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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04/16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 흙이 머무는 길

강릉역에 도착해서 2025년 3월 14일부터 2025년 4월 20일까지 열리는 제3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 가이드북을 받았다. 은빛 팸플릿에 정교하게 설명된 페스티벌의 장소 및 작가, 그리고 내용을 읽어보니 펼쳐지는 장소가 특이했다. 강릉역, 옥천동 웨어하우스, 강릉대도호부 관아, 옛 함외과의원, 창포다리, 일곱칸짜리 여관, 작은 공연장 단, 그리고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이들 장소들은 별도의 전시를 위한 건물이 아니라, 강릉 시내에 오래전부터 있었던 곡식창고라든가, 복원된 옛 관청의 흔적지라든가, 과거 여인숙, 또는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아담한 외과병원 자택 등, 동네의 집집으로 어깨를 잇는 이웃의 현실 공간을 활용한 곳이다.

강연과 워크숍, 걷기 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포함한 이 낯선 지역 예술 페스티벌은 민간 문화재단이 주최하며 2022년 시작되어 3회를 맞았다.

강릉 창포다리를 건너면서 작년 6월에 남원에서 다리를 건넜을 때 보았던 비슷한 풍광과 분위기를 느꼈다. 강릉대도호부 관아 (江陵大都護府 官衙)를 거닐면, 남원의 광한루원에 갔을 때 느꼈던 심미적 감성이 물결처럼 일어난다. 전라도와 강원도의 방향은 동북과 서남으로 서로 다르지만 의외로 한반도를 고르게 부는 따뜻함과 정갈한 지역 공통의 숨결을 느끼게 된다.

행사장은 가까운 반경에 모두 배치되어 있기에 다행히 걸어 다니며 편하게 모두 둘러볼 수 있었다. 지형과 조화를 이룬 풍경, 시대를 반영하는 가옥의 내부, 그리고 그 안에 설치된 국내외 작가들의 공들인 다양한 작품들은 예술가의 탐구와 자유로움으로 차곡차곡 채워지고 풀어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중에서 한가지, ‘퍼포먼스가 직간〮접적으로 등장하는 사진, 영상 등의 미디어 작업에 주력해 온’, 정연두 (b.1969) 작가의 3채널 비디오와 항아리 조명 설치, 사운드 혼합 매체, 17분 21초 작품, ‘싱코페이션 #5’와 수채화 종이에 그을음을 담은 ‘싱코페이션 #5를 위한 연기 드로잉’을 소개하고 싶다.


이 작품이 설치된 장소는 시장 근처의 양곡 창고로 사용되었다가 후에 냉동 창고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던 천장이 높은 널찍한 유휴 공간 옥천동 웨어하우스라는 곳이다. 

거대한 헛간을 연상시키는 이런 공간을 역으로 사람들의 내면을 확장해 보여줄 수 있는 예술가의 창조적인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장막을 사이에 두고 입구를 나서면 바로 우리네 일반 동네로 연결된 일상의 길가라는 점도 개인적으로 환상적이다.

정미소처럼 쌀가루 냄새가 나는 창고 안, 얼룩진 벽에 3개의 영상 화면의 소리가 섞인다. 다른 벽에는 드로잉 액자 한 점이 걸려있다. 그 사이 중간 크기 오지항아리의 우연한 배치는 두 작품을 연결하는 듯 안정감을 주며 조형적으로 중심을 잡았다.

어두운 전시장 한쪽에서 영상을 보고 소리를 들었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옹기 항아리다. 청자도 좋고 백자도 좋지만, 여행 중 만난 가지런히 자리를 잡은 장독대 항아리는 흙에서 돋아나 세월을 모아 표지석처럼 사람들이 떠난 땅을 지킨다. 그도 역시 영원이란 시간 속에선 어느 순간 소멸할지라도 항아리는 사람보다 오래 집을 지킨다.

언젠가, 한 삼십 년 된 것 같다. 그때 사람들이 장독대가 있는 개인 주택을 떠나 단체로 수없이 아파트로 떠났다. 어떤 사람들은 장독을 버리지 못하고 큰 항아리들을 아파트로 가져왔다.

그러다 둘 곳이 없어 모두 그 큰 독을 아파트 옥상에 모아 두었다고 한다. 그러다 날을 잡아 그 장독을 깨기로 했다고 한다. 쨍그랑 쨍그랑 그날 그 소리를 오랫동안 기억한다고 수필 반 한 급우가 회고했던 생각이 난다.

이사 가고 이사 가고 이사 가고 그러면서 그것도 옛이야기가 되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것만큼 큰 독은 사라지고 크기는 점점 작아졌다. 나도 집에 비슷한 항아리 독을 두고 이리 활용하고 저리 두고 하여 곁에 두고 산다. 마당에 어울리는 항아리를 집안에 들이다 보니 크기도 용도도 달라지지만 그래도 있던 항아리를 끼고 살고 새로운 디자인의 오지그릇은 이리저리 활용하고 싶다. 그런 중 정연두 작가가 떡하니 갖다 놓은 항아리를 보니 너무 좋았다.

항아리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기대감 없이 무심히 정 작가의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았다. 작가는 항아리 안에 만화경(萬華鏡)을 심어 놓았다. 항아리 안에서 찬란한 불빛 조명이 시시각각 바뀐다. 조명설치 기술로 항아리 속에 별을 담아 놓았다. 나는 같은 별을 바라보는 작가의 바람에 나의 바람을 더했다.

항아리가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멸하는 그 긴 기간을 별이여 이 땅을 지켜주기를! 그리고 작은 옹기 소품이 개발되어, K-POP이 세계의 사랑을 받듯, 청동기 시대부터 한반도에 사용되었다고 알려진 (ChatGPT 답변, BC 1500~1000년에 등장) 이 옹기 항아리가 세계 사람에게 맑은 공명을 일으키는 날이 오기를!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soonyoun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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