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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03/29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 강진 여행의 여운


국내이지만 대표적인 관광도시를 살짝 비켜 나간 말로만 듣던 지역을 가보는 일이 굉장히 흥미롭다. 재작년 청양이나 진주 같은 지역이 그랬지만, 이번 강진 또한 국내라는 친밀함과 개별 여행으로는 초행이라는 낯섦으로 제대로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형편에 맞춰가며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정은 총 5박이 되었고, 떠나기 전 적당한 숙소를 찾아내야 하는 번거로움으로부터 현지에서 뜻밖에 찾아낸 멋진 숙소까지 순간의 선택이 주는 다양한 반전 매력으로 이번 강진 여행은 한 달 내내 쌉싸름한 여운을 남겼다.

어쨌거나 무탈하게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이 최대 성과이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강진 항구에서 바닷바람 쐬인 말린 생선을 사 오지 않은 것이 오래 후회되었다. 트로트 가수 임영웅이 ‘마량에 가고 싶다’라는 노래를 불러 유명해진 강진의 마량항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마량항 버스에 올랐고,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나를 반겨준 것은 바다가 아니라 바다를 배경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영업 중인 건조 생선을 파는 노점이었다. 

생선을 사지는 않았지만, 흔쾌히 전망대를 안내해주던 아주머니와 지역 항구에서의 일상이 서울에 돌아왔을 때야 비로소 긴 장면으로 마음에 남았다. 왜 덥석 사 오지 않았을까! 택배로 보내도 된다고 하던데… 살도 통통하고, 깨끗하게 말렸던데… 누구네 주소로 보내 생선 좋아하는 그 집 안주인을 반갑게 해줄 것을! 등등…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나의 마음에 훈풍을 전해준 강진은 광주에서 또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 반 가야 닿을 수 있는 마치 제주도처럼 가끔 야자수가 보이는 남쪽이다. 겨울이 따뜻해서 운동선수들이 단체로 겨울 전지훈련을 많이 온다고 한다. 

첫날 도착해서 시인 김영랑 생가와 야간에 개장 중인 세계모란공원을 구경했다. 다산초당(茶山草堂)과 다산 박물관, 그리고 다산이 처음 강진에 와서 유배 초기에 4년 기거했던 주막집인, 잘 꾸며 놓은 사의재(四宜齋)를 구경했다. 그 옆에는 멋진 한옥체험마을이 숙박시설로 조성되어 있다.

실학의 최고봉 다산 정약용 (1762~1836)은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한 후 고향 경기도로 돌아갔다. 200년 전 사람인 정약용이 바라보던 강진의 산하를 바라본다. 중앙에서 내려온 다산의 귀양 18년을 뒷받침해 준 너그러운 이곳. 고향에 돌아왔을 때 다산의 나이는 57세, 연구와 저술을 계속하며 은거하다 74세 결혼 60주년 회혼식 날 세상을 떴다고 한다. 

정조의 총애를 받던 젊은 관료였다가 정조 사후 오랜 귀양살이를 한 파란의 생애였지만 시들지 않고 학자로서 보람과 업적을 남기고 평탄하게 삶의 마무리를 한 셈이다. 그의 6대 후손이 현재 정 아무개로 드라마 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니, 세월은 흐르고 후손은 역사를 증거한다.

강진에서 지내는 동안, ‘강진에서 일주일 살기’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달이 아니고 1주일로 정한 것이 아담한 고을 느낌이 들어 고개를 끄덕인다. 잘 살펴 좋은 숙소를 만난다면 강진군은 더욱 포근하게 우리의 기억을 채워 줄 것이다. 


내가 머물던 호텔의 아리따운 여성 매니저가 나보고, 무슨 재미로 혼자 여행하는지 도저히 자기는 모르겠다고 하면서, 흔쾌히 커피 서비스를 자청했다. 그녀덕에 여행의 순간이 반짝였다. 참! 객실에 말로만 듣던 에어드레서가 있어 여행 덕에 신문물을 접했다.

과로를 피하고 싶어, 늦은 시간 광주 KTX 역 근처의 호텔에 묵게 되었다. 여행 앱을 통해 이용자 후기에 평점이 높은 한 곳을 정해 거의 실시간으로 예약을 눌렀다. ‘조식이 과하지 않게 너무 맛있다’는 평이 많아서 조식에 가보니 듣던 대로여서 만족했다. 

그전에는 이런 규모의 호텔에서 부페형 조식이 제공되는지도 몰랐다. 여행지에서 적당한 방을 찾지 못해 쩔쩔매다, 갑자기 너무 좋은 방을 만나 열쇠를 받고 방안에서 창밖의 전망을 보며 감탄하는 상황 전개는 여행 중 박물관에서 발견한 명작품에 혼이 빠져 시간을 잊는 경우 못지않게 여행이 주는 비밀의 정원 같은 시간이다.

예전에는 특별한 사람만 운전했지만, 요즘에는 누구나 운전을 한다. 예전에는 학문을 닦고 저술을 하는 사람이 극소수의 뛰어난 사람이라면, 요즈음은 은퇴 후도 건강한 체력과 학구열로 배우고 책을 읽고 할 수 있는 시간이 평균 20년 이상 남아 있다. 

정약용처럼 500권의 책을 쓸 수는 없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큼의 산술적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밧데리가 다 소진될 때까지 알뜰하게 그 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soonyoun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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