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인의 남편이 첩을 얻으면 여인은 굉장한 스트레스를 느낄 것이다. 그녀는 밥 맛을 잃을 것이고 잠 못 이루는 밤이 연속되며, 첩이 자신을 본처의 위치에서 밀어낼까 봐 상당한 불안감에 억눌리리라. 스트레스의 뜻은 좌절감, 분노, 또는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상황에 대한 신체적 반응이다.
이를 숫자로 표기할 때 그것을 스트레스 지수라고 하는데 최고치는 100이다. 어떨 때 지수가 100까지으로 올라갈까? 심리학에서는 보통 배우자의 죽음을 100으로 본다. 젊은 여인이 남편을 갑작스럽게 잃었다고 치자. 남편과 금슬도 좋았고 어린아이들도 있다.
그동안 집 안의 경제적 책임을 오롯이졌던 사람이 남편이라면 여인의 스트레스 지수 총액은 남편의 죽음으로 100, 경제적 압박감이 90, 그 중 유아기 아이가 아프다면, 또 큰 아이가 학교에서 사고를 친다면, 아픈 아이 때문에 80, 사고 친 자식 때문에 70이 되어 단 시간에 340의 압박감에 눌릴 것이다.
이럴 때 여인은 그 삶의 무게가 너무 버거워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충동을 느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족 동반 자살이라는 기사를 가끔 지면에서 본다.
올해 6월 말경 잘 알던 어떤 백인 노인분이 돌아가셨다. 그런데 내 마음을 복잡하게 한 것은 그의 아내가 올해 3월 29일 세상을 하직했다는 것이다. 정이 무척 좋아 둘이 서로를 소울 메이트라고 했다. 남편은 아내가 가고 3개월이 채 못되어 그 소울 메이트를 황급히 뒤따라간 것이다.
아내가 떠난 후 삶의 의욕을 잃은 걸까? 아침에 일어나면 이야기를 나눌 대상도 없어지고, 남편이 그녀가 죽기 전 병수발을 들었다면 아내의 죽음은 이제 그가 의미를 가지고 할 일이 없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활에 활력을 주는 원천이나 동기가 없는 무료한 삶도 스트레스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정 좋게 살던 배우자의 죽음이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에서부터 까칠한 직장 상사의 구박, 지인이 빌려간 돈을 안 갚는다든가, 집 안 가전 제품이 갑자기 작동을 멈추고, 전화기나 크레딧 카드의 분실, 도로 위에서 자동차 타이어가 팡 터지고, 사는 집의 집세가 올랐다는 통지서가 날라오는 등…. 우리의 삶 속에는 정말 많은 문제들이 복병처럼 엎드려 있다가 우리를 덥치곤 한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없는 삶이 어디 가당하기나 하나? 이 문제를 해결하면 저 문제가 터지고, 저 문제 풀어내면 또 다른 문제가 달겨든다. 우리의 현실에서 스트레스를 찾아볼 수 없는 곳은 ‘공동 묘지’ 정도나 될 것 같다. 공동 묘지에 가보라 그저 조용하다. 아-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 일상에서 쉼 없이 벌어지는 크고 작은 문제나 사건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이것은 우리의 건강과 행복에 직결되는 심각하고도 중요한 주제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잘 다루는 사람이다. 꼭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이는 수월하게 또는 조용히 풀어 나간다. 마치 몰아 치는 폭풍을 우회하여 저 높이 창공에 솟구쳐올라 소용돌이치는 폭풍을 관조하듯 그렇게 침착하게 도전에 맞선다.
반면 다른 이는 사건 하나로 낭패를 보고 명예나 재산을 잃기도 한다. 예를 들면 배우자가 바람이 났을 때 자신의 신조와 가치관에 따라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해결하는 사람이 있고, 동네 고샅에 나가, 아무나 붙잡고 배신한 배우자의 죄과를 까발리고, 억장이 무너진다 억울하다며 주변 사람들의 진을 빼는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놀라고 동정을 보이던 사람도 매일 같은 이야기에 넌더리가 나서 차츰 피하게 되고, 친구가 가장 필요 시기에 가장 외로워진다.
예전에 어릴 적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를 나는 같은 동년배라도 무척 존경했다. 그 애는 가난한 남편과도 잘 지내고 어린 시누이가 결혼할 때까지 한 집에서 살았다. 평소에 그애는 ‘난 이제 별로 무서운 것이 없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 말은 살면서 여러가지 어려운 일을 겪다 보니 그 속에서 지혜와 교훈을 습득해서 이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풀어나갈 비법을 알고 있다’라는 의미였지 않나 싶다.
