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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01/14  조이시애틀뉴스
"코리안-아메리칸이라는 신발을 신으며.."

린우드고교 11학년생인 최세아 양


제10회 워싱턴주 한인의 날 축제재단이 실시한 청소년 에세이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차지한 최세아(린우드고교 11학년, 부모 최성수-김미정)양의 에세이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미국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하루를 살아봐라”. 이 말을 해석하자면, 다른 사람의 경험은 본인이 스스로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법이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나와 비슷한 힘든 일을 겪었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다르게 느껴졌을 것이고 평생 그 사람의 심정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인생, 생각, 감정 – 이러한 것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을 하는게 남의 신발을 신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시선으로 볼 수 있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을 더 알아가고 완벽하게 사랑을 해줄 수 있는 법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각기 다른 신발을 신고 있습니다. 제가 신은 신발은 이렇습니다: 저는 무려 세 살도 안돼서 부모님과 미국으로 왔습니다. 유치원부터 지금 다니는 고등학교까지 미국에서 생활을 해왔고, Korean-American 으로서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에 둘 다 적응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어떤 일이 있는지, 대한민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는지, 다 들으면서 자라왔습니다. 하지만, 한 순간 저의 모든 것은 바뀌었습니다.


7학년 때, 제 역사 선생님이 저희가 북한에 대해서  배울거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너무 뿌듯했습니다. 북한도 한국이고 그나마 제가 북한에 대해 미국 친구들 보다는 많이 알거라고 생각했기때문에 자부심을 같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이 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친구들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북한을 알아가고 더 자세히 살펴보니, 이 나라는 제가 생각 했던 곳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간단히 북한이 많이 못살고 사람들이 굶어가며 살고 있다는 사실 밖에 몰랐는데, 무서운 고문과 수용소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순간 제 심장은 저도 모르게 너무 아팠습니다. 너무 가슴이 먹먹하고 울고 싶기만 했습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제가 왜 그랬는지 생각조차 안 해봤는데, 지금 다시 돌려봐 생각을 해보니, 그때 저는 제 신발을 벗고 북한 사람들의 신발을 처음으로 신어봤습니다. 북한 사람들의 아픔을 같이 아파했고 북한 사람들의 눈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후로 북한 사람들의 신발을 신기로 했습니다. 아니, 그 신발을 신고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그냥 지켜볼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사는 한국인으로서, 그나마 제가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강력한 무기, 저의 목소리로 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친구들, 가족들, 그리고 학교에 제일 먼저 북한에 대해 알렸습니다. Liberty in North Korea 라는 단체를 통해서, 학교에 클럽을 세워 북한에 정치가 아닌, 일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 주면서, 저는 북한 사람들의 신발을 신으며 나아갔습니다. 그 결과, 이제 제 친구들, 선생님들을 비롯한 고등 학교의 많은 학생들이 북한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한 명이 또 다른 한 명에게 말을 전해주고 한 마음이 또 한 마음을 움직이고 이것을 통해서 너무 아름다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을 위해 후원을 해 주고 눈 앞에 안보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또, 제 학교에 있는 Liberty in North Korea 에는 95%가 한국 아이들이 아닙니다. 언어도 다르고, 모든게 다른데, 어느 순간 이 아이들은 그런 것들을 다 뒤로 놓고 한 사람의 인생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이 아이들도 북한 사람들의 신발을 신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저희 고등학교만이 아닌, 저희 동네에 있는 고등 학교들도 이런 일들을 보고 각자 학교들에 Liberty in North Korea를 세우기 시작 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학교, 한 가정으로 시작해, 이제는 한 동네, 한 도시까지 – 하지만, 온 세상이 알 때까지 이 길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신발끈이 풀려져도, 길을 가다 넘어져도 – 다시 일어나 앞으로 전진을 하기로 저는 결심했습니다.


북한을 위한 일을 한지 이제 저도 몇 년이 되어가지만, 북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직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북한 사람들의 경험을 저는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또한, 앞으로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평생 북한 땅을 가보지도 못할 수 있고 북한 사람들을 만나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람들이 아플 때마다 같이 아픈 것 같고 그 사람들이 세계 어느 곳에서 인생을 살아가며 앞으로 나갈 때마다 더 큰 희망이 생깁니다. 제 신발을 벗고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으려 하면서 누군가를 위해 공감을 해주고 이해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축복 인 것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큰 신발을 신어볼 생각입니다. 지난 여름에 저는 아틀란타에 있는 “National Center for Civil and Human Rights”이라는 곳을 가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아주 큰 지도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지도에는 지금 우리 세상에 인권이 없는 나라들이 다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당연히 북한도 표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도를 다시 살펴봤을 때, 저는 가슴이 툭 하고 내려 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에 거의 반 이상이 인권이 없는 것으로 표시되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북한 사람들을 비롯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인권을 못 받고 산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고 슬픈 일입니다. 


Korean-American으로서 먼저 가슴을 뛰게 했던 북한 – 이제 제 마음은 사람으로서 북한을 비롯한 모든 인권이 없는 나라들에 신발을 신어볼까 합니다. 앞으로 저의 큰 세상에 나아갈 때, 한국인이라는 신발이 아닌, 미국인 이라는 신발이 아닌, Korean-American 이라는 신발을 신으며, 온 세상을 감싸 걸어 다니는 사람으로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되찾아 주고 싶습니다.


이런 저의 모든 꿈들이 미국이라는 땅 안에서 한국인으로 살 수 있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 알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의 신발이 닳을 그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Korean-American 으로서 긍지를 같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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