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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8/11/21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 왜 행복을 바라게 되었을까?


사람이면 누구나 행복하길 바란다. 왜 행복을 바라게 되었을까?


역으로 생각해보니 힘들고 마음이 아프다 보니 그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아프지 않고, 억압되지 않아야 할 것 같고, 의식주가 충족되고 자기가 만족하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것에서 끝났으면 문제가 해결되었을 텐데,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보니 사회 속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에 좌우되지 말아야 한다는 관점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행복이란 건강, 사랑 등이 충족되어야 하는 절대적인 면과 부, 명성, 비교 등 사회 속에서의 상대적 면, 이 둘 사이에 어떤 균형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서울통신 글(2013년 9월 14일)에 ‘앉은 곳이 꽃방석’이란 제목의 글을 쓰기도 하였다. 


현자(賢者)는 말하기를 상대적인 박탈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는 양극화를 줄여나가야 하고, 개인적으로는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동감한다. 그런데 이론은 잘 알고 있으면서 실제 절제는 쉽지 않으며 각자의 입장에서 권리주장과 불만은 계속된다. 지난 몇 달간 상대적 행복을 채워 나가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상당히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1990년대에 미국에 갔을 때 미국의 풍요로움에 감탄하며 무엇보다도 사람 사이에 널찍널찍한 간격이 너무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반짝이는 욕조에 뿌듯해하고, 주택과 주택 사이 충분한 간격에 고개를 끄떡이면서도, 대형 파킹 랏에 하나 둘 씩 사라지는 자동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사막에 서 있는 듯한 메마른 고립감을 느꼈다. 그때 처음 주변이 아무리 쾌적하고 청결해도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은 별문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각국에서 온 친구들이 나름대로 쏟아 대는 독설은 자유롭긴 했지만, 개인은 너그러워지지가 않았다. 넓고 풍요로우니 감사나 타협보다는 내 주장을 고수하고 상대를 배제하기가 수월하였다. 자칫 나태해지거나 향락에 빠지기도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었던지 나의 일터의 구성원들은 모두 책임감 있고 진솔하게 직장의 일상을 이겨 나갔고, 특히 늘 환하게 웃으며 ‘하이~’ 하고 볼 때마다 먼저 인사해주시는, 너무나 성실하고 고매한 인품의 보스님은 50대 미국인의 놀라운 친절함과 포용력을 보여주셨다.



행복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 절제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지만, 충족의 행복감도 필요할 것이다. 실천 가능한 단기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성취를 위해 노력한다든가, 또는 미식(美食)이나 심미(審美) 같은 감동의 세계도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행복은 ‘보기에 좋다’라는 것과도 무슨 관계가 있을까?


혼자 어둠 속을 걷는다든가, 자신의 어떤 능력이 남보다 부족하다든가 할 때 그 자체로는 본인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광경을 누가 볼 때 혼자라는 것은 어색하고, 잘하지 못한다는 것은 심리적 부담이 된다.


나는 혼자 뭔가를 하는 것이 그냥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뒤에 있던 튀김 집에 들러 매일매일 오징어 튀김을 사 먹고 집에 가곤 했다. 그런데 어떤 날 나처럼 혼자 와서 먹고 가는 사람을 봤는데 너무 이상하게 보였다. 내가 하는 것은 무심코 좋았는데 내가 남을 보는데 왜 그렇게 이상했는지 그다음부터는 나도 가지 않게 되었다.


혼자 산책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혼자 산책하는 사람보다도, 둘이 산책할 때 보기에 좋다. 남녀 둘보다는 자녀가 있을 때 더 보기가 좋다. 또 조부모와 같이 삼대가 산책하는 가족이 있으면 부럽다. 한 가족이 아니라 두 가족, 몇 가족이 같이 산책을 한다면 더 보기가 좋다.


하지만 너무 사람이 많으면 보기가 좋지가 않다. 이런 식으로 뭔가 보기 좋을 때 사람은 행복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것일까? 남 보기 좋으라고 싫은 것을 억지로 할 필요도 없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밀 필요는 없지만, 요즘 나는 남 보기에도 좋기 위해 똑바로 서고 예쁘게 걷기 위해 신경을 쓴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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