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민학교 시절 농구부에서 활약했던 기억이 있다. 5학년 때 키가 또래보다 커서 농구 선생님의 권유로 농구부에 들어갔다. 6학년 전국체전에서 우리 학교가 금메달을 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중학교에 진학한 뒤 키 성장이 멈추고, 키 큰 친구들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자 미련 없이 농구를 그만두었다. 대신, 지금은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윤석화 선배의 권유로 무용반에 들어갔다.
무용을 하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다져 온 실력이 있었기에, 뒤늦게 시작한 나는 매일 방과 후에도, 토요일 오후에도, 학교가 문 닫을 때까지 연습했다. 높이 점프하고, 다리를 멀리 뻗어 사뿐히 착지하는 연습을 하다 쓰러질 정도였다.
고등학교 때, 내 실력으로 전공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판단과 어머니의 반대로 무용을 그만두었다. 그렇게 농구와 무용으로 다져진 내 다리는 키는 그대로인데 종아리 알통만 단단하게 남았다. 사춘기 시절, 그 다리가 부끄러워 치마를 잘 입지 않았다.
그랬던 내 다리가, 수술 후에는 가늘어졌다. 담당 의사에게 “그래도 다리는 예뻐졌네요.” 하고 웃으며 말하자, 의사는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맞아요!”라고 했다. 농담처럼 “이 나이에 미니스커트나 입어볼까요?” 하자, 옆에 있던 간호사가 박장대소했다.
현재는 주 3회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물리치료사의 지시에 따라 꾸준히 움직이면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아직 무릎을 완전히 구부리진 못하지만, 하루하루 각도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무릎을 펴는 것도 쉽지 않지만, 5파운드짜리 모래주머니를 무릎 위에 올려 놓고 매일 펴는 연습을 한 끝에 8주 만에 거의 정상에 가까운 각도로 펴지기 시작했다.
계단 오르기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수술 전에도 계단이 힘들어 3층 구조의 집에서 단층 주택으로 이사했는데, 공교롭게도 뒷마당에 언덕이 있었다.
그 언덕이 계단 훈련에 제격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며, 수술한 오른쪽 다리뿐 아니라 수술을 앞둔 왼쪽 무릎까지 근육이 단련되는 듯했다.
아직 나이가 많지 않은데 양쪽 무릎을 모두 수술한다고 하니, 나보다 훨씬 연세가 많은 지인들은 “멀쩡해 보이는데 사기 치는 거 아니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아마 내가 평소 무릎 통증을 잘 드러내지 않고, 어떤 일이든 적극적으로 생활하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수술 전까지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해봤다. 침도 맞고, 주사도 맞고, 운동도 해봤다. 결론은 하나였다. 망가진 무릎은 새로 바꾸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무릎 한쪽 수술과 입원 치료까지 1만 달러 정도가 들고, 수술 후 2주 정도 입원해 회복 운동까지 병행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퇴원할 때면 일상생활이 어렵지 않게 준비가 된다고 한다.
반면 미국은 수술 하루 만에 퇴원이다. 4일 정도는 누워 있어야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환자 스스로 재활에 나서야 한다. 의사가 16주까지 물리치료를 처방해 주긴 하지만, 결국 집에서 스스로 꾸준히 운동해야 한다.
수술 후에는 입맛이 떨어져 살이 빠졌다. 최소 2주 동안은 누군가 곁에서 보살펴 준다면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약 부작용과 통증 때문에 우울증이 찾아왔다. 나는 평소 긍정적인 편이고 쉽게 상처받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번에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우울감에 여러 번 무너졌다.
오랫동안 임상 상담사로 일하며 약물 중독자와 정신질환자를 도와온 터라, 우울증이 심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몸이 아파도 예전처럼 하던 일들을 억지로라도 다시 시작했다.
밝은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멋진 레스토랑에도 가 보았다. 입맛이 없어 많이 먹진 못했지만, 내가 돕던 단체의 회의에도 잠시 참석했고, 내가 응원하는 시애틀 여자축구팀 ‘레인’의 활동에도 목발을 짚고 참여했다.
지난 씨훼어 행사 때는 행진은 하지 못했지만, 한인회를 도와 파킹 구역을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아픈 다리로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며 하루를 버텼지만, 집에만 있어도 아프고 밖에 나가도 아픈 건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사람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는 게 마음에 더 좋았다. 상담사로서 전화 상담도 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며 내 정신이 통증에만 머물지 않도록 했다.
이제 다음 주면, 하고 싶지 않지만 꼭 해야 하는 왼쪽 무릎 수술을 받는다. 오른쪽 수술이 얼마나 아픈지 이미 알기에 두렵지만, 이번에 하지 않으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쪽만 망가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무릎을 잘라내고 티타늄으로 만든 새로운 관절을 넣었는데 어찌 안 아플 수 있겠는가. 이번 수술을 앞두고 나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이런 큰 수술을 받을 때 서로 도울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이라도 함께한다면, 회복은 덜 외롭고 더 힘이 될 것이다.
소셜워커, 워싱턴가정상담소 소장
이메일: regina.chae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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