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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10/14  조이시애틀뉴스
[레지나 칼럼] 그리워지는 시애틀 집

달러가 강세이니 한국에서는 돈을 쓰는 부담이 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생활해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시장에서 장을 보고 나면 100달러가 훌쩍 나갔다. 시애틀에서도 100달러는 적지 않은 돈인데, 한국에서도 장바구니를 채우기가 만만치 않았다.

내가 장을 본 곳에서는 사과 여섯 개에 10달러, 달걀 한 판에 20달러, 키위 네 개에 10달러였다. 작은 용량의 우유도 13달러나 했다. 환율의 이점만 생각하고 왔지만, 실제 생활비는 따로 계산해 봐야 했다.

한편으로는 음식 배달의 편리함에 놀랐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배달음식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하는데, 웬만한 음식은 무엇이든 손쉽게 주문할 수 있었다. 오토바이로 골목골목을 누비는 배달 서비스가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직접 식당에 가거나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편을 좋아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배달음식을 자주 주문하는 생활이 낯설었지만, 그 편리함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식당 음식의 맛도 내 기억과는 달랐다. 1970년대 말 미국 생활을 시작한 우리에게 익숙한 한식은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맛본 음식과 반찬 중에는 유난히 단맛이 강한 것이 많았다. 김치도 내 입맛에는 달게 느껴졌다.

몇몇 식당에서 김치 맛이 비슷해 이유를 물으니, 가격 부담 때문에 중국산 김치를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던 중 일부 중국산 배추의 약품 처리 의혹을 다룬 뉴스까지 접하면서 먹거리에 대한 걱정이 생겼다. 모든 김치가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마음 편히 먹으려면 직접 담그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숙소의 작은 부엌에서 김치를 담갔다. 가까운 시장에서 배추 두 포기를 사다가 절이고, 고춧가루와 마늘, 파, 생강, 새우젓을 준비해 버무렸다. 싱싱한 쪽파도 눈에 띄어 한 단을 사다가 쪽파김치를 담갔다.

모임과 강의 일정으로 집에서 밥을 해 먹을 시간이 많지는 않다. 그래도 냉장고 안에 배추김치와 쪽파김치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으니 마음만은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물론 입맛에 꼭 맞는 음식도 만났다. 평택의 ‘꽃다온’에서는 한식이 차례로 나오는 코스 요리를 맛봤다. 음식의 모양이 아름답고 맛은 은은해 편안한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서울시청 근처의 ‘한가람’은 한방 재료를 활용한 약선 한식으로 기억에 남았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커다란 병에 호박식혜까지 담아주셨다. 숙소에 돌아와 두고 마시는 동안 그 부드러운 단맛에 마음까지 달콤해지는 듯했다.

대구 인근 경산의 ‘석화정’에서는 메밀국수와 수육을 먹었다. 식당 앞 작은 호수의 풍경도 아름다웠다. 평소 돼지고기를 즐기지 않는 우리도 담백하고 쫄깃한 수육 한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직접 뽑은 메밀국수도 일품이었다.

이곳 주인들과는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어 한국에 올 때마다 찾아가 안부를 나누곤 한다. 맛있는 음식에 편안한 이야기가 더해지니 식사 시간이 더욱 따뜻했다. 식후에 내어주신 소금커피와 향긋한 차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 머문 지 한 달하고 열흘쯤 지나니 슬슬 시애틀 집이 그리워졌다. 문밖으로 나서면 펼쳐지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분주한 도시 풍경에 조금 지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애틀에서 차로 30여 분을 달려야 닿는 숲속의 우리 집이 떠오른다. 뒷마당 꽃들은 잘 피어 있을까. 연못의 금붕어들은 먹이를 잘 먹고 있을까. 올해 나뭇가지가 휘어질 만큼 주렁주렁 열렸던 허니크리스프 사과는 모두 땄을까.

저녁이면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너구리도, 매일 앞마당을 찾아오던 토끼도 보고 싶다. 익숙해서 무심히 지나쳤던 풍경들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천천히 살아보려고 한국에 왔지만, 서울의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흐른다. 느린 생활을 원했다면 외곽에 머무는 편이 나았을까 싶다가도, 그곳에서는 교통이 불편하다는 말을 들으면 지금의 선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래도 늘 바쁘게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먹고 입고 잠자는 기본적인 일상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어 감사하다. 책도 스무 권 넘게 샀다. 새로운 지역을 찾아 사람들을 만나고 강의도 하며, 틈틈이 아름다운 풍경을 둘러보는 생활에도 즐거움이 있다.

30여 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사회복지 현장과 도전의 일상을 잠시 떠나, 어린 시절을 보낸 나라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낯선 현재를 경험하며, 하나씩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는 중이다.



레지나 채
소셜워커, 워싱턴가정상담소 소장
이메일: regina.chae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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