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방송에서 한국에 거주하는 서양 여성들에게 한국에서 좋았던 것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할머니’라는 대답들이 나와서 의아해 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서 할머니의 손주 손녀에 대한 사랑은 참 너그럽고 무조건적인 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유럽에서는 할머니가 사회에서 가장 까다로운 잔소리꾼들이라고 들은 거 같다.
나는 핵가족에서 자랐기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생활에 대해서는 간접 경험 뿐이다.
하지만 사회생활하면서 느낀 것인데 대가족 제도에서 자란 친구들이 어른을 대하는 태도가 자연스럽고 배려심이 넓었다. 세대 속에 껴서 자라서 그런지 상황 판단도 빨랐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 한 직원의 집을 우연히 들르게 되었는 데 ‘집에 할아버지가 계시다’라는 말이 들렸다. 그러자 일행 중 한 명이 얼른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가 넙죽 큰절하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 덕에 우리 일행은 갑자기 사랑 받는 손자친구들이 되어 그 집에서 편한 기분을 누릴 수 있었다. 큰절하던 직원이 참 인상깊게 보였고 집에 할아버지가 계시니 조용해도 집이 꽉 차는 느낌이 들어서 든든했다.
평균 수명이 길어져도 모든 사람은 늙고 결국 세상을 떠난다. 수고론 우리의 길이 다한 끝에 다달은 곳이 노인병원이나 요양원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 자손들과 함께 하는 가정의 품이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이 성인이 되어서 부모를 떠나 독립가구를 이루고 결혼이든 비혼(非婚)이든 자율적인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것은 자연스럽고 행복한 일이지만 한편 자립성이 떨어진 노인은 요양원으로 가는 것이 대세 인 것처럼 되는 일부 선진국의 체계에는 반대하고 싶다.
산업사회가 대가족을 붕괴시켰지만 육아의 부담에서 벗어난 중간세대가 노인을 부양하지 못하는 이유는 돈이나 시간의 문제 보다는 세대간 혹은 가족끼리의 갈등을 피하고 싶은 이유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인이 건강해서 평균수명 이상 살고 또 노부부가 해로하여 정서적으로 서로 의지하고 산다 하더라도 급변하는 현대 문명에 혜택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데는 결국 젊은이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회가 개인의 행복을 책임지는 사회복지가 성공한다면 1인 가구도 만족도 높은 노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자식을 그리워할 노인이라면 가장 이상적인 것은 늘 혈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며 가족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연로한 부모가 있는 자녀세대는 분가했더라도 나중에 다시 합가하거나 혹은 조부모와 장성한 손(孫)이 살다가 다시 중간세대가 들어 온다든가 사정에 따라 선별적으로 분가와 합가를 계속하면서 늘 3, 4 대가 연결하면서 가족으로 살면서 노인을 돌보는 형태는 세대가 상생하면서 보람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현대적 대가족 형태로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인이 자기 집은 자기 소유로 끝까지 가지고 있어야 하고 정서적으로는 자녀 세대에 대해서 양보하고 너그러울 때 그 실현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기사/사진=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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