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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11/10  조이시애틀뉴스
[기획특집] 서북미 한인사회 뿌리를 찾아서 (4)...가족 초청으로 형성된 스포켄 한인사회

스포켄 한인커뮤니티 초기 정착자인 하종해 전 스포켄한인회장 부부.


시애틀에서 I-90 고속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5시간 거리에 위치한 워싱턴주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스포켄은 동부 워싱턴주의 중심지이자 차분한 분위기의 교육도시다.


한국전쟁의 첫 미군 희생자가 바로 스포켄 출신으로 시에서 다운타운의 아름다운 주택단지 호숫가에 추모비를 건립하는 등 한국과는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다.


스포켄 한인사회는 70년대 초부터 한국 이민자들이 하나둘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2천여명을 포용하는 어엿한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197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와 로드 아일랜드주의 프로비던스를 거쳐 1974년 스포켄에 정착한 하종해 전 스포켄한인회장(76)은 스포켄 한인사회의 발전을 주도하며 사실상 대부의 역할을 맡았다.


하 전 회장은 "한 지인이 보수적인 교육도시라며 스포켄을 추천했고 당시에 시애틀은 경기불황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스포켄에 정착하게된 배경을 설명했다.


스포켄시가 하종해 전 한인회장에게 수여한 감사패.


스포켄 한인인구 2천명에 달해
대규모 가족초청으로 커뮤니티 이뤄


초기에 한동안 워싱턴주 공무원으로 근무한 그는 10년 뒤 임대업에 뛰어들어 아파트와 호텔을 경영해 성공을 거뒀다. 


스포켄에 안정적인 기반을 확보한 그는 1978년 시민권을 취득하자마자 바로 한국의  5형제와 부모 등 양가 가족 전부를 초청, 첫 가정 6명을 시작으로 줄줄이 1백명에 달하는 친지들이 스포켄으로 이민을 왔다.  물론 이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는 점도 털어놨다.   


하 전 회장은 70년대 초에는 스포켄 한인은 서너 가정에 불과해 각 가정에서 번갈아 가며 모여 예배를 갖는 등 가족같이 지냈다고 말했다. 공군기지가 있는 스포켄에는 당시에 국제결혼 여성이 여럿 있었고 스포켄 남쪽의 체니에 소재한 이스턴워싱턴대학(EWU)에 신석한 교수(지질학)가 재직했다.  


그는 아파트를 경영하며 한국에서 국제결혼으로 이민와  고통을 겪고 있는 20~30대 한인 여성들을 돌봐주기도 했다. 부모같이 도와주며 통역이나 상담을 해주고 아파트에 노인회관도 운영하며 외로운 한인 노인들에게도 신경을 썼다. 또한 1990년에는 한인회 사업으로 무연고 한인들을 위해 그린우드 메모리얼에 10기의 묘자리도 구입해 '한국인 동산'을 조성했다.
 

한 전 회장은 1980년 5월 18일 세인트 헬렌스 산이 폭발할 당시의 기억도 생생하다. "그날 오후 1시에 낚시를 하고 있는데 새카만 구름이 몰려왔다. 이어 2시쯤 되니까 사방이 캄캄해지면서 눈앞이 안보였다. 프리웨이가 폐쇄돼 결국 귀가 도중 대피소에 들어갔다."


화산재가 바람을 타고 날라와 스포켄 상공을 뒤덮은 것이다. 무려 5인치의 재가 쌓여 지붕과 집 주변의 재를 치우는데만 수일이 걸렸고 직장에서 퇴근을 하지 못해 몇일간 숙직을 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2008년 곤자가대학을 방문한 김수환 추기경이 스포켄한인회를 찾았다. 맨 오른쪽은 신원택 당시 한인회장.


현재 스포켄의 한인인구는 2천여명이지만 워싱턴주립대학(WSU)이 소재한 풀만을 포함하는 동부 내륙지역의 전체 한인 수는 3천명이 넘는다는 것이 하 전 회장의 추산이다.  


스포켄 지역의 한인 유입은 80년대 들어 본격화됐다.  특히 LA의 흑인폭동(1992년) 이후 캘리포니아주에서 많은 한인들이 이주해왔다.


한인들이 늘어나며 1977년 설립된 스포켄한인회는 근래에는 회장직을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어 전직회장 등 원로들이 번갈아 가며 회장일을 보고 있다. 하 전 회장도 3대 회장을 역임하고 1989년, 2003년에도 회장직을 맡았다.


1980~90년대에는 매년 독립기념일에 한인회 주도로 스포켄 다운타운의 리버프론트 파크에서 열린 각국 고유의 음식을 파는 행사에 한국부스도 설치, '코리아 데이' 행사 공연도 하고 불고기도 판매하며 한국을 알리는데 열을 올렸다.  


스포켄 한인사회는 가족초청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스포켄한인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도 스포켄 한인사회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신원택 미주한인회총연 서북미연합회 이사장도 하 전 회장의 매제이다.  초기의 몇몇 이주자 가족이 스포켄 한인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2004년 한국의 날 행사에 참가한 스포켄 출신의 탐 폴리 연방하원의장이 신원택 당시 한국의 밤 운영위원장(가운데)의 안내를 받고 있다.


'한국의 밤' 행사로 주류사회에 한국 알려
2008년 김수환 추기경 방문


신 이사장은 1984년 스포켄으로 이민와 이듬해부터 한인회 총무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한인회장을 역임하고 지금도 한인회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나서고 있다. 


"과거에는 스포켄 주류사회에 한국에 대한 인식이 없어 학교에 걸려있는 만국기에도 한국 국기가 포함되지 않을 정도였다"고 회고한 신 이사장은  한인회 주최로 1986년 10월 로저스 고등학교에서 개최한 '한국의 밤' 행사에는 입법, 사법, 행정, 교육계 등 각계 인사들을 초청해 무려 1천3백명이 참석해 학교 강당을 가득 메웠다고 말했다. 


신 이사장은 "이날 행사는 주류언론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이 행사를 계기로 스포켄의 각급 학교의 만국기에 한국기가 걸려 뿌듯했다"고 말했다. 


그는 1985년 스포켄 한글학교 통합추진위원장, 1996년 스포켄 한인상공회장, 1997년 스포켄-제천시 자매도시 추진위원, 그리고 1998년부터 지금까지 스포켄시 다운타운 개발위원으로 1999년부터는 스포켄시 아시아문화위원으로 주류사회와 한인사회 간 가교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신 이사장은 2004년 10월 '한국의 날' 행사에는 스포켄 출신의 탐 폴리 연방하원의장이 기조연설자로 나오고 2008년 8월에는 곤자가대학을 방문한 김수환 추기경이 스포켄한인회를 방문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한국을 주류사회에 소개하려는 한인회의 노력이 이어진 가운데 스포켄 시의회는 2010년 10월 27일을 '한인의 날'로 선포, 이를 기념하기 위한 대구모 기념행사가 스포켄 페어리스 고등학교 강당에서 열려 시, 교육계, 상공회의소, 한국전 참전용사 등 6백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기획특집 5편에서 계속)


 
신원택 전 스포켄한인회장이 스포켄 시내 공원에 세워진 한국전 첫 미군 사망자 기념비를 보여주고 있다.

스포켄 한국의 날 행사 사진.

스포켄 한국의 날 행사 사진.

스포켄 한국의 날 행사 사진.

스포켄 한국의 날 행사 사진.


기사/사진=조이시애틀뉴스 기획취재팀
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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