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 런던에서 한동안 미술 겔러리들을 찾아 다닌 적이 있었다. 런던은 빤한 도시 켜켜에 수많은 역사와 보석을 숨기고 있는 요술지도 같았기 때문에 작은 지도 하나 만 가지면 버스를 타고 곧잘 쉽게 깊게 숨겨진 화랑들을 찾아 낼 수 있었다.
그래도 일단 주소와 가는 길은 꼼꼼히 체크해 놓고는 그날도 마지막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가 파란 불로 바꾸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반대쪽으로 건너기 위해서 서있는 사람들도 똑같이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신호가 바뀌어서 건너편에 있던 사람들이 내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길을 건너지 않고 잠시 기다려서 내 쪽으로 길을 건너는 한 사람에게 물었다.
‘XX겔러리아세요?’
‘네! 제가 지금 거기서 오는 길입니다.’
그는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내가 가는 장소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그를 먼저 알아보고 있었다는 것을. 맞은 편 서있는 사람들 중 겔러리를 들려 작품을 감상하고 나오는 사람의 착의와 표정의 범위를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 집중 만 한다면 그런 비슷한 표정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일요일 낮 12시 강남의 한 버스 정류장 무리의 사람 중 내가 가는 길을 묻기에 적당한 사람을 찾는다. 나는 지도를 가지고 있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내가 찾는 곳 인근 극장을 알만한 사람을 찾는다. 그녀는 30대로 보이는 짙은 청색의 하지만 계절에 맞게 얇은 옷감의 여름 원피스에 가느다란 벨트로 허리를 단정하게 둘러맨 이어폰을 끼지 않은 여성이다.
내가 그 극장을 묻자, 그녀는 가는 버스를 가르쳐 주었고 마침 정차한 그 버스를 타고 두 정류장 만에 S역 앞에서 내렸다. 그곳에서 극장을 끼고 지도대로 YY겔러리를 찾았지만 큰 거리 안쪽으로 들어선 동네라서 일요일 점심시간 지나는 사람들도 드물고 내가 생각하는 라인에서 겔러리는 나오지 않는다. 방향을 잘못 찾은 것일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위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 중에 20대의 편한 복장의 하지만 아주 집에서 입는 차림은 아닌 한 여성에게 화랑위치를 물어보았다. 그녀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내게 짜증이 난 것일까?) 드디어 저기 보이는 식당 간판을 끼고 왼쪽으로 들어 가라고 주차장 옆에 숨어 있는 지하화랑 YY이름을 기어이 기억해내서 내게 알려 주었다.
알만한 사람을 골라 길을 묻기 시작한 지가 꽤 되었다. 역사가 오래된 동네에서는 70대 이상 분들에게 길을 물어 보면 정확하고 환대 받으면서 답을 들을 수 있다. 한편 사람이 붐비는 신시가지에서는 30대 40대 남성에게는 관공서나 큰 기업관련 시설을, 여성에게는 문화시설을 물어본다.
신도시 쇼핑센터는 50대 여성에게 도심의 외국어학원은 패기 넘치는 20대에게 물어보면 장소는 물론 운 좋으면 선호도까지 들을 수 있다.
이렇게 줄줄이 꿰고 있어서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보이는 게 많으니 세월을 그 만큼 많이 보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길을 묻고 대답할 수 있는 대상을 좁혀 나가는 이유는 내가 찾는 목적물이 분명하다는 데 있다.
찾는 목표가 분명하다면 서울에서도 서울 밖에서도 물어 볼 사람은 물론 길은 보이게 되어있다.
글/사진 =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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