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칠월 칠석은 양력으로 8월 4일이다. 바쁜 이민생활에서 음력을 안 쓰니까 칠석이 언제인지 모르고 지날 때가 많다. 사실 칠석은 추석이나 설 만큼 큰 명절도 아니기 때문이다.
농경 사회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달마다 하루를 명절로 정하고 살아 왔다.
예를 들면 음력 5월 5일은 단오절이라 하여 부녀자들은 녹음이 우거진 곳을 찾아 그네를 뛰고 창포(菖蒲)라고 하는 풀을 뜯어 동쪽에서 흘러내리는 물로 머리를 감았다고 한다. 이 창포는 천연 샴푸이다.
또 유월 보름을 유두(流頭)날이라 하여 명절로 삼고 복중(伏中)의 더위를 피해 이날은 마을 처녀들이 맑은 시내나 산간폭포에 가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뒤, 가지고 간 음식을 먹으면서 시원하게 하루를 보냈다. 이것을 유두잔치라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여름의 질병을 물리치고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농사일의 절정을 이루는 6월부터 8월 추석까지의 분주한 농촌 생활을 “미끈 6월” “어정 7월” “동동 8월”이라고 묘사했다. 즉 6월은 미끈하게 쉽게 지나가 버리고, 농사철로 보아 바쁜 7월은 어정거리다 지나가고, 8월은 동동팔월이라 하는데 추석 명절을 코앞에 두고 바빠서 발을 동동 구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칠월 칠석 날 밤 하늘을 쳐다보면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한 은하수의 아름다운 장관이 눈에 들어온다. 낮은 곳에 머물러 있던 ‘독수리자리의 견우성(牽牛星)’이 하늘 높은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초여름부터 떠있어 유난히 빛나던 ‘거문고자리의 직녀성(織女星)’과 함께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이러한 별의 움직임을 보고 상상하여 만든 이야기가 바로 <견우와 직녀>란 설화이다.
하늘나라 임금님에게 딸 하나가 있었다. 마음씨 곱고 얼굴도 예쁘게 생긴 그녀의 이름은 ‘직녀’였다. 직녀(織女)는 베를 잘 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실 직녀는 남달리 베를 잘 짰다.
임금님은 직녀가 크자 사윗감을 고르기 위해 자기네 별 뿐 아니라 다른 별나라에도 공주의 배필을 구한다고 널리 소문을 냈다. 그런 끝에 임금님의 마음에도 들고, 직녀의 마음에도 쏙 드는 신랑감이 나타났다. 그는 소(牛)치는 목동인데 이름은 ‘견우(牽牛)’라 불렀다. 이들 견우와 직녀는 마침내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결혼을 하게 되어 하루하루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임금님은 처음엔 이 둘을 축복해 주었고 무척 사랑했으나 점점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 이유는 직녀는 베 짜는 일도 잊은 채 견우를 따라다니며 놀기에 바빴고, 견우도 소를 몰고 대궐 꽃밭을 돌아다니며 빈둥빈둥 놀기만 하였다.
혼인한 이들은 너무 행복한 나머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잊은 채 게으름만 피웠다.
화가 잔뜩 난 임금님은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으나 둘은 행복에 취한 나머지 듣지를 않았다. 임금님은 점점 더 분노하여 이들을 영원히 떼어놓을 결심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임금님은 견우와 직녀에게 준엄한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 꼴도 보기 싫으니 이 대궐에서 썩 나가거라.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는 동쪽으로 가고, 직녀는 서쪽으로 가 서로 헤어져 살아라. 그러나 단 1년에 한 번 7월 7일 칠석(七夕)날 강을 사이에 두고 얼굴만 마주 바라보는 것만 허락한다."
이렇게 해서 견우와 직녀는 1년 동안 서로 떨어져 그리워하다가 7월 7일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게 되었다. 그러나 은빛 강물은 너무 깊고도 멀었다. 가슴에 사무친 사랑 이야기도 나눌 수 없는 둘은 서로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때 땅 위에는 홍수가 나서 짐승들이 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마침내 짐승들이 모여 의논을 했다.
"자, 견우와 직녀가 서로 만나지 못해 울기 때문에 홍수가 난다. 이들을 만나게 해주자. 그래야 비도 안 올 것이다. 날개가 튼튼하고 높이 날 수 있는 새들이 올라가 두 사람이 은하수를 건널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주자."
이렇게 하여 땅 위의 모든 까치와 까마귀는 칠석날 은하수로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몸을 이어 다리를 만들었다. 이 다리를 건너 견우와 직녀가 만나도록 했다. 그래서 견우와 직녀가 건널 다리를 까치와 까마귀가 놓았다 하여 오작교(烏鵲橋)라고 불렀다. 칠월칠석날 머리가 하얗게 벗겨진 까치와 까마귀가 많았다. 그 후로는 칠월 칠석(七月七夕)날에 큰 비가 오지 않았다. 다만 두 사람이 반가워 흘리는 기쁨의 눈물 때문에 비가 조금씩 내렸다.
이 이야기는 중국 한나라 때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옛날의 부녀자들은 칠석날이면 직녀성에게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었다. 직녀가 베를 잘 짰다는 전설 때문에 길쌈을 잘 하게 해 달라고 빌었던 것이다. 또는 가족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칠석날에는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았다. 이 무렵에 내리는 비를 칠석물(七夕雨)이라 하고 비가 내리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칠석날 저녁(夕)에 내리는 비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서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고 다음 날 새벽에 내리는 비는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이별의 눈물이라고도 한다. 또 칠석을 전후하여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견우와 직녀가 타고 갈 마차를 씻는 물이라 하여 세차우(洗車雨)라고 부르기도 한다.
칠월 칠석 때는 호박이 잘 열리고 오이와 참외가 많이 나올 때이다. 옛날에는 호박 부침개를 만들어 칠성님께 정성을 다 해 비는 풍습이 있었다.
지금도 충청도 나의 고향에서는 풍습으로 칠월 칠석날이면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조선 재래종 애호박을 따서 부침개를 부쳐 먹는다. 그리고 남자들은 칠석 날 시냇물을 찾아 미역을 감으며 고기를 잡아 천렵(川獵)을 한다.
피라미, 모래무지, 붕어, 메기 등 청정구역의 일급수에서만 서식하는 고기를 잡아 준비해 간 양은솥에 넣고 어죽을 쑤어 먹는다. 칠석날 어린이들은 어른들 천렵을 따라 다니며 심부름만 죽도록 하고는 겨우 어죽 한 그릇 얻어먹고 와서 다음 해의 칠석날에는 우리 어린이끼리 따로 천렵을 갔던 생각도 난다.
칠월 칠석 날 애호박 부침개 맛은 영영 잊지 못한다. 조선 재래종 애호박을 금방 따서 진짜 참기름이나 들기름에 부친 부침개를 뜨거워 호호 불면서 먹던 생각이 난다. 이민 와서 호박부침개를 먹었지만 고향에서 먹던 그 맛이 나지 않는다. 그것은 조선 재래종 애호박이 아니고 주키니(서양호박)애호박이기 때문이다.
이성수 (워싱턴주 페더럴웨이 거주)
수필가
서북미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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