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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10/12  조이시애틀뉴스
[레지나 칼럼] 한국에서 배우는 느린 삶

3개월 예정으로 한국에 왔다. 이렇게 긴 여행을 계획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11월, 임상상담사로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면서 시간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상담은 지금도 이어가고 있지만, 직장에 출근하는 대신 집에서 맡은 사례를 중심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석 달 동안 살아보고 싶었던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한국에 사는 언니가 몸이 아프고, 오빠 역시 연세가 많아 함께할 시간을 더 갖고 싶었다. 사회복지기관과 대학에서 미국의 중독 치료 방법에 관한 강의 요청도 받았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바쁘게 살아온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조금은 쉬엄쉬엄 느리게 살아보고 싶었다.

상담 현장에서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 『레지나 칭칭나네』의 출판 사인회도 이번 방문 일정에 포함돼 있었다. 책 제목을 듣고 “무슨 뜻인가요?”라며 궁금해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이 제목에는 잊지 못할 추억이 담겨 있다.

4년 전, 한국의 대학과 비영리기관 초청으로 미국의 정신질환자와 중독자를 위한 치료·보호 방법을 강의하던 때였다.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다.

“교수님, 강의가 무척 새롭고 재미있습니다. 한국에는 ‘쾌지나 칭칭나네’라는 노래가 있는데, 교수님 이름을 넣어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자 80여 명의 학생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들고 “레지나 칭칭나네, 레지나 칭칭나네”를 불러주었다. 그날의 따뜻한 기억이 책 제목이 됐다.

이번에 머물 곳으로 정한 곳은 서울대학교 근처였다. 홍대나 강남 같은 번화가보다 조용하고 교통도 편리했다. 가까운 곳에 재래시장도 있어 장을 보기에도 좋았다.

다만 장을 본 뒤 물건을 들고 숙소까지 돌아오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숙소를 빌릴 때 자동차도 함께 빌릴 수 있었지만 선택하지 않았다. 쌩쌩 달리는 차량 사이에서 운전할 자신이 없었고, 천천히 살아보겠다는 여행의 목적에도 차 없이 다니는 편이 어울릴 것 같았다. 그래도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걸을 때면 차를 빌릴 걸 그랬나 싶었다.

대신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편리한 교통망에 감탄했다. 처음에는 지하 깊숙이 내려가는 것이 조금 불안했지만, 몇 번 타다 보니 금세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예상하지 못한 일도 겪었다.

한번은 환승하러 가는 길에 유난히 긴 에스컬레이터를 만났다. 신기한 마음에 휴대전화를 꺼내 동영상을 찍었는데, 이를 불법 촬영으로 오해한 사람이 신고하는 바람에 역무원에게 촬영한 영상을 보여줘야 했다. 아래에서 위를 향해 찍었으니 오해할 만도 했겠다 싶었다. 그 에스컬레이터는 올라가는 데만 약 2분이 걸렸다.

교통카드 잔액 때문에 당황한 일도 있었다. 카드에 돈이 부족한 줄 모르고 이용하다가 내릴 역에서 개찰구가 열리지 않았다. 몇 차례 시도하다 문을 밀고 나갔더니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역무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카드에 돈을 충전했다. 다시 카드를 대고 정산하는 과정에서, 내가 생각했던 600원 대신 3,500원을 내야 했다. 작은 실수도 놓치지 않는 시스템을 보며 한국의 정보기술이 생활 곳곳에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실감했다.

지하철 안의 풍경도 처음에는 낯설었다. 대부분 이어폰을 끼고 휴대전화만 바라봤고, 옆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일도 드물었다. 그런데 한 달쯤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니 나 역시 시선을 둘 곳을 찾게 됐다. 눈을 감고 있거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것이 어느새 자연스러워졌다.

한번은 휴대전화를 오래 보는 것이 불편해 눈을 감고 내릴 역을 기다리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친 뒤였다. 결국 지하철을 한 바퀴 돌아 되돌아오느라, 10분이면 갈 거리를 한 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천천히 살아보겠다고 찾아온 한국에서 지하철을 놓치고, 길을 돌아가고, 익숙하지 않은 시스템 앞에서 당황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런 작은 시행착오들이 새로운 일상을 채워주고 있다. 서두르지 않고 낯선 하루에 익숙해지는 것, 그것도 내가 배우고 싶었던 느린 삶의 한 모습일 것이다.



레지나 채
소셜워커, 워싱턴가정상담소 소장
이메일: regina.chae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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