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안 되는 300달러를 주머니에 넣고 미국에 온 여자는 공부도 하고 일도 했다.
엄마의 특별한 막내 사랑 속에서 막내의 시중을 들고, 오빠와 언니들의 잔심부름에 익숙했던 여자는 이미 단련된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씩 성취해 나갔다.
추운 시카고의 겨울, 차도 없이 키만큼 쌓인 눈을 헤치고 다녔다.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실력이었지만 미국 식당에서 설거지 담당으로 취직했다. 몇 달 뒤에는 성격이 좋다는 이유로 웨이트리스로 승격되어 일하면서 영어도 배우게 되었다.
아침이면 전날 레스토랑에서의 힘든 노동으로 덜 깬 눈을 비비며 학교로 달려가기를 몇 년 동안 반복했지만 지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 엄마의 혹독한 훈련 덕분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엄마는 막내만 끼고 사시느라 위의 딸들이 아직 어린 나이에 혼자 서는 법을 배우게 해주셨던 것이다. 아무튼 형제들은 모두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다. 지금은 모두 여유 있게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얼마 전 여자의 큰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역에 있는 집과 시골에 있는 땅을 팔면 공시가격은 ○○인데, 우리 형제들이 상속을 포기하고 막내동생에게 넘겨주자."
그리고는 오빠와 언니는 이미 서명을 했으니 너도 사인만 하면 된다고 했다. 언니와 오빠가 "너는 어떻게 하면 좋겠니?"라고 물어볼 법도 한데, 무조건 상속포기 서류에 서명해서 보내라고 했다.
여자는 나와 긴 상담을 한 뒤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언니와 오빠가 동생을 도와주겠다는 의견은 존중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상속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차분히 써 내려갔다.
동생은 자기밖에 모르는 성격으로 성장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어려웠다. 자기 주장만 하고 남을 이해하거나 돕는 일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함께 살던 아내도 결국 떠나버렸다.
동생은 솔선수범하는 일에는 영 젬병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회생활도 쉽지 않았다.
형제들은 특별한 과외 한 번 없이 대학에 가고, 외국으로 나가 공부도 하고 직장생활도 하며 살아왔다. 부모님의 도움은 거의 없었지만 지금까지 모두 자기 힘으로 잘 살아오고 있다. 누구 하나 불평 없이 그렇게 살아왔다.
문제는 동생이었다. 참 게으르다. 동생 집에 가보면 거실 바닥에 누워 리모컨만 들고 시간을 보낸다. 운동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위의 오빠가 취직시켜 준 회사에 영혼을 빼놓고 출퇴근하며 그럭저럭 밥은 먹고 사는 것 같다. 그런데 월급을 받아 몇천만 원이 모이면 술친구들을 불러 술파티를 하며 아낌없이 다 써버린다.
자존심은 또 얼마나 센지, 형제들이 그의 무질서한 생활에 대해 한마디 조언이라도 하려면 머리를 조아리고 어렵게 입을 떼야 할 정도다.
그런 동생이 일찍 미국으로 떠난 여자는 조금 존중하는지, 여자의 말은 잘 듣는 것 같다는 것이 다른 형제들의 평가였다.
여자는 동생의 삶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없으니 잔소리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미 불혹을 훌쩍 넘긴 형제들이 누가 누구에게 잔소리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동생은 자주 술에 취해 전화를 했다. "왜 인생이 이렇게 거지 같냐?" 여자는 속으로는 "네가 거지같이 사니까 그렇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참았다.
늘 동생의 입에서는 불평만 쏟아졌다. 뭐든 남 탓이고,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식이었다. 물론 이런 동생을 예쁘게 봐줄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동생 근처에 사는 자립심 강한 언니는 체면도 내려놓고 동생의 취업을 위해 여기저기 부탁을 하고,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김치며 밑반찬을 날랐다.
그런데 동생은 언니가 조금만 잔소리를 해도 언니가 정성껏 가져온 김치와 반찬을 쓰레기통에 버려놓고는 자랑스럽게 여자에게 전화했다. "내가 이런 사람이야."
'아이고, 이 미친….' 하고 싶었지만... 여자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다른 형제들과는 모두 연락을 끊고 여자하고만 소통하는 동생과의 마지막 연결선마저 끊어질까 봐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최대한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동생은 우연히 만나 사귄 지 3개월 된 여자친구가 너무 잘해준다며, 그 여자가 공부를 하는데 학비가 필요하다고 하자 4천만 원을 선뜻 빌려주었다.
아니, 무슨 중년의 여자가 공부한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믿나? 그리고 왜 그 여자의 학비를 자기가 내주나? 그 말을 또 믿고? 남아 있던 5천만 원도 결국 그 여자에게 넘어갔다.
'아이고, 이 등신!'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여자는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써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 그럼 어떻게 돌려받을 건데?" "응, 줄 거야."
물론 얼마 후 목적을 달성한 그 여자는 동생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동생은 그 여자의 부모 집에 찾아가 난동을 부리다가 경찰서에 끌려갔고, 며칠 동안 유치장 신세를 진 뒤 수천만 원의 벌금까지 물었다며 여자에게 연락했다.
"누나, 나 벌금 먹었어." 마치 금메달이라도 딴 사람처럼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마 동생은 이런 일들이 부끄럽고 죄송한 일이라는 것조차 잘 모르는 듯했다.
물론 동생의 이런 일급비밀은 언니와 오빠들은 몰랐다. 여자와의 마지막 연결고리마저 끊어질까 봐 여자 혼자만 알고 있었고, 언니와 오빠에게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회사에서 권고사직까지 당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먹고살 길을 마련해 주기 위해 언니와 오빠가 머리를 맞대고 내린 결론이 바로 엄마의 집을 막내에게 모두 넘겨주자는 것이었다.
여자는 동생에게 제안했다. "포장마차 하면서 붕어빵이라도 팔아볼래? 내가 장사 밑천은 대줄게." 동생의 대답은 단호했다. "야! 누나 미쳤냐? 내가 그걸 하게?"
"그럼 나이도 있으니 건물 수위는 어떨까?" "야, 누나. 내가 미쳤냐? 남의 집 지키게?"
여자는 나의 도움을 받아 언니와 오빠에게 답장을 썼다. "우리 형제들은 부모님의 도움 없이(물론 키워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죽을 만큼 힘들게 공부하고 쉬지 않고 일하며 노력해 지금의 안정된 삶을 이루었습니다.
막내는 엄마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마음고생 없이 자랐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만큼 나이가 들었습니다. 더 이상 부모님의 선택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으로 살아가야 하는 나이입니다.
오빠와 언니의 뜻인 '동생에게 집을 몰아주어 남은 인생을 살게 하자'는 의견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상속 몫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돈이 필요해서도 아닙니다. 제 상속금이 있다고 해서 제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상속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막내의 삶을 가족이 떠받쳐 주는 일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책임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막내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막내의 선택까지 대신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막내와 대화를 나누며 힘을 실어주려 했고, 그의 말을 들어주고 달래기도 했으며 여러 가지 아이디어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막내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변화 없이 지금과 같은 삶을 계속 유지하도록 돕는 일에는 더 이상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제 결정을 돈의 문제로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것은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제 양심과 원칙의 문제입니다.
두 분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저의 선택도 존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폭풍이 몰아칠 것 같다는 것이 여자와 나의 느낌이다. 그러나 여자는 그 폭풍을 맞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소셜워커, 워싱턴가정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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