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람들은 카터와 케네디 대통령을 배출한 미 해군 사관학교를 상당히 높이 평가한다 그곳을 졸업한 사람이 일반 회사에 들어가려고 하면 회사 측에서는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아들도 13년의 해군 장교로서의 임무를 뒤로하고 일반인으로 직장을 잡으려 했을 때 복수의 회사에서 러브 콜을 보냈다. 한국에서도, ‘역시 남자는 군대에 다녀와야 제 구실을 한다’고 한다.
사관학교 출신이나 군 복무를 마친 사람을 사회에서 환영하는 이유는 뭘까? 그건 그 사람이 “훈련”이 잘 되어 있어 삶을 살아내기에 필요한 여러 덕목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까지도 잘 리드해 나갈 힘이 있다고 여기는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련을 겪은 후에 정금같이 나오리라.’ 라는 성경 구절처럼 사람들은 그가 사관학교에서 정예의 훈련을 받아, 무슨 일을 맡든지 잘 처리하는, 솔솔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일거다.
나도 아들이 미 해군 사관학교에 들어갔을 때 몹시 기뻤다. 그런데 그의 사관학교 입학은 솔직히 생각하면 좀 의외였다. 그 학교에 들어가려면 보통 반에서 일 이등 정도는 해야 한다고 하는데 아이는 로스앤젤레스 외곽 도시에 있는 시골 공립 고등학교에서 꼴찌에서 고전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리 출중한 아이도 아니었다.
그런데 약간의 해프닝처럼 어느 해인가 그 지역(Antelope Valley) 청소년 클라니넷 연주자 중에 3등에 마크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 외에는 그저 그런 학생이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만 마치고 서른 중반이 넘어 늦깎이로 들어간 미국 대학에서, 영어가 외국어지만 제 어미는 항상 A학점을 받았다. 어미 뿐이랴 미국에서 공학박사를 딴 외삼촌과 미국인 철학박사 친 할아버지를 두고있던 아이는 어이없게도 고등학교 졸업 때 탑 20%에도 들지 못하는 그야말로 참담한 상황의 중심에 있었다.
그 고등학교는 졸업 때 탑 20%의 아이들은 노랑색 졸업복을 입히고 나머지는 청색 가운을 입혔다. 그런데, 그 탑 20%를 상징하는 노랑색 가운 그룹에도 아들은 속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는 졸업식 날 자신의 처지가 창피하였던지 공연히 심통을 부렸다. 내 얼굴은 많이 어두웠고, 마음도 큰 돌덩어리가 가슴 한복판에 얹혀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내 자식이라면 무조건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여야 한담?’ 애당초부터 그게 기정 사실처럼 기대했던 허황하고 교만한 태도에 하나님께서 여실히 난타를 가하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는 동네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했다. 그러던 중 어는 날 뜬금없이 군에 입대하겠다고 했다. 아이는 청소년 때 보이 스카우트에 입단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보이 스카우트 감독을 맡아주었던 같은 동네의 미군 장교가 군에 가라고 제의한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해군 졸병으로 입대하여 나를 떠나갔다. 그후 해군에서 프랩 스쿨이라고 하는 사관학교 입학 준비를 하는 학교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지만 난 아이에 대하여 큰 기대를 접고 있던 상태였다.
어느 날 전화를 하니 수화기 저 쪽이 시끌벅적하였다. 어디가 그렇게 시끄럽냐고 하니까 미스터 추네란다. 미스터 추가 누구냐니까 스폰서라고 했다. 좀 바꿔달라고 했다. 누구 엄마라고 나를 소개하고 아이가 어떻게 좀 따라가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가 혹시 내 아들의 부족한 점을 나열하면 어떻게 하나, 슬프게 들을 각오를 해야겠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는 매우 뜻밖의 말을 하였다. 아들이 모든 면에서 “일체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통화가 끝나자 난 전화기를 옆에 던지고 마구 울었다. ‘그러면 그렇지 내 자식이-- 속에서 또 그 자만이 올라왔다 그런데 다음 순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왜 나를 떠난 후에 출중해진거지? 옛날 내 곁에 있을 땐 왜 그리 빌빌거린거야?
