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식생활에 김치는 빠질 수 없는 음식이지만, 나는 너무 김치김치 하지는 않고 조용히 김치를 늘 가까이 두고 소비한다. 김치는 시어져도, 덜 익어도 맛있게 먹을 방법이 다 있다.
누구나 최상의 김치에 대한 기억이 있겠지만, 오늘 내 밥상에 그런 추억의 김치가 놓여 있지 않더라도 김치는 여전히 김치 자체로 오늘 나의 밥상을 지켜준다.
예전 미국에 있을 때 김치를 좋아하던 한 외국인 룸메이트가 생각난다. 미국에 처음 온 대학원생이었던 그녀에게 나는 같이 쓰는 냉장고를 보여주며, ‘여기 내가 사놓은 음식이 있으니, 내가 먹을 분량만 남겨 놓고 언제든지 먹고 싶은 식품이 있으면 먹어~’ 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새로운 환경에서 학과를 따라가느냐, 자정이 다 되어서야 도서관에서 오곤 했다. 그런데, 그날 이후 나의 냉장고에 김치는 푹푹 줄어들기 시작했다. 김치는 반찬인데, 어떻게 먹길래 그렇게 많은 양이 줄어드는가?
어느 날 밤, 식탁 쪽에서 소리가 나서 보니, 그 친구는 내가 사 온 김치병 전체를 식탁에 놓고 다른 음식 없이 순전히 김치만을 먹고 있었다. 그러니 양이 푹 줄 수 밖에... 나는 ‘다음에 아시안 마켓 갈 때 네 것도 사다 줄 테니 가격이 얼마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자기 과에 한국 학생이 있는데, 그 부인이 김치 담는 것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며 혼자 주말에 김치를 담갔다. 나도 담지 않는 김치를 외국인이 굳이 담가 먹겠다는 것을 말릴 수는 없었는데, 그 친구는 결국 김치를 망쳐서 먹지 못했다.
어떻게 레시피를 받았는지, 배추와 양념은 맞았는데, 배추를 절이는 과정을 놓쳐서 배추가 뻑뻑한 채 변하지 않는 야채 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맨날 보고 먹었던 김치이지만 담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그 친구도 해보기 전에는 몰랐을 것이다.
김치에 대해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지난 주말 한국의 한 전통적 거리의 식당에서 김치를 먹고 좀 충격을 받아서이다. 3년간 코로나를 겪으면서 거리의 상가는 많이 비어갔다.
상가가 이렇게 비어가면 월세가 만만치 않을 이 지역에 누가 들어올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말 일을 마치고 한 소박한 분식 위주의 음식점에 들어갔다.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그런데 벽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우리 식당에서는 김치를 매일 담가 신선한 김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먹을 만큼 덜어 드세요...’ 나는 그 말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주인이 알아서 잔반을 줄이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겠지 하고 평소처럼 별로 김치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종업원이 접시에 김치를 미리 갖다주었다. 먹어보니 외관은 특이점이 없는데, 맛은 뭔가 안된 설컹한 야채 맛이어서... 나도 모르게, ‘이거 김치가 왜 이래요?’라고 물어 식당 주인을 당황하게 하고 말았다.
아삭한 맛이 사라진 김치, 수입 김치, 공장 김치 등등, 일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그들은 다 김치다... 이것이 김치일까? 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도록, 한국이기에 한국의 전통 음식 기준을 최소한 지켜내야 할 무언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옛날 룸메이트가 김치를 담갔던 일화가 생각났다. 김치는 보이는 재료를 섞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주재료를 식염에 절인 후 물기를 뺀 후, 다른 부재료를 가하여 버무려서 담그는 것으로, 선도와 저장성을 동시에 갖는 독특한 풍미의 발효식품이기 때문이다.
최근 매체로부터, ‘할매니얼’이라는 신조어를 알게 되었다. 할머니의 사투리인 ‘할매’와 ‘밀레니얼 세대’를 합성한 ‘할매니얼’이란 용어는 ‘할머니 세대의 건강한 로컬 감성을 즐기는 문화’라고 한다.
해외에서 ‘그랜드마더’와 ‘밀레니얼’을 결합한 ‘그랜드밀레니얼’ 이라는, 할머니 세대의 패션, 음식, 인테리어 등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재연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를 일컫는, 용어와 비슷하다. 이러한 문화 현상은 복고 취향이기도 하고, 어쨌든 각박한 인공지능의 현대에 저마다의 기억 속에 너그러운 할머니의 사랑과 살림 솜씨를 그리워하며 전통을 존중하는 취향을 드러내는 것 같다.
그래서 최근 4년간 국내 디저트 시장에서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보다 떡과 한과의 매출이 증가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할머니가 있는 집에는 늘 다양한 김치가 상에 올랐다. 쉰 김치, 오늘 꺼낸 싱싱한 김치, 맛있게 담가진 김치, 이번에는 좀 맛없게 담가진 김치, 새로 나온 제철 재료로 담가본 김치 등등.
상 위에 김치 개수가 늘어나면 쳐진 김치를 모아 찌개를 해도 되고, 종종 썰어 부침개에 넣어도 되고, 밥과 볶아 먹어도 되는 김치는 다양하게 활용되고 일단 최종품이 맛있다.
한동안 당연해서 생각하지 않았던 김치에 대해 말하다 보니, 한식에는 전통 발효식품이 있어 든든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soonyoun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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