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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02/10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


28살 된 아버지를 살리려 11살 정조는 몸부림치며 할아버지께 읍소했으나 영조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잔인한 세월은 그래도 공정하게 흘러 혜경궁 홍씨 품에서 옥체를 보존한 정조는 왕위에 올라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 화산 (현재의 화성시)으로 옮기며, 인근에 현재의 수원화성(水原華城)을 축조했다. 

자신도 퇴위 후에 이곳에 은거하리라는 꿈을 꾸며 매년 화성을 방문했으며 어머니 회갑연을 수원행궁에서 거행하였다. 효자이고 성군이고 인간 승리이었다.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며 해체되고 파손되었던 수원화성은 축조 상황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의하여 1975년부터 보수 복원하였으며, 1997년에는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는 길은 교통편도 다양하다. 자동차로 약 40km, 지하철도 있고, KTX도 있고 무궁화 기차로는 서울역에서 단 30분 걸리는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수원 삼성이 떠오르는 오랜 역사 도시, 수원의 화관(花冠) 같은 수원의 화성(華城)이다.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가 다산 정약용에게 설계를 맡겨 1794년 1월부터 1796년 9월까지 2년 9개월 만에 완공한 이 성곽은 동서남북의 창룡문, 화서문, 팔달문, 장안문을 비롯하여, 포루,봉돈 (비상상태를 알리는 통신시설), 치성, 공심돈 (망루의 일종), 노대 등 41개소의 성의 시설물을 포함하는 약 5.7km의 성곽이다. 


화성 안에는 왕이 머물며 여러 행사를 거행한 행궁(行宮)이 있는데, 이는 1996년 복원을 시작하여 2003년 일반에게 공개되었다고 한다.

수원역에 도착하자, 관광안내소 안내원이 화성 구경의 시작, 팔달문 가는 버스정류장을 알려주었다. ‘시간 있으면 그 근처 남문시장을 한번 둘러보는 것도 좋아요~’ 한다. 물론 그렇겠지! 그러나 그보다 난, 영상으로 본 정말 그렇게 멋진 가 싶은, 화성길과 동서남북 4대문을 우선 챙겨 보고 싶었다. 

노선버스를 타고 팔달문 앞에 내렸다. 그런데 웬걸~~~ 기대보다 훨씬 활발하게 북적이는 남문시장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마치 조선시대로 돌아와 장날의 시장에 와 있는 것처럼, 남문시장은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명실공한 전통시장이었다.

각종 식당 안내 간판이 보인다. 팥 칼국수 한 그릇을 따끈하게 먹고 나니, 수원화성을 탐방할 에너지가 뿜뿜 피어오른다. 저기 열기구가 하늘에 떠 있어 사람을 태우고 수원화성 전체를 보고 있다.


화성을 걷는 모든 순간은 환상적인 시간이었다. 성곽 너머 맑고 나직하게 보이는 성 밖의 모습들. 비행기가 성을 가뿐히 넘을 수 있는 2022년은 이런 성으로 경계를 지킬 수는 없겠지만, 정조 임금이 화성을 아름답게 만들어 무엇인가를 방어하려고 했다면 화성이 군사적인 목적이 아니라 문화의 힘을 보여준 것일까? 그래서 화성은 수원시의 상징이자 랜드마크가 되었다.

정조는 1800년 49세 때 창경궁에서 세상을 떠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수원화성에서 상왕으로 여생을 보내려던 그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후손에게 경기도 수원 특례시에 지형과 조화를 이룬 조선의 아름다운 성곽을 선사한 셈이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soonyoun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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