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가 합법적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영주권자들의 시민권 신청에 대해 한층 더 엄격한 심사를 예고하고 있다고 CBS가 16일 보도했다. 이번 조치는 불법 이민 단속에 이어 합법 이민 경로까지 제한하려는 미국 정부의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연방 이민국(USCIS)은 16일 새 지침을 통해, 시민권 신청자의 ‘선량한 도덕적 성품(good moral character)’ 요건을 평가할 때 단순히 범죄 전력 여부만 확인하는 기존 방식을 탈피, 신청자의 행동, 사회적 규범 준수, 지역사회 기여 등 종합적인 요소를 고려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일반적으로 영주권자는 3년 또는 5년 거주 후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범죄 기록이 없고 영어 및 시민권 시험을 통과하면 요건을 충족한다. 과거 공화·민주 행정부 모두 ‘선량한 도덕적 성품’ 평가는 살인이나 중범죄, 마약 범죄, 상습 음주 등 이민법에 명시된 범죄 여부에 따라 판정했다.
그러나 새 정책은 이를 확대해 지역사회 참여, 가족 부양, 학업 성취, 합법적이고 안정적인 고용, 세금 납부 등 긍정적인 기여 요소를 강조하는 동시에,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시민적 책임과 상충되는 행동’도 결격 사유로 고려하도록 했다. 예컨대 반복적 교통 위반, 괴롭힘, 공격적 호객 행위 등이 이에 포함된다.
시민권 신청을 앞둔 한인들도 주의가 요망된다. 페더럴웨이에 거주하는 이모씨는 1999년 퓨젯 사운드 바닷가에서 굴을 한도 이상 딴 혐의로 적발돼 현장에서 153달러의 벌금티켓을 받았다.
이씨는 벌금을 즉각 납부하고 그 이후로는 굴 채취 제한 양을 엄격하게 지켜왔지만 2003년 시민권 시험에 무난히 통과하고도 이민국으로부터 “도덕적 인격이 결여됐으므로 (시민권신청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고 깜짝 놀랐다. 물론 이씨는 법정 투쟁을 통해 결국 시민권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경우에 어려움을 겪게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민국은 범법 행위가 있었던 경우에도, 사회봉사, 세금 및 양육비 납부, 보호관찰 이행, 지역사회의 탄원서 제출 등 재활 노력이 입증되면 심사에 반영될 수 있다고 밝혔다.
USCIS의 매튜 트래제서 대변인은 CBS뉴스에 보낸 성명에서 “미국 시민권은 세계 최고의 기준이며, 최고의 인재들에게만 부여돼야 한다”며 “이번 지침은 새 시민들이 미국의 문화·역사·언어를 받아들일 뿐 아니라 선량한 도덕성을 갖추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민국 고위 관계자로 근무했던 더그 랜드는 이번 조치가 합법 이민자들의 시민권 신청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는 ‘선량한 도덕성’ 개념을 과도하게 확대 적용해, 단순한 교통 위반 같은 사소한 행동까지 시민권 박탈 사유로 만들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불법 이민자 단속을 위해 국경에 군 병력을 배치하고, 전국적인 이민 단속과 신속 추방 절차를 확대해왔다. 동시에 난민 수용 축소, 특정 국가 비자 제한, 합법 이민 절차에 대한 소셜미디어 심사 강화 등 합법 이민 경로까지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USCIS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매년 60만~100만 명의 이민자가 시민권을 취득해왔다. 하지만 이번 정책 변화로 시민권 신청 과정이 한층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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