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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08/14  조이시애틀뉴스
[현장리포트] 노인들의 뜨거운 사랑을 실감한 공연


샛별예술단이 조지아주 아틀란타에 도착하여 테네시, 켄터키, 알라바마, 플로리다, 사우스케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를 돌아 다시 애틀랜타로 왔습니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며, 감사 가운데 있습니다.


8월 5일 테네시에서 밤늦게 돌아 온 샛별은 다음날 오전에 아틀란타 성인복지 센터에 모인 노인들을 위해 공연을 하면서 조지아의 뜨거운 여름을 실감했고 노인들의 뜨거운 사랑을 실감했습니다.


뜨거운 박수와 환호성에 단원들 숫자대로 선물을 한보따리씩 주셨고, 차에 실을 수도 없을 정도로 과자등의 선물을 주시며 고마워하시니 단원들도 어린이가 되어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에 좋아했지요.


샛별은 서둘러 숙소로 돌아와 옷을 갈아 입고 아틀란타 유일한 산이며 돌 하나로 만들어진 스톤 마운틴으로 향했습니다.


너무 더운 날씨에 등산에 자신 없어 하는 단원들에게 괜찮다고 격려하시는 조경수 목사님 말씀을 믿고 단원들은 돌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어른들은 케이블카로 산 정상에 오르자 단원들  더운 날에 나무도 없는 돌산에 오른 것은 평생 못 잊는다고 불평하면서도 자신을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짐을 싸서 차 머리를 남쪽으로 돌려 동남부 끝까지 내려가며 뜨거운 태양아래 펼쳐진 넓고 광활한 땅을 헤치며 노래하다 잠들고, 호수에 들러 밥을 먹고, 다시 노래하며 달리고 달려, 오후에야 초록색 천이 넘실대는 바다를 만났습니다.


마치 눈이 온 것처럼 길가의 화단까지 흰모래로 덮여 있는 훌로리다 파나마 시티는 별천지 세상이었고, 8월 초면개학이 되어 거리가 한산하니, 도시 전체가 샛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 였습니다.


초록색 바닷물에 안기고 싶어 뛰어 들어가니 흰모래는 가루처럼 부드러웠고, 따뜻한 물이 온 몸을 휘감아, 하나님이 세상을 이렇게 아름답게 만드신 것에 감탄사 보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멋진 비치는 입장료가 없는데 냄새나는 호텔은 너무 비쌌지요.


다음날, 서둘러 일어난 샛별은 알라바마 몽고메리의 공연이 취소되어 저녁까지 천천히 바다와 멋진 세상을 보기로 하고, 펜사콜라까지 해안선을 따라가며 비치마다 내려 사진을 찍고, 도시락을 먹고, 다시 물에 들어가 파도와 함께 춤을 추며 한없이 감사했습니다.



단원들의 부탁으로 '홧어 버거'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맥도날드보다 좋은 햄버거였지만 아토피, 알러지 등의 병이 있는 단원들에게 절대로 안 좋은 음식아리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알라바마를 거쳐 조지아 서쪽 끝 콜럼버스에 도착하자 밤 12시가 넘어, 서둘러 컴포트 스위트 호텔에 짐을 풀고 잠을 청했습니다.


8월 10일 주일 아침, 짐을 싣고 공연을 하기로 한 반석 장로교회를 찾자, 바로 호텔 앞에 있었고, 미국 시골에 한인교회가 당당하게 큰 거리에 세워진 것도 감동이었지만  친절한 성도들의 안내와 미국 남편, 자녀들이 함께 기타치고 피아노 치며 이중언어로 예배드리는 성도들을 보면서 먼저 감동이 왔습니다.


30년 전에 개척을 하여 지금까지 이 교회를 섬기신 목사님은 공연준비를 하는 단원을을찾아와 기도해 주셨고, 성도들은 공연을 통해 감동하고 은혜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샛별이 교회를 떠나는 순간까지 지켜 보고 계시다가 샛별이 가는 곳마다 변화가 일어나고 샛별 단원들이 변화되는 축복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다시 아틀란타로 들어 온 우리는 단원들을 먼저 숙소로 보내고 단원들의 건강을 위해  언니 단원들과  마트에 들러 며칠 동안 먹지 못했던 생선과 온갖 열대 과일 등을  가득히 담았지요.



하룻밤을 자고 다시 노스 캐롤라이나로 떠나기 위해 보따리를 싼 우리는 사랑의 복지쎈터에 먼저 들러서 공연을 헸습니다.


공연 도중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눈물을 흘리셨고, 아멘으로 화답하시더니 공연이 끝날 때마다 함성을 터트렸고, 쌈지돈을 복지센터 원장님께 샛별을 주라고 부탁을 하시니, 원장님까지 감동하시어 헌금을 주셨고, 노스 캐롤라이나 가서 먹으라고 반찬을 바리바리 싸 주셨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매일 새벽마다 샛별을 위해 기도해 주신다, 죽을 때까지 기도해 주신다시며 손을 잡으시어 우리까지 눈물 나게 하셨지요.  


