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추세츠주에 거주하는 비 오컷(69)은 씨는 지난해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생존 기간을 말해주지 않을 정도로 예후가 좋지 않았지만, 그는 “잃을 게 없다”는 심정으로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놀랍게도 지난주 촬영한 CT 결과, 종양이 64%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오컷 씨는 “매일 아침 몸이 가볍고, 올해 추수감사절은 내가 가족을 초대할지 딸과 상의 중”이라며 웃었다.
10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 신약은 미국 바이오 기업 레볼루션 메디슨이 개발 중인 ‘다락손라십(daraxonrasib)’이다.
식품의약국(FDA)은 10월, 초기 임상 결과를 바탕으로 다락손라십에 대해 ‘커미셔너 국가우선심사 바우처(Commissioner’s National Priority Voucher)’를 발급했다. 이는 FDA가 새로 도입한 초가속 심사 제도로, 기존 1년가량 걸리던 심사 기간을 최단 1개월로 단축할 수 있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이다.
이 바우처는 췌장암 치료제 외에도 불임, 제1형 당뇨병, 청각·시각 장애, 희귀혈액질환, 니코틴 중독 치료제 등에도 부여됐다.
레볼루션 메디슨의 초기 임상시험에서는 항암치료를 이미 받은 환자 83명에게 다락손라십을 투여했다. 그 결과 29%의 환자에서 종양이 줄었고, 90% 이상은 암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전체 중간 생존 기간은 15.6개월로, 기존 치료 대비 약 두 배 가까이 긴 결과였다. 현재 약 460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 3상 시험이 진행 중이며, 결과는 내년에 발표될 예정이다.
다만 피험자의 95%가 부작용을 경험했고, 35%는 중증 반응을 보였다. 가장 흔한 부작용은 피부 발진이었으나 대부분 경미한 수준이었다.
다나파버 암연구소의 브라이언 울핀 박사는 “이 약이 췌장암 분야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며 “종양을 줄이고 통증을 완화하는 효과가 뚜렷하다”고 평가했다.
미국췌장암네트워크(PCAN)의 안나 버켄블릿 최고과학책임자는 “다락손라십은 췌장암 치료의 ‘게임 체인저’가 될 잠재력을 지닌 약”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신약의 효능에 주목하면서도, 내성 발생 가능성과 장기 안전성을 주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췌장암학회(APA) 소속 레이 정 박사는 “약효가 지속되는 기간을 늘리고, 내성을 억제하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레볼루션 메디슨 연구진은 암세포의 성장 신호를 조절하는 RAS 유전자 변이에 주목했다. 이 유전자는 ‘세포 성장 스위치’ 역할을 하는데, 돌연변이가 생기면 끊임없이 암세포 증식을 유도한다.
그동안 RAS 단백질은 표면이 매끄러워 약물이 결합할 수 없어 “불가능한 타깃”으로 여겨졌지만, UCSF의 케반 쇼캇(Kevan Shokat) 교수팀이 이를 억제하는 기전을 찾아내며 돌파구가 열렸다. 레볼루션은 이 연구를 기반으로 대부분의 RAS 변이에 적용 가능한 화합물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에 따르면 췌장암은 미국 내 암 사망 원인 3위로, 5년 생존율이 13%, 전이 환자의 경우 3%에 불과하다. 지난 30년간 치료법과 생존율 모두 거의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다락손라십을 비롯한 차세대 유전자 표적 신약들이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을 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북가주의 분자생물학자 프라나티 페라티(55)는 2023년부터 다락손라십을 복용했다. 그녀는 “2년 동안 암이 더 이상 퍼지지 않아 막내아들이 대학에 입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비록 최근 약물 내성으로 복용을 중단했지만, 그는 다시 새로운 임상시험에 참여하며 “살아있는 매년이 보너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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