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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10/06  조이시애틀뉴스
[레지나 칼럼] 미옥씨와 나, 이민자의 정체성

서울에 머무르던 중 전철을 타고 파주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우리가 머무는 지역에서 2호선 전철을 타고, 파주로 향하는 전철로 갈아타기 위해 대합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초행길이라 전철이 언제 올지 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내 모습이 조금은 불안해 보였던 모양이다.

옆 벤치에는 한 여자가 검은 비닐봉지에서 새끼손가락만 한 찐고구마 몇 개를 꺼내 동행자와 나누어 먹고 있었다. 언뜻 한국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던 그 여자가 나에게도 작고 새까만 고구마 하나를 권했다.

나는 아침을 든든히 먹은 데다, 여자의 모습이나 건네주는 고구마가 그리 신선해 보이지 않아 정중하게 거절했다. “고맙지만 아침을 든든히 먹어서 더는 못 먹겠어요.”

그러자 여자는 환하게 웃으며 다시 고구마를 내밀었다. “아주마이요, 밥배 따로 있고 간식배 따로 있소.” 두 번이나 거절하기가 미안해 고구마를 받아 껍질을 벗겼다. 겉모습과 달리 속은 뽀얬다. 한입 베어 물자 달콤함이 입안에 퍼졌다.

전철이 언제 오나 싶어 다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여자가 말했다. “아주마이, 쪼꼼만 기다리쇼. 인자 전철 오오.”

말투가 이북 사투리처럼 들렸다. 아직 50대로 보이는 여자에게 어디서 오셨느냐고 물었다. “내는 중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일하러 온 조선족입네다.” 우리는 같은 방향의 전철에 올랐고, 파주로 가는 동안 긴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며칠 전, 서울에서 크게 성공해 이름난 활동을 하는 지인과 저녁을 먹으며 중국 교포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일이 떠올랐다.

그 지인은 가능하면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인들의 무비자 입국을 거론하며, 불법으로 일하거나 사고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일부는 급하면 아무 데서나 대소변을 보고, 예의범절을 지키지 않으며, 큰 소리로 떠들고 새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중국 사람 서너 명만 모이면 너무 시끄러워. 여기가 중국이야, 한국이야 싶다니까.”

그는 중국 사람들의 입국을 아예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 와서 식당이나 마켓의 허드렛일을 하며 돈을 모아 집과 땅을 사는 모습을 보면, 이대로 한국이 중국 땅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제주도에도 중국 사람들이 좋은 땅을 많이 샀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지인에게 물었다. “그들이 오지 않으면 우리나라 관광사업에도 지장이 많지 않을까요? 또 한국 사람들이 중국인이나 연변 교포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인은 요즘 한국 사람들이 힘든 일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식당의 부엌일이나 허드렛일, 공장의 고된 작업은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관광사업의 대상을 유럽 사람들로 돌려야 한다며, 중국 사람들은 아니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날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는 전철 옆자리에 앉은 여자와 대화를 이어갔다. 나도 미국에서 온 교포라고 하자, 여자는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아름다울 미에 구슬 옥, 미옥입네다.” 자세히 보니 오밀조밀한 얼굴이 이름처럼 예뻤다. 본인의 표현대로 ‘자연미인’이었다. 미옥 씨는 장백산 근처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부모님은 한국 사람이었다고 했다. 한국계 중국인인 셈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나보고 중국 사람이요, 한국 사람이요 물어보면 내는 중국 사람이라고 말하오. 내는 중국 사람입네다.”

“그래도 미옥 씨는 한국계 사람이잖아요?” 내가 되묻자 미옥 씨는 분명하게 답했다. “아니, 일없소. 내는 중국 사람입네다. 중국에서 나고 자랐으니 중국 사람이지, 어데 한국 사람입네까? 한국에는 일하러 온 거지, 고향은 중국입네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중국과 한국이 축구나 농구 경기를 하면 어느 나라를 응원하세요?”

