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에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우리 가족이 다니던 교회에는 ‘구미혜’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캐나다 선교사님이 계셨다. 우리 교회 중고등부 성경 선생님이셨는데, 많은 학생 중에서도 선교관 근처에 살던 학생들과 더욱 가까이 지내셨다.
선생님은 우리를 집으로 초대해 그때에는 생소했던 파스타나 라자니아, 특별한 미국 음식들을 만들어주셨다. 십 대였던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꿈을 심어주시고, 더 큰 꿈을 품도록 생각의 폭을 넓혀주셨다. 또한 더 큰 나라에 가서 꿈을 키워볼 기회도 만들어주셨다.
몇몇 학생들이 미국이나 캐나다의 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셨고, 그곳에서 공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집을 제공해줄 후원자를 연결해주시기도 했다. 그 지역에서 일하면서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길도 마련해주셨다.
우리가 여고생이었을 때 구미혜 선생님은 50대 중반이셨다. 미국 생활을 한 지 46년이 지난 지금, 선생님은 이미 고인이 되셨다. 선생님의 추천으로 미국과 캐나다에 가게 된 친구들은 모두 다섯 명이었다.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돈이 부족해 시카고에서도 집값이 싼 지역에 방을 얻었다. 그때는 그곳이 우범지역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방을 얻어 살게 된 곳은 시카고의 빈민지역인 ‘아갈(Argal)’이라는 곳이었다. 1980년대 초, 집 밖으로 나가면 길거리에 음료수 캔과 병들이 뒹굴었고, 먹다 남은 음식들이 발에 밟힐 정도로 거리가 어지러웠다.
동네를 지나다 보면 이민자들이나 그 지역 청년들이 집 앞 계단에 서너 명씩 모여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휘파람을 불어대거나 때로는 시비를 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깔끔하기로 소문난 분이셨다.
젊으셨을 때 일본에 머물며 돈을 많이 버셨는데, 번 돈을 부인인 우리 엄마가 아닌 큰아버지에게 보내 돈을 불려달라고 하셨다.
10년 뒤 아버지가 한국으로 돌아오셨을 때, 아버지의 돈은 큰아버지의 자산이 되어 있었다. 큰아버지는 서울 옥인동에서 연탄공장과 커다란 철물점을 운영하며 그 지역의 큰 부자가 되어 계셨다.
그러나 큰아버지는 무슨 욕심에서였는지, 막내 동생인 아버지의 돈은 투자하다가 이미 다 날려버렸다고 하셨다. 그야말로 입을 싹 씻으신 것이었다. 그때부터 큰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에 오랜 형제간의 전쟁이 시작됐다.
10년 만에 일본에서 귀국한 아버지는 멋쟁이셨다. 세련된 양복 차림에 멋진 중절모까지 쓰고 다니셨다. 그때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어떻게 저렇게 멋진 사람이 우리 아버지일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10년 동안 고생하며 번 돈을 투자로 모두 잃었다는 큰아버지의 집을 거의 매일 찾아가셨던 것 같다. 그리고 돈을 돌려달라며 고함을 치고 소란을 피우셨다.
“도대체 형님은 내 돈을 다 잃어버렸다는데, 그럼 어떻게 그 큰 연탄공장과 철물점을 운영하고 있습니까? 내 돈에 책임을 지십시오!”
이런 상황을 늘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은 큰아버지를 나무라곤 했다. 막내 동생이 일본에 가서 고생하며 번 돈을 형이 자기 사업을 키우는 데 다 써놓고, 막상 동생이 귀국하니 투자하다 모두 잃었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언젠가는 돈을 돌려달라며 고함을 치고 소란을 피우는 아버지를 큰아버지가 경찰을 불러 데려가게 한 일도 있었다. 아버지는 며칠 동안 유치장에 갇혀 지내셨다.
그곳에서 많은 생각을 하셨던 듯하다. 그 일을 겪은 뒤 아버지는 친형인 큰아버지와 절연하고 살아가셨다. 아마도 큰아버지가 돈을 돌려주지 않을 것임을 아시고, 더는 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형제 관계를 냉정하게 정리하신 듯했다.
그 후 큰아버지 댁과 우리 집은 완전히 인연을 끊었다. 돈 문제로 형제 사이가 끝나버린,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아버지는 부지런하고 깔끔하셨다. 아무리 피곤한 날에도 밖에서 돌아오시면 걸레를 깨끗이 빨아 집 안 구석구석을 닦으셨고, 옷은 항상 다림질해서 입고 다니셨다.
우리 집 앞에는 쓰레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연탄을 때고 연탄재를 집 밖 담장에 버리곤 했는데, 우리 집 담장 주변은 늘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종이 한 장도 집 앞에 버려져 있는 일이 없었다.
누군가 집 앞에 쓰레기를 흘리거나 버리면 아버지가 직접 나가 깨끗이 치우셨다. 때로는 버린 사람을 수소문해 찾아내어 치우게 하시곤 했다.
소셜워커, 워싱턴가정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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