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늦더위가 시작한 고갯마루 삼거리에서 왼쪽길로 돌아 올라간 하네간 픽 정상은 간간히 고산 특유의 작은 회오리 바람이 일뿐 고요하였다. 그 고요를 즐기는 방법은 조용히 자리잡고 앉아 시선을 고정하고 먼산을 바라 보거나 그저 말없이 생각에 잠겨 밝은 햇볕에 살며시 뜬 눈을 느리게 껌뻑이는 것이다.
풍경에 취하여 생각이 좀 깊은곳으로 빠져들라 치면, 어김없이 방해꾼들이 몰려들어 고요를 깨트린다. 여름 한철 살겠다고 버둥대는 파리와 모기떼 들의 극성은 트레일 헤드에서 부터 이미 시작 되었다. 여름 하이킹의 성패는 미물과의 투쟁이다. 얼굴에 모기망을 씌우고 장갑을 끼고 땀을 쉽게 말리는 셔츠에 두꺼운 남방 을 걸쳐도 틈새를 노려 꼽아대는 모기침의 가려움증은 때론 분노를 일으킬 지경이다.
그 치열한 투쟁의 작은 보상은 언덕을 오르며 보이는 푸르름이고 모퉁이를 돌며 느끼는 시원한 바람이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앞산 너머 수묵화 풍경이다. 산넘어 멀리 보이는 흰산은 마운트 베이커 이고 옆에 보이는 뽀족봉은 마운트 샥슨이다.
두 산 모두 3000미터 넘나드는 워싱턴 지역의 명산이다. 뾰족산과 흰산은 우리들이 즐겨 찾는 아티스트 포인트 지역에서 바라보는 모습과 하네간 픽 정상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다르다.
산의 앞 과 뒤쪽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라고 특정해 말할순 없지만 아티스트 포인트로 가는 베이커 상부 스키장은 차를 타고 쉽게 오르며 차속에서도 뽀족봉 샥슨을 조망할 수 있기에 그쪽을 굳이 앞이라 칭하면 이쪽 하네간픽 쪽에서 보이는 풍경은 산의 뒤쪽이다.
마운트 샥슨의 뽀족봉우리 밑으로 흘러내린 빙하가 ‘프라이스 글래셔’인데 이곳은 ‘북미 50대 클래식 등반루트’ 중 한곳으로 명성을 날리는 유명한 등반루트이고 나는 저곳을 등반하기 위하여 수차례 ‘프라이스레익’ 트레일을 따라 올라가 사전 정찰을 하였지만, 아직 오르지 못하고 있다. 저곳을 올라야 하는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
사람마다 산의 정상에 오르면 각자의 다른 시간을 갖는다. 사진을 찍고 기도와 치성을 드리고 사방을 거닐며 자연을 칭송하고 감동이 사그러들즈음 우리네 대부분은 풍성한 먹거리 상을 펼친다.
또 다른 모습도 있다. 정상 도착의 보람과 가파른 오름의 피곤을 잠시 쉬며 간단하게 영양을 채우고 지적 양식을 보충하는 모습도 산과 어울려 아름답다. 제인(Jain)의 신랑 크리스는 등산배낭 안에도 책 한권은 지참하는 멋장이다. 지난 겨울 함께한 스키여행시도 틈만 나면 손에 책을 들었다. 내가 반듯이 따라 배워야할 습관이다.
오르면서 보는 산과 내려오면서 보는 산은 좀 다르다. 마음의 품 그 폭과 깊이가 다른 탓일 것이다. 경사진 트레일을 따라 정상을 올라가야 하는 부담에서 보이는 풍경과 정상에 오른 후 감동과 보람을 갖고 여유로이 내려가며 보는 마음은 ‘부담’ 이라는 짐이 덜어 진것 만큼 폭이 커지고 깊어지는 것이다.
하나간 픽 에서 내려오는 길에 초입은 건너편의 루스 마운틴(Ruth Mountain)이 마주 보인다. 산 언저리 주변으로 그려진 발자국길을 유심히 관찰하며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번더 이곳을 찾아 루스 픽 오를 공상을 한다. 야생화는 어느듯 끝물이다. 강렬한 햇볕에 맞서 말라가는 대지 에서 물기를 뽑아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마치 내가 기회 있을때 마다 홍삼 엑기스를 탐해 쥐어짜 마시듯...
나름대로 은퇴를 선언하고 시간의 여유가 있어 희망하는 분을들 모시고 주중에도 산을 찾는다. 산길을 걸으며 만개 하였던 야생화의 시들어감을 보며 머릿속 기억을 되살려 내가 살아온 길도 되돌아 본다. 흔들린 족적이지만 아직은 가야 할 길이 있기에 한걸은 앞으로 내딛는다. 혼자 떨어져 걸으며 하는 공상은 곧잘 계획이 된다.
글/사진 염승찬
산악문화 칼럼리스트
산행문의: ekoreabook@gmail.com
<저작권자 ⓒ 조이시애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