“중국팀하고 한국팀하고 시합하면 내는 중국팀을 응원하오. 중국 사람이니까 중국팀을 응원해야지 않갔소.” 미옥 씨는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주저 없이 말했다.

“그럼 중국과 한국이 싸우면 어느 편을 드실까요?” 미옥 씨는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내 어데 가서 이런 얘기 못 하오. 그런데 아주마이는 여기 사람 아니잖소. 솔직히 답하면 중국 편을 들어야디요. 내는 중국 사람입네다.”

혈통과 언어, 문화는 한국과 가깝지만, 국적과 성장 과정은 중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뜻이었다. 재중 교포는 어떤 사람들인가?

일반적으로 재중 교포라고 하면 중국 국적을 가진 한민족을 말한다. 그중 가장 큰 집단이 조선족이다. 중국 동북 3성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역사적 공동체이며, 한중 수교 이후 상당수가 한국으로 이주했다.

이들이 한국에 온 목적도 단순하지만은 않다. 건설·제조·서비스업 취업뿐 아니라 결혼과 가족 형성, 장기 정착, 자영업과 창업, 전문직 진출, 자녀 교육, 한중 양국을 오가는 사업 등 다양하다.

글을 쓰기 위해 관련 자료를 살펴보니, 노동시장에서 중국 교포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했다. 2024년 대한민국 건설현장의 외국인 근로자 가운데 한국계 중국인이 83.7%를 차지했다는 통계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조선족을 ‘우리와 같은 민족’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중국 국적의 외국인’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함께 존재한다.

나는 내가 만난 지인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 역시 이민자이기에, 중국 교포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됐다.

젊은 시절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우리는 미국 사람들이 하려 하지 않는 일을 하며 살았다. 남편은 낮에는 대학에 다니고 밤에는 닭 가공공장에서 내장을 치우는 일을 했다. 그 일을 오래 한 탓에 한동안 닭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나 역시 건물을 청소하며 공부했다. 피곤한 가운데서도 시간을 내 학위를 받았고, 밤낮으로 잠을 줄이며 힘든 일을 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주거환경이 좋은 곳에 집을 샀다. 노력해서 쌓은 지식을 자산으로 삼아 미국인들과 경쟁하며 살아오기도 했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한국에서 일하는 중국 교포들의 삶을 남의 일로만 볼 수 없었다.

초기의 중국 교포들은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온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다. 우리 미국 교포들 가운데도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비교적 나은 환경에서 살다가 더 공부하기 위해 유학 온 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려운 한국 생활에서 벗어나 좀 더 잘살아 보겠다는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미국에 온 이들도 있다.

후자의 경우 맨땅에 헤딩하듯 닥치는 대로, 물불 가리지 않고 일했다. 그렇게 자산을 모으고 성공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오랜 세월 미국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우리에게 시민권자로서의 선거권이나 영주권자로서의 권익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곳에서 살아갈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나는 20대 초반에 미국에 온 이민 1세대다. 만일 미국과 한국이 스포츠 경기에서 맞붙는다면,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을 목 놓아 응원할 것이다. 빨간 머리띠를 이마에 두르고 빨간 셔츠를 입은 채 붉은악마 응원단에 합류해, 두 손을 높이 들고 열정적으로 태극기를 흔들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다른 나라와 시합한다면, 당연히 미국 편이 되어 ‘아메리카 더 뷰티풀’을 부르며 힘차게 성조기를 흔들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태어난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 우리 2세들은 미국인이다. 한국과 미국이 스포츠 경기에서 맞붙으면 부모 때문에 조금은 눈치를 보겠지만, 아마 십중팔구는 자신들의 조국인 미국을 응원할 것이다.

미옥 씨가 중국을 자신의 고향이자 조국이라고 말하는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중국 교포들의 정체성과 그들이 한국에서 살아갈 앞으로의 삶을 바라보면서, 미국 교포인 나의 삶이 자꾸 겹쳐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레지나 채
소셜워커, 워싱턴가정상담소 소장
이메일: regina.chae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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