애는 나와 분리되고 나서야 저 밑에 숨겨져 있던 가능성이 솟아나온 걸까? 모를 일이었다. 부모가 자기 인생을 책임져주고 쉽게 살도록 보장해 줄 거라는 어려서부터의 기대가 부질없다는 걸 군에 가서 깨달은 걸까? 스스로 일으켜 세우지 않으면 도태될거라는 두려움에 맨땅에서 헤딩하듯 죽기 살기로 노력한 것일까?
아들이 잠깐 다니러 왔을 때 그가 써 놓은 노트를 보니 집을 떠나서 자신감을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미루고 게으름을 부려 실패했던 어린 시절을 후회하고, 나도 마음먹고 하면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일거다. 아이는 프렙 스쿨을 거쳐 수월하게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식이 뜸했던 아들이 연락이 왔는데 내용인즉슨 그곳에서 나오고 싶다는 거였다. 그 애의 말을 빌리면 ‘죽어도 못하겠다’ 였다. 내가 “그래도 이왕 들어갔는데 마쳐야지!” 하니까 “엄만 내가 죽어도 못하겠다는데…...” 하였다.
급한대로 아이의 조부에게 연락해 당신 손자가 우울증에 빠진 거 같다 좀 만나봐 달라고 에스오에스를 치고 나는 애가 타서 속을 끓였다. 그 때가 사관학교 1학년 때였는데 미국에서 공부해 본 경험에 의하면 학교 초기가 가장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일단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해야 한다. 학과 과정을 그때 그때 따라 잡는거는 더 말해 무얼하랴. 그것은 마치 물 속에서 가라앉지 않기 위해 두 발을 계속 움직이며 지속적으로 머리를 수면 위로 나와 있도록 유지하는 것처럼 힘이 든다.
거기다 사관학교 특성상 혹독한 훈련이 더 해진다. 전쟁터에 나갔을 때 훈련이 잘 안된 장교가 리드하는 부대원들은, 훈련이 잘되고 판단이 확실한 장교 밑에 있는 사병들보다 더 많이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싹수가 노오란 학생은 어느 때든 장교가 되는 대열에서 잘려나간다.
아들은 분명 그 잘려나가는 상황은 아닌 듯하였다. 그런데도 아이는 요지부동이었다. 나도 애를 끓이다가 ‘지가 못한다는데 어쩌겠어’ 하며 내가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몹시 쓴 약을 머금듯 마주했다.
그러면서 ‘사관학교 못 나와도 아이는 나보다 영어 잘하고 사대육신 멀쩡하니 먹고는 살겠지, 굶어죽지 않으면 되지 않은가!’ 하고 생각을 정돈하였다. 그런데 결국 아이는 학교에 남아 졸업을 했다.
애가 나간다고 하니까 학교당국에서 하는 말이 “그동안 너에게 들어간 학비, 기숙사비 기타 들어간 비용을 전부 일시불로 토해 놓고 나가라’였다. 매달 학교에서 나라 돈으로 용돈까지 주던데, 지가 돈이 어디 있어 그 돈을 일시불로 낼 것인가? 그래서 그대로 있다 졸업을 한 것이다.
아이는 졸업 후에 일본 대서양 등을 다니며 군 복무를 했다. 어디서 전쟁 소식이 들리면 나는 가슴이 타 들어갔다. 한번은 아이 소식이 궁금해 구글 검색을 하니 망망대해에 군함이 저만큼 뒤 배경으로 있고 이쪽에 작은 쾌속정 제일 앞쪽에 아들이 혼자 앉아있었다.
바로 뒷줄에 해병 대 여섯 명 그리고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은 열 너덧명 정도의 민간인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사진 설명을 보니 아들이 바다에 떠다니는 보트 난민을 구조해 군함으로 이동시키는 작전을 지휘 중이었다.
사회의 한 모퉁이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아들을 보니 감사했다. 현재 아들은 미네소타 주에 있는 보스톤 사이언스라는 심장박동 기계 등 의료기구 만드는 회사의 관리직으로 일하고 있다.
김미순
심리학 석사(California Chapman University)
워싱턴주 간병인 교육강사
워싱턴주 공인 한국어 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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