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이 하늘이 높고 푸르른 날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아침 일찍 사무실로 출근했다. 우리 사무실 아래층에는 노숙자들의 데이케어가 있다. 낮 동안 들어와 컴퓨터도 하고 책도 읽을 수 있는 곳, 그리고 점심과 저녁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나는 아래층 쉼터로 내려가 100명이 마실 수 있는 커피 포트에 물을 올려두었다.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조용한 시간, 내가 좋아하는 가벼운 찬양곡을 작은 목소리로 불러가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점심과 저녁은 노숙자들이나 정신질환자, 전과자 출신들이 참여하는 갱생 프로그램 ‘훼어 스타트(Fair Start)’ 레스토랑에서 준비해 쉼터로 배달된다. 훈련된 전문 요리사들이 만든 음식이라 보기에도 좋고 맛도 있으며, 영양적으로도 손실이 없다.
쉼터 곳곳을 다니며 손을 들어 축복의 기도를 하는 것이 나의 일상 시작이었다. 오랜 시간 이 프로그램에서 일을 해온 나로서는, 기적을 믿고 사람들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이곳에 모여드는 이들에게 새로운 인생의 장이 열릴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천 명 중 스물다섯 명이라도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성공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주어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이 중독자들의 삶이다.
중독자들도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다 약물에 손을 대 중독된 이들, 힘든 가정환경 속에서 어울리다 자연스럽게 중독자가 된 이들, 병 치료 과정에서 사용되던 펜타닐이나 몰핀에 의지하다 중독된 이들, 전쟁의 충격을 잊기 위해 약물에 의존하는 이들….
우리 사무실에는 이렇게 새롭게 살아보겠다고 등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2년간의 훈련 기간을 끝까지 이겨내는 경우는 드물다. 상담을 이어가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고, 다시 중독 상태로 돌아가 길바닥에 쓰러진 채 발견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안타깝고 속이 상한다.
그날 아침도 그랬다. 나는 평소보다 이른 7시 30분에 출근해, 10분간 묵상과 말씀의 시간을 가진 뒤 사무실과 쉼터 구석구석을 다니며 각 방마다 손을 높이 들어 축복의 기도를 올렸다. 커피 물도 올려두고, 이들이 사용하는 마이크로오븐 세 대도 깨끗하게 청소해두었다.
100여 명이 함께 쓰는 공간이다 보니, 늘 음식물이 흘러 지저분해지기 마련이었다. 경고문을 붙여두어도 ‘내 것’을 아껴야 한다는 마음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저 소귀에 경 읽기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애쓰는 이들도 있어 늘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아래층 쉼터 일을 마치고 계단을 올라가려던 순간, 누군가 나를 불러 세웠다. 아마도 고객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밤새 쉘터에서 고단한 몸을 쉬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홈리스 고객들이, 1층 출입구에서 안전 검사를 마치고 샤워실이나 공부방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때였다. 머리에 검은색 후드를 깊게 눌러쓴 키 큰 동양인 청년이 나를 불러 세웠다. “미스? Can I talk to you?” 뒤돌아보며 내가 물었다. “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했다.
나는 9시에 첫 고객 상담이 있어 9시 45분쯤 시간이 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너의 담당 카운셀러는 누구니?” 청년은 지난주에 프로그램에 등록했지만, 아직 담당 카운셀러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밖에서, 감옥에서, 자기들만의 커뮤니티에서 들은 얘기로는, 그곳에 가면 레지나가 있으니 담당 카운셀러로 요청하면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귀뜀을 받았단다.
거리의 친구들이 알려준 것이다. 오랜 시간 다운타운 노숙자, 정신질환자, 중독자 프로그램에서 일해온 작은 동양인 여성인 나를 그들은 잘 알고 있었고,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준다는 소문이 여기저기 퍼진 덕분이기도 했다.
이날 나는 첫 고객을 만나고 난 뒤, 아까 나를 만나고 싶어하던 청년을 만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청년은 지난밤 잠을 설쳤는지 프로그램 컴퓨터룸에 컴퓨터를 켜놓은 채, 엎드려 깊이 잠들어 있었다.
잠을 자는 청년을 깨우려다가 잠시 머뭇거렸다. 제대로 잠을 못 잔 사람에게 깊은 잠은 누구와 만나는 것보다 더 좋은 약이니까. 잠시 기다리다가 돌아서려는데, 옆에 있던 다른 노숙자가 자고 있는 청년을 깨웠다. “자, 여기 레지나가 왔어.” (계속)
소셜워커, 워싱턴가정상담소 소장
이메일: regina.chae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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