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관광버스에서 쏟아져 나와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움직이는 관광객들. 보스턴 글로브 여행기자 크리스토퍼 머더에게 패키지여행은 오랫동안 피하고 싶은 여행 방식이었다. 배우자나 친구와 함께할 때를 제외하면 주로 혼자 여행했던 그는 단체여행에 절대 참여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보낸 9일은 그 생각을 바꿔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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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톤코리아. 장명술 기자 |
머더는 10월 23일 보스턴글로브에 실린 여행기에서 서울과 경주, 부산, 제주를 둘러본 첫 패키지여행 경험을 소개했다. 직접 경험해 보지도 않고 단체여행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에 나선 여행이었다.
그가 선택한 상품은 여행사 지어드벤처스(G Adventures)가 내셔널지오그래픽과 공동 브랜드로 선보인 9일 일정의 ‘한국의 혼(Soul of South Korea)’이었다. 미국과 캐나다, 영국, 호주, 독일 등에서 온 여행객 11명이 함께했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만을 위한 전용 상품은 아니었지만, 혼자 참가한 사람들이 여럿 있어 다른 사람의 휴가에 끼어든 듯한 부담은 없었다.
출발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거의 16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서울 호텔까지 이동한 그는 당장 침대에 쓰러지고 싶었다. 그러나 로비에서 만난 일행은 다음 날 일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첫 출발 시각은 새벽 5시 30분.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몰리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일찍 출발했어도 인파를 피하지는 못했다. 그의 눈길을 끈 것은 냉전의 상흔이 남은 분단의 현장이 북적이는 관광명소가 됐다는 역설적인 풍경이었다. 식당과 놀이공원은 물론, 기념품 가게에서는 수류탄 모양의 지갑과 ‘DMZ’ 글자가 박힌 골프공까지 팔고 있었다. 그는 이런 모습이 무척 흥미로웠다고 전했다. 하지만 여권 검사를 받고 땅굴을 둘러보는 동안에는 분단의 무거운 현실을 마주했다.
첫날 관광객들로 붐비는 명소를 따라다니면서 그는 자신의 선입견이 맞는 것 아닌지 걱정했다. 한국의 문화를 깊이 경험하고 싶었지만, 익숙한 단체관광 코스를 밟는 듯했기 때문이다.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다음 날 태권도 수업에서였다. 일행은 도복으로 갈아입고 발차기와 격파를 배웠다. 스스로 운동신경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그에게 강사들은 서툰 발차기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즐거움이었고, 낯선 여행 동료들과 가까워지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는 혼자 한국을 여행했다면 태권도장에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부산의 요리학교에서 김치를 만든 경험도 마찬가지였다. 굽이진 골목길을 이동하느라 멀미에 시달렸던 그는 직접 만들어 먹은 김치를 바닥에 게워 내는 것 아닌지 걱정했다. 다행히 생강 사탕의 도움으로 수업은 무사히 마쳤다.
경주 교촌한옥마을에서는 한복을 빌려 입고 거리를 걸었다. 다른 나라의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고 사람들 앞에 나설 생각에, 차멀미를 하며 김치를 먹을 때보다 더 속이 울렁거렸다고 그는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그러나 관광객들이 한복을 빌려 입고 서로 사진을 찍어 주는 것은 한국에서 흔한 풍경이었다. 그도 일행과 함께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다만 사진은 곧바로 모두 지웠다고 털어놨다.
패키지여행은 그를 서울 밖으로도 이끌었다. 평소 혼자 여행할 때는 한 도시나 특정 지역에 머무르는 편이었지만, 이번에는 신라의 옛 수도 경주를 거쳐 부산과 제주까지 이동했다.
그는 특히 부산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했다고 밝혔다. 호텔 객실에서는 바다가 내려다보였고, 해변을 따라 늘어선 정교한 모래 조각 작품도 볼 수 있었다. 해 질 무렵에는 선셋 크루즈를 타고 바다에서 부산의 초현대적 스카이라인을 감상했다.
제주에서는 해녀 문화를 접했다. 관광객들을 위한 시연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해녀 전통을 이어 가려는 학교를 살펴보며 산소통 없이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삶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이처럼 혼자라면 찾기 어려웠거나 시도하지 않았을 활동들이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한국의 생활문화와 음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는 가이드도 만족도를 높였다. 소규모 인원이어서 궁금한 점을 편하게 물을 수 있었고, 매번 직접 동선과 일정을 조사하던 부담에서 벗어난 것도 즐거웠다.
다만 여러 지역을 둘러볼 수 있다는 장점은 동시에 단점이 됐다. 한 도시에 도착해 주요 명소를 보고 나면 다시 기차나 버스, 비행기에 올라 다음 목적지로 향해야 했다. 장소를 충분히 느끼기보다 방문 목록을 하나씩 지워 나가는 듯한 순간도 있었다.
경주에서는 적어도 이틀이나 사흘, 제주에서는 일주일 정도 머물고 싶었다. 시장과 먹거리 골목을 지날 때도 잠시 멈춰 구경하거나 음식을 맛보고 싶었지만, 개인의 즉흥적인 선택이 일행 전체의 일정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자유시간이 부족한 것도 아쉬웠다. 하루 종일 여러 사찰을 방문하다 보니 나중에는 사진과 메모를 확인해야 어디를 다녀왔는지 구분할 수 있었다. 긴 하루가 끝날 무렵 일정이 하나 더 남아 있으면, 일행은 관광보다 잠깐의 낮잠과 자유로운 산책을 원하기도 했다.
머더는 이런 아쉬움의 일부가 자신의 상품 선택에서 비롯됐다고 인정했다. 같은 여행사에도 혼자 참가하는 여행객을 위해 자유시간을 더 많이 배정한 상품이 있었지만, 자신은 상대적으로 일정이 촘촘한 일반 상품을 골랐다는 것이다.
여행을 마친 뒤 그의 평가는 분명했다. 예상보다 훨씬 즐거웠고, 특히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함께 여행하는 시간이 놀라울 만큼 좋았다는 것이다. 이른 기상과 붐비는 관광지가 피곤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돌아보니 그런 방문 역시 여행에 필요한 과정처럼 느껴졌다.
다시 패키지여행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도 긍정적이었다. 다만 소규모 인원과 특별한 체험을 제공하는 일정, 자신에게 맞는 여행사를 선택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여행기자다운 농담을 남겼다. 패키지여행이 좋았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 달라는 것이었다. 어떤 여행기자가 단체여행을 좋아한다고 쓰겠느냐는 것이다.(기사제휴=보스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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