스트레스가 바로 앞에 있어도 그것을 끌어안고 마음의 평화를 유지한다면 그것은 무던히 행복할 수 있는 해법이 될 것이다. 전에 친구의 ‘나 이제 별로 무서운 것이 없다’는 말의 의미가 무척 난해했던 철부지 나도 이제 제법 스트레스를 튕겨 낼 줄 안다.
가까운 예로 얼마 전 훼드럴웨이 시에서 보낸 우편물을 받았는데, 20마일 학교 구간에서 과속했다고 247불의 벌금을 내라는 내용이였다. 별 동요없이 온라인으로 벌금을 송금했다. 내가 평온하게 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여러해 전 시애틀 어느 병원 앞에서 250불의 파킹 티켓을 받은 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는 데 그 때 얻은 교훈 덕분이다.
시애틀의 겨울 저녁은 오후 6시 쯤이면 아주 캄캄하다. 낮에는 붐비는 병원 앞 길에 차를 댈 수가 없는 데 그 저녁 6시, 퇴근 시간이 넘어서 그런지 빈 자리가 있었다. “왠 일?” 신나게 주차를 하고 1시간 일을 하고 나오니 차 앞 유리창에 흐연한 종이가 끼어 있었다.
스트레스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첫째 250불의 벌금이 아까웠고, 둘째, 생각해보니 아까 들어가며 흘깃 본 불빛에 커브 쪽 색깔이 흰빛인 게 눈에 들어왔는데 그것을 무시했던 것이다. 왜냐면 그게 흰빛이 아니라고 부정해야 차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수고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
컴컴한 겨울 길거리에서 나는 자학하기 시작했다. ‘ 야 너는 미국에 온 지가 얼마나 되는 데 파킹 하나 제대로 못하고, 커브가 흰 색깔인 것을 보았으면서 스스로를 속이다니 구제불능이 따로 없다!’ 쓰디쓴 독백은 계속 이어지고 저녁 8시로 넘어가는 시간이어서 하루의 피곤도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는 온 몸에 힘이 빠져 차가운 땅에 쓰러질 듯 주저 앉아 그 때 느껴지는 감정을 하나님 앞에 가져갔다. ‘하나님 저 이 감정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요. 아 정말 어떻게 빨리 이 감정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을까요?’ 이렇게 탄원을 하고 조금 있자니 생각 하나가 머리 속에 들어왔다. ‘ 벌금을 내면 이것은 시애틀 시정부로 들어가는데-- 오늘 밤 나는 시애틀 시민들을 향해 250불을 쾌척한다.
주차 티켓을 받는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내가 우리 시애틀 시민들을 위해 기부할 기회가 있겠는가! 이렇게 되니까 신기하게도 짓눌리던 조금 전의 감정이 한결 가벼워지기 시작하였다. 이제 나는 돈을 벌고 있고, 벌금도 내고 세금도 내고 그러면 일등 시민이 아닌가. 콧노래를 부르며 집에 돌아와 티켓 봉투에 수표를 써서 우편함에 넣었다.
남의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은 바꿀 수 없으나 내 생각은 내가 원하면 바꿀 수 있다. 생각을 바꾸면 감정이 달라지고 감정이 달라지면 행동도 달라진다. 아까 소개한 훼더랄웨이에서 날라 온 스피드 티켓도 ‘이번에는 훼더랄웨이 시민들에게 247불 투척’ 이렇게 생각하니 만사가 편안하였다. 벌금은 도로 보수 공사에 주로 쓰인다고 한다. 길을 닦는데, 부조하는 마음으로 내면 스트레스가 덜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성공한 스트레스 퇴치의 예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인즉 교회 헌금을 낼 때마다 자꾸 아까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낼 때마다 스트레스가 되니 어쩌나 고민하게 되었다. 헌금이 아깝다고 느껴지면 스트레스를 받으며 낼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나님이 그런 헌금을 기뻐 받으시지 않을 터이니.
그러나 나는 내기는 내되 기쁜 마음으로 내고 싶었다. 그래서 단순히 아깝다고 여기는 그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그가 나에게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직장생활 잘하게 하시니 나의 수입은 모두 그분의 덕이다. 그 중 내가 대부분을 쓰고, 일부 드리는 것인데’ 라고 생각을 전환하니 나도 좋고 하나님도 좋고 쌍방이 윈윈이다.
김미순
심리학 석사(California Chapman University)
워싱턴주 간병인 교육강사
워싱턴주 공인 한국어 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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