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에서 훌륭한 성과를 달성하려면 작은 문제에서도 이 같은 습관을 쌓아라. 훌륭함은 예외가 아닌 변치 않는 태도에서 나온다.” -콜린 파웰
20대 중반, 나는 한국에서 3년의 군복무를 마치고 LG상사에서 수출 전담 업무를 하면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다. 꿈을 이루기엔 1979년 말과 1980년 초 당시 한국 사회의 환경이 녹록치 않았기에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나의 조국을 뒤로한 채 어린 시절 흠모한 꿈의 나라이자 기회의 나라, 세계 최대의 시장을 가진 미국으로 무작정 날아간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나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 중에는 가슴 아픈 일도 있었고 떠올리기 부끄러운 일들도 많았다.
오직 생존만을 위해 밤낮으로 뛰었던 험난한 과정 속에서 직접 깨닫고 체험한 나만의 소중한 교훈을 미래의 리더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부분 원활한 대인관계를 위해 필요한 “소프트 스킬”이다. 20대 후반에 이민을 와 영어 구사력이 현저히 낮았던 나 같은 동양인이 미국 생활에 필요한 소프트 스킬을 배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소프트 스킬은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단기간에 쌓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긴 세월을 통해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쌓이고 다듬어지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에는 저마다 고유한 에티켓 문화가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정중함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같은 경향은 청교도 문화에 뿌리를 둔 듯하다. 내가 미국에서 느낀 첫 인상은 “Thank you.”와 “Excuse me,”, “I’m sorry.”를 입에 달고 사는 예의 바른 사회였다. 하지만 이 사회는 상대방도 당연히 그런 자세를 지닐 거라 기대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 미국인들은 즉각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데, 당시의 나는 이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한동안 애를 먹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식으로 살아온 나의 습관이 모두 문화 차이에 기인한 것임을 설명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 그들이 좀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1. 테이블 매너의 다이나믹스
좋은 매너를 갖춘 사람 주위에는 많은 사람이 모인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할 줄 안다는 이미지 때문이다. 반대로 매너 없는 태도로 의식적이든 아니든 상대방을 짜증나게 한다면 친구 관계는 물론 사업에까지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싫으면 관둬.”라고 말하며 간단하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매너의 나라 미국에서 좌충우돌하면서 주류 사회 진출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즈음, 가까운 미국인 친구로부터 충격적인 조언을 받았다. 음식을 먹을 때 쩝쩝 소리를 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큰 충격을 받아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맛깔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여야 복 받는다고 칭찬을 들었던 관습은 우리만의 문화였던 것이다.
친구의 조언을 들은 즉시 나는 먹는 동안 일체의 소리를 내지 않도록 노력했다. 포크나 나이프를 사용할 때에도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를 내지 않았고 입 속에 음식이 들어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았으며 식사 중에 오가는 대화들도 가려서 하게 되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평소때 아무렇지 않게 하던 나의 다른 행동들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선진 문화의 일원이 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다.
몇 년 전 서울 방문길에서 만난 한 기업가가 20년 전에 내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특히 식사 매너에 대한 강의 덕분에 많은 혜택을 보았고 지금도 식사를 할 때마다 나를 생각한다며 깍듯이 감사의 인사를 하기에 보람을 느꼈다.
요즘에도 동양인들이 단 둘이든 단체로든, 식사 자리에서 여전히 쩝쩝 소리를 내면서 먹는 것을 볼 때면 식은땀이 나기도 한다. 쉽지 않았을 텐데 당시 나에게 솔직한 충고를 해준 친구가 정말 고맙기 그지없다. 그 친구가 조언을 해주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는 한편, 사실 우리 모두에겐 그런 친구가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2. 스마일의 파워
《침묵의 언어》를 쓴 알버트 메르하비안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의사소통의 90%가 비언어적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역설한다. 비언어적인 의사소통 수단의 대표적인 예가 미소다. 미국 시인 윌리엄 아서 워드는 따뜻한 미소야말로 친절을 뜻하는 만국 공통어라 했다. 우리가 미소 지을 경우 상대방은 가장 확실하게 그 의미를 알아차릴 것이다.
미소는 전염성이 있다. 비즈니스 거래에서 미소를 교환하는 것은 협조의 의사를 표현하는 첫 번째 단계이기도 하다. 아무런 표정 없이 무미건조하게 글자로만 이루어진 이메일과 문서들을 떠올려 보아라. 주제와 어휘의 나열일 뿐이다. 하지만 단락 사이사이에 함박웃음을 짓는 이모티콘을 넣으면 분위기가 바뀌면서 똑같은 글도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하루에도 조 단위의 이모티콘이 전 세계의 사이버 공간에서 날아다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나는 2014년, 싱가포르 NUS에서 매년 개최하는 이노브페스트(InnovFest)라는 대형 컨퍼런스에서 기조 연설가로 초대받았다. 나를 초청한 그들은 아무런 연줄도 없는 동양인으로서 어떻게 실리콘밸리에서 그만한 실적을 쌓을 수가 있었는지 물었다. 1,500명의 VIP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관중들이 귀를 쫑긋하면서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내가 던진 답변은 바로 ‘스마일’이었다. 나만의 대단한 스킬을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청중들은 ‘스마일’이 나의 유일한 자산이었다는 엉뚱한 대답에 잠시 머뭇거리다 큰 박수로 환대해 주었다. 당시 실시간 메시지 디스플레이 보드에 ‘스마일의 파워’라는 단어가 수없이 올라왔다고 한다.