짐을 싣고 북쪽으로 2시간을 달리자 그린빌에 도착하였고, 산이 곳 곳에 보이며 시원하고 산소 충만한 공기가 시애틀에 온 것 같았습니다.


산길을 달리고 또 달려, 노스 캐롤라이나  애쉬빌에 도착하자, 김연우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기다리고 계셨고, 한인 성당 식구들이 식사준비를  해 놓으셨습니다.


샛별이 동남부로 순회공연을 하기로 결정한  후, 단원들에게 산을 보여 주고 싶어 애쉬빌 공연을 준비했으나 공연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값이 싼 모텔을 찾는 중에 뜻밖에 김 사모님께서 유일한 교회 성도인 자매 집에서 샛별이 잘 수 있도록 준비해 놓으셨다는 말씀에 남편을 전도하고 위로하고 싶어 자매님 남편을 위해 집이나 가게 파킹장에서 간단한 공연을 하겠다고 했었지요.


 

마침, 한인 중에 청소 사업에 성공하신 유욯한, 유안나 부부가 성당을 지어 헌납하셨는데 사택에서 머물 수 있도록 배려를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성당에서 공연을 해 드리겠다고 하자, 부인인 안나 자매께서 샛별이 머무는 이틀 동안 저녁식사를 대접하신다고 하시며 어떤 음식이 좋은지 물어 오셨지요.


단원들의 건강 때문에 식당보다 간단히 집에서 만든 음식이 좋다고 하자, 안나 자매는 가족들과  집에서 키운 야채와 함께 정성이 가득한 음식을 준비해 동네 잔치를 벌이신 것입니다.


샛별은 저들의 사랑과 헌신에 감사해 더 더욱 열심히 공연을 하니, 오신 분들이 크게 은혜를 받고 많은 사람이 오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하자, 유요한 형제께서 다음날 앵콜 공연을 요청하시며 샛별이  다음날 1인당 50불이 넘는 빌트모어 하우스 관광을 가기로 했다고 하자, 입장료를 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관광은 단원들에게는 산 공부이지만 공연은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에 당연히 감사함으로 하겠다고 하였고 모인 사람들은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하고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아직 눈도 뜨기 전에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오시어 단원의 아침식사를 준비해 주시어 안타깝고 감사한 마음에 가슴이 찡하게 저려 왔습니다.


첩첩산중인 이국 땅  애쉬빌에서 양떼를 먹이고 돌보시느라 평생을 보내신 두 분께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이 더욱 임하시기 기도가 절로 나왔지요.



목사님과 사모님의 안내로 빌트모어 하우스에 도착해 사진을 찍기 위해 의상을 입고 사물놀이와 무용을 하자 사방에서 몰려 온 여행객들이 덩달아 사진을 찍고, 공연을 감상했지요.


빌트모어 하우스는 조지 벤더빌트가 철도 사업에 성공한 할아버지 벤더빌트로부터 받은 재산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이웃들과 함께 하는 세계에서 제일 큰 집을 지었고, 집의 구조와 자재, 그림, 가구, 정원등 보는 모든 것이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일하는 직원만 980명이라니, 얼마나 큰 집과 정원인지 상상이 되지요.


내쉬빌에서 방문했던 벤더빌트 대학도 할아버지가 세운 것이었습니다.


김 사모님께서 초대해 주신 마굿간 식당에서 밥을 먹고 사슴농장과 포도원을 들러 저녁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숙소가 있는 성당에 돌아오니 손님들 저녁을 대접하기 위해 잔치를 벌리고 있었고, 벌써부터 오신 손님들로  성당이 차기 시작해 뜨거운 열기 가운데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공연 도중,  단원들이 옷을 갈아 입는 시간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게 된 설명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인도하신 간증을 하였고, 한인들을 위해 성당을 세우고 저들을 대접하는 유요한 형제님 사업이 더욱 번창하여 벤더빌트 같은 업적을 남기기를 기도하자고 했지요.


애쉬빌 한인들은 물론이요 신부님과  목사님, 안식교 장로님이신 한인회장님, 청소년,  어린이,  백인, 흑인...., 애쉬빌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 같다면서 모두 기뻐했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성도들을 모시고 1시간 30분을 달려 오셨다면서 먼 길을 오기를 잘 했다시며 눈물을 감추시지 못하셨습니다.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이 없었으나, 자신들의 교회도 와 달라고  백인, 흑인까지 부탁을 해  얼 때에 정말 다시 오고 싶은 마음에 다시 만나자고 대답을 했습니다.


샛별이 떠난  다음날에 한인들이  함께 모여 청소하기로 약속  한 것을 알았지만,  샛별이 아닌 또 다른 단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숙소와 성당을 최대한 청소를 했습니다.


최지연 (샛별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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