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며 좀 괜찮은 음악회에 가서 이런저런 시름을 녹이고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른 연주회가 12월 27일 오후 2시 서초동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정명훈 피아노 리사이틀’이었다. 2006년부터 서울시립교향악단(시향)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는 지휘자 정명훈은 연말연시에 시향을 지휘하는 연주회들이 있지만 한편으로 피아니스트로서 2013년 12월 피아노 솔로 음반을 발매하고 전국 순회공연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잘 알다시피 정명훈은 1953년 부산 생으로서 1961년 가족과 함께 시애틀로 이주하여 워싱턴대학가에서 한식당을 경영하는 부모님과 미국 생활을 시작한 이 후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보여주며 1974년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쿨 2위, 1980년 LA 필하모닉 부지휘자, 1989년 파리 바스티유오페라단 음악감독, 그리고 명화, 경화 두 누나들과 정 트리오 활동 등 괄목한 재능과 성과로 국내외 많은 음악 팬을 매료 시키고 있다.
무대에 오르자 피아니스트 정명훈은 건반을 보는 대신 피아노 위에 놓여진 마이크를 잡았다. 청중에게 감사인사와 이 연주회가 손자손녀에게 들려줄 피아노소품에 대한 둘째 아들의 권유로 시작되었다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연주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어떻게 동양인이 서양음악을 그렇게 잘하느냐?’ 라고 한다.
그런데 자신은 태어나기 전부터 서양고전 음악을 들었으며 어렸을 때부터 형제들과 함께 서양음악을 자연스럽게 익혔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그는 2523석의 콘서트홀의 청중을 친구처럼 친밀하게 대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좌석은 3층이었지만 위치상 그와 피아노 건반을 편하게 잘 볼 수 있었다.
그는 첫 연주로 드뷔시의 ‘달빛’과 쇼팽의 ‘야상곡 Db장조를 친 후, ‘나의 연주는 완벽했던 적이 한번도 없으며 오늘 연주 또한 그렇다’ 고 하였다. 그의 말에서 그가 추구하는 것이 음악이고 피아노 연주이지만 그것 또한 불완전한 인간이 불완전한 인간에게 전하는 소중한 감정의 전달이고 이상일 뿐이다 라고 느꼈다.
잠시 천장을 보니 높은 천장 위에 옴폭하게 파인 목재 안으로 나란히 조명 전구들이 보이는 데 내 좌석이 3층이다 보니 천장이라도 비교적 가깝게 보인다. 저 높은 곳에 전구를 어떻게 끼웠을까. 전구를 끼우고 닦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연주회 휴식시간에 연주와 상관없이 청중석을 둘러보며 주변 구석구석에 손이 닿았던 사람들을 생각을 해본다. 정명훈 스스로는 모태 서양음악가였는데도 서양에서 보면 그는 여전히 서양음악을 잘 하는 신기한 동양인 연주자로 보이는 듯 하다.
연이은 연주를 통해 그는 청중의 기침과 호흡과 자잘하게 흐르는 사람들의 기척을 세밀하게 포착하여 흡수하는 듯 어느새 연주를 시작하고 음으로 전해지는 순간을 흐름으로 변모시키면서 연주회가 중반에 이르자 기침소리도 점점 들리지 않으면서 그의 연주는 안정감과 균형감으로 청중의 마음을 두드리며 진지하게 그의 음악적 세계로 이끌어 들어갔다.
모든 연주가 끝나고 앵콜로 그는 우리가 많이 아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슈만의 ‘트로메라이’ 등 4곡이나 받아줬으니 그가 얼마나 친절한 연주자였는지! 또 이어 CD 사인회와 당일 8시에 같은 장소에서 시향과 베토벤교향곡 9번 합창의 지휘 연주회까지 있었으니 시향을 둘러싼 그의 그간의 공과에 대한 논란에도 그의 시간은 이 세상 누구보다 충만하고 보람있게 자신의 아성을 채워 나가는 성실성을 보였다.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또 돌아가겠지. 그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이 나를 감동 시켰느냐에 대한 솔직한 증언일 것이다. 음악이냐 사람이냐, 연말연시의 바람이냐. 그래서 돌아오는 길은 좀 착잡했다.
기사/사진=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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