모두가 잊고 있던 ‘스마일’이라는 단어를 다시 떠올리게 해준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일년에 서너 번씩 싱가포르를 방문하게 되었다. 사람의 미래는 정말 알 수 없다는 말이 맞다. 그때까지만 해도 헬싱키, 파리, 영국 등을 다니며 강의를 하거나 창업 회사들을 지원하며 시간을 보냈었는데 싱가포르를 가게 되면서부터 나의 고정 방문지가 바뀌게 된 것이다. 나를 따뜻하게 받아주고 한마디라도 더 듣고 싶어하는 순수한 모습들이 내 행선지의 지도를 바꿔 놓았던 것이다.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했을 때 나에게는 첫인상이 중요한 과제였다. 상대가 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는 첫 인상은 두 번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첫인상은 대부분 고작 3초에서 7초 사이에 판별이 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나를 시각적으로 판단해 점수를 매기는 데에는 55초면 된다고 한다. 내가 말하는 내용을 평가하는 데 45초가 걸리며 그 중 38초는 나의 단어 구사력, 나머지는 나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한다.
당시는 경력도 영어 구사력도 현저히 낮았고 매너나 복장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도 턱없이 부족했으며 상대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특별히 제공할 수 있는 관련 배경도 없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눈빛으로 나의 열정을 보여줬고 스마일로 관심을 끌었다. 스마일은 나의 유일한 자산이자 기본적인 전략이었다.
3. 유머와 장수 부부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나는 새로운 문화를 익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내가 본 미국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유머와 농담을 즐겨 사용했다. 유머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장소나 행사에서도 사람을 웃게 만들어 한 때는 비정상적인 면을 가진 민족이 아닌가란 의심을 가진 적도 있었다.
특히 장례식에서 겪었던 기억은 한동안 충격 그 자체였다. 눈을 감고 누워있는 망자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가족 대표가 조객들을 향해 처음부터 끝까지 유머러스한 스피치를 한 것이었다. 나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조객들은 코미디 쇼에 온 듯 깔깔대며 웃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들은 미국 문화에 따라 인생을 마감하는 축제(Celebration of Life)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유머 감각을 키우지 않고서는 미국 주류사회에서 자리 잡기가 쉽지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틈틈이 연습도 많이 하고 한번씩 실습장에서 시도를 해보기도 했지만 상대의 반응은 썰렁했고 결과는 썩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은 유머와 농담을 제법 잘 사용하는 편이다. 미국인들을 대하는 일도 훨씬 편해졌고 처음 만나는 사이라도 금방 간격을 좁히곤 한다. 틈틈이 꾸준히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토크쇼, 명랑 드라마로 열심히 공부한 덕분인 것 같다.
이웃에 사는 카렌과 빌은 65년을 해로한 잉꼬 부부이다. 지역 신문에서 이들이 긴 세월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을 부인에게 물었더니 “내가 한 남편을 65년 동안 데리고 살려면 신랑한테 최소한 유머감각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았겠느냐.”라며 그녀 역시 유머스러운 답변을 했다고 한다.
4. 마이크로 라이(작은 거짓말)
우리는 작은 거짓말을 습관처럼 내뱉는다. 어떨 땐 별 의미 없는 말 혹은 ‘선의의 거짓말’로 서로 이해하며 넘어가기도 한다. 댄 에리얼리(Dan Ariely) 듀크대 행동경제학 교수의 말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을 하는데 그 이유가 수천 가지나 된다고 한다.
세상 사람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면, 우리는 모두 교활한 면을 가진 것일까? 영어로 교활함을 뜻하는 단어 ‘GUILE’는 그 기원이 12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어원은 사기꾼을 의미한다고 한다.
투자를 집행하는 분야에 있는 사람들은 투명성에 따라서 창업가의 신용등급을 매긴다. 내가 만든 ‘마이크로 라이’라는 작은 거짓말은 투자 사회에서는 일체 용납이 안 된다.
어린 시절 작은 거짓말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습관처럼 하고 다녔던 나는 벤처 캐피탈 산업에서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하는 사람들을 찾아내면서 느낀 점이 많다. 이를 바탕으로 조언을 하자면, 특히 투자가 앞에 서 있는 창업자의 경우 경험이나 직원 수, 실적 현황, 기술 개발 진행 상황, 예상 목표 등에 대해 처음부터 아주 정확하고 솔직하게 공개를 해야 다음 단계의 회의를 성사시킬 가능성이 높다.
