다.
예전 집에서 키우던 백여 종의 꽃들이 그리워 하나둘 꽃모종을 사다 심기 시작했고, 작은 연못에서 헤엄치던 금붕어 가족들도 생각나 뒷마당에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 친구가 가져다준 연꽃을 심고 금붕어들을 다시 들여놓으니, 예전 집에 대한 그리움도 조금씩 옅어지는 것 같았다.
이 지역은 오래된 집들이 많은 동네였지만, 요즘은 젊은 부부들이 오래된 집을 구입해 예쁘게 리모델링하고 정원을 정성껏 가꾸며 살아간다. 하루 종일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동네 곳곳에서 들려오는 정겨운 마을이다.
지난해 미국 독립기념일에는 이웃들이 함께 모여 포트럭 파티를 열었다. 나는 집에서 만든 김치와 갈비, 따뜻한 밥을 준비했고, 이웃들이 가져온 다양한 음식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서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자리에서 내가 제안해 동네 그룹 메시지방도 만들었다.
20여 가정이 하나의 그룹으로 연결되어 서로 소통하다 보니 이제는 옆집 사정도 어느 정도 서로 알게 될 만큼 가까운 이웃이 되었다.
그룹 메시지를 통해 "어느 곳에서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정보를 나누기도 하고, 이 지역은 킹카운티에 속해 있지만 상수도와 하수 시설이 다른 만큼 생활 정보도 활발히 공유한다.
숲이 많아 모든 집에 정화조가 설치되어 있는데, 2년에 한 번씩 청소차가 와서 정화조를 비운다. 어느 업체가 일을 더 잘하는지, 여러 집이 함께 신청하면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정보도 서로 알려준다.
또 "옆집이 2주 동안 여행을 가니 집을 좀 봐 달라"고 부탁하면 남아 있는 이웃들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지켜보고 있을게요."라는 답장을 보내며 서로를 든든하게 지켜준다.(계속)
소셜워커, 워싱턴가정상담소 소장
이메일: regina.chae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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