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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10/20  조이시애틀뉴스
[김수영 이야기] 아버지의 금연 비결

아버지는 내년이면 만 백 세가 되신다. 그런데 생활 시간표만큼은 자식들보다 훨씬 반듯하시다. 아침 여덟 시에 아침 식사, 낮 열두 시에 점심, 오후 다섯 시에는 어김없이 저녁을 드신다. 아버지를 뵙고 있으면 시계가 아버지께 식사 시간을 알려주는 것인지, 아버지가 시계에 시간을 알려주시는 것인지 모를 때가 있다.

일찍 일어나시고, 늘 소식하시며, 어깨를 반듯하게 펴고 다니신다. 봄이면 뒤뜰의 채소와 꽃을 가꾸느라 바쁘시다. 지금도 운전을 하시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도신다. 일흔이나 여든쯤으로 보인다는 말을 들으실 만큼 정정하시다.

나도 아버지의 생활 습관을 배워보려 한다. 다짐은 자주 하는데, 실천은 좀처럼 아버지를 따라가지 못한다.

아버지는 인자하고 인품 좋기로 소문나셨던 할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나셨다. 동네 사람들이 “어르신, 어르신” 하며 따르던 할아버지는 독자이셨다. 그러니 집안에서 대를 이을 아들을 얼마나 기다렸을지 짐작이 간다.

그 집안의 맏며느리가 되신 어머니는 딸을 내리 넷 낳으신 뒤에야 아들을 얻으셨다. 둘째 딸인 나까지는 그런대로 받아주신 것 같은데, 셋째 딸이 태어나면서부터는 시어머니의 눈총이 매서워졌다고 한다.

어머니는 11년 전 여든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도 당시의 서러움을 종종 말씀하셨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잊히지 않았으니, 젊은 날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깊으셨을까.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실 때면 꼭 덧붙이시는 말씀이 있었다.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딸을 넷이나 낳았다고 한 번도 불평한 적이 없으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닮아 말씀이 적고 침착하셨다. 칭찬이나 사랑의 표현을 자주 하시는 분은 아니었지만, 자식들을 생각하시는 마음은 깊으셨다. 그 마음을 떠올릴 때면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다.

이처럼 바른생활의 모범이신 아버지에게도 한때 좀처럼 고치지 못하시던 습관이 있었다. 바로 담배였다.

미국에 이민 온 초기, 아버지는 담배를 많이 피우셨다. 건강을 걱정하시는 어머니와 담배 때문에 언쟁을 벌이실 때도 있었다. 아버지도 끊으려고 애쓰셨다. 껌도 씹어보시고 금연 패치도 붙여보셨지만, 며칠 참다가 다시 피우시기를 몇 번이나 거듭하셨다. 생활을 그토록 철저히 관리하시는 아버지에게도 담배만큼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당시 동네 중학교에 다니던 넷째이자 막내딸인 여동생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낯선 미국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는 일부터 쉽지 않던 때였다. 아시아인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말까지 들으며 마음을 다치곤 하던 동생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같은 반 아이들이 동생에게 담배 냄새가 난다며 가까이 오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생은 서러움에 북받쳐 큰 소리로 울었다.

집 안에서 피우신 담배 냄새가 커튼과 벽에만 배어 있었을 리 없다. 아이의 옷에도 스며들어 학교까지 따라갔던 모양이다.

그날 아버지는 단번에 담배를 끊으셨다.

며칠 참다가 다시 피우신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애를 써도 놓지 못하시던 담배를, 딸이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을 들으시고는 단번에 놓으셨다. 그리고 거의 45년이 지난 오늘까지 다시 피우지 않으셨다.

딸이 울며 돌아온 그날, 아버지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껌도 패치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딸의 눈물이 해냈다. 아버지는 긴 설명 대신 담배를 끊는 것으로 대답하셨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뒤에도 아버지는 홀로 검소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가고 계신다. 끼니를 챙기시고, 몸을 움직이시고, 계절에 맞춰 뜰을 돌보신다. 은퇴 후의 하루하루를 아버지만큼 꾸준히 가꾸는 분도 드물 것 같다.

백 세를 앞두신 아버지를 보며 나는 또 다짐한다. 식사도 제때 하고, 조금 덜 먹고,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고. 물론 내일부터 당장 아버지처럼 오후 다섯 시에 저녁을 먹을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그래도 배우고 싶은 마음만큼은 진심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반듯한 뒷모습을 보며 가끔 생각한다. 오래전 딸 하나가 울며 돌아온 날, 아버지는 남은 생애의 습관 하나를 바꾸셨다. 말씀이 적으셨던 아버지가 자식에게 들려주신, 참 오래가는 대답이었다.



김수영 
힐릭스부동산 대표
전 평통 시애틀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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