투자가들이 평가하는 요소는 대체로 비슷하지만 나는 창업자의 투명성에 특히 많은 점수를 주는 편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과장이 지나치거나 나중에 알려질 거짓말을 한다면 결국 나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작은 거짓말로 첫 관문을 통과했더라도 계속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투명한 사업가가 되려면 아무리 좋은 의도일지라도 어떤 ‘마이크로 라이’도 용납되지 않도록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5. 외로운 전사
지난 수십 년 간 많은 학자들이 인맥이 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다. 링크드인 같은 기업은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확장하고 싶은 사람들의 요구에 기반을 둔 대표적인 기업이다. 나 역시 더 많은 인맥을 쌓기 위해 이곳저곳 분주히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물론 경쟁 체제에서 인맥은 큰 자산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인맥 확장만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같은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의논하고 토론하는 컨벤션은 수없이 열리지만 실력과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끼리 교류가 일어날 뿐이다. 특별한 전문 분야가 없이 학교나 기타 연고를 통해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은 옛날에도 드물었지만 이제는 더욱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첫 이민 생활에서 내가 가장 먼저 세운 목표는 “큰 꿈을 이룰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것과 속히 내세울 만한 실적을 쌓는 일”이었다. 두 가지가 나에겐 주류 사회로 넘어가는 데 꼭 필요한 티켓이었다. 어느 학교를 졸업했고 집안 내력이 어떤지 등은 나중에 실력을 인정받고 나면 자연스럽게 알려지는 것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주류사회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능력만을 최우선의 스펙으로 쳐주는 이 사회가 마음에 들었고 이는 나 같이 빈손으로 시작한 사람에게도 한번 도전하게끔 희망을 심어준 원동력이 되었다. 미국이든 다른 어떤 곳이든, 성적표는 결국 나중에 쥐게 되어 있다는 이치는 같다고 본다. 우리 모두는 마지막에 우수한 성적표를 받기 위해 나 혼자 묵묵히 싸워 나가야만 하는 외로운 전사인 것이다.
6. 호기심의 경이로운 '원더(WONDER)'
일본 발명가들의 아버지로 알려진 토요다 사카치는 토요다 자동차를 설립해 일본의 공업화를 주도한 영웅으로 추대 받는 인물이다. 이처럼 엄청난 업적을 남긴 사카치 회장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매우 특이하다고 알려져 있다. 사카치 회장은 어떤 문제에 직면하든 문제의 근본을 파악하기 위해 “왜?”라는 질문을 다섯 번 던진다. 이 원칙은 인간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해결이 어려운 난제나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의 실용성을 검토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호기심과 궁금증을 가졌던 나는 지금도 모든 현상에 의문을 제기하려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다. 이 습관은 내가 미국 투자 산업에서 자리 잡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내가 투자했던 기업이 역주행하는 상황이 생기면 나는 당연히 깊게 들여다보게 되었고 끝까지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생명이 끝났다고 여겨진 회사를 회생시킨 배경을 들여다 보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숨어 있던 의문점과 원인을 파고 들어 문제를 해결해낸 ‘원더의 전사’들이 이룩해낸 사례가 무수히 많다. 하지만 처음부터 문제의 원인을 차단하는 경영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 “왜”라는 의구심을 앞에 두고 매사를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7. 선입견이란 망령
선입견은 우리의 사고 체계가 빠질 수 있는 큰 함정이다. 중요한 판단을 내리기 전이라면 선입견이란 단어를 머릿속에서 삭제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타인을 평가할 때 극단적으로 좋은 평가를 내리거나 정반대로 나쁜 평가를 내리려는 본능이 있다.
이민 초에 온갖 선입견을 통해 수많은 정신적 피해를 경험해본 나는 늘 특정인에 대한 선입견을 품고 있지는 않은지 내 마음을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친구나 학생들에게서 그 힘든 시기를 어떻게 견뎠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도리어 그 순간을 즐겼다고 답한다. 상대가 나를 무시할수록 어금니를 꽉 물고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했다. 내가 상대방보다 훨씬 더 잘 되어 나타났을 때 그의 반응을 그려보며 견뎌냈다. 내가 부족해서 상대가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해 더 열심히 노력했다. 그들에게 도리어 고마워한 나는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을 내 편으로 만들기도 했다.
나는 피부색이나 말투로 첫인상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는 않는가? 혹은 복장이나 첫 인상으로 상대를 평가하지는 않는가? 내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이제 선입견으로 생긴 몇 가지 실패 사례를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다.
▲저자: 이인 교수, 시애틀에 거주하는 한인 벤처캐피털리스트 겸 싱가폴국립대학(NUS) 경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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