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본(지구의, 地球儀)은 표면에 지구 지도가 그려져 있고 회전축을 중심으로 세워져 있어 회전시킬 수 있는 구(球)를 말한다.
학교 다닐 때 교실 칠판 옆에는 항상 한국지도가 붙어 있었고, 세계지도를 보면 러시아가 참 커서, 추운 시베리아가 넓기도 하다 싶었고 미국도 크고 중국도 참 넓은데 한국은?
가뜩이나 전쟁 후 사방 사람들의 삶은 조촐한 데 나라는 분단으로 자성(自省)을 반복해야 했고 미국, 일본, 중국 더 나아가서 러시아나 유럽으로부터의 긴장과 흘러오는 문화들은 그 소박한 한국의 삶마저 이리저리 흔들어 보는 듯 정세는 불안정했다.
서울의 정치 중심가 가까이서 유년기를 보내고 지금 그 길을 지나 다니게 되는 데 아직도 고도 성장의 가파른 비탈을 오르는 듯 그 길에서 고층으로 향하는 공사들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어렸을 때 길가 유리 진열창 안에서만 보던 부러운 물건들은 아주 접근성 있게 대량 진열되어 있어 남의 물건으로 만 생각했던 유년시절 것들을 지금은 별 부담없이 쉽게 살 수 있는 시국에 살고 있다.
지금은 너무 쉽게 살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예전에 원했었던 것 조차 잊어 버린 물품 중에 지구의가 있다. 도서관이나 가야 가까이서 자세히 볼 수 있는 구형(球形)의 지구본은 자세히 볼 때 마다 그 정보의 복잡함에 놀란다.
어려운 지명과 가로 세로의 선과 촘촘한 나라들. 그리고 해양과 극점의 빙하. 모두 영어로 되어 있어 그 이해를 방해하기도 하였지만 왠지 모를 권위를 느끼게 해서 그 지구본을 보는 자신이 너무 미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라이름과 대양이름이 확실하게 한글로 적혀있는 지구의를 보면서 당장 하나 사야겠다 싶어, 축척 1: 42,000,000의 지구의 (둘레가 약 1m)를 구입하였다.
판매원의 말에 의하면 이런 한글로 된 지구의가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에게도 인기라고 한다. 한글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글로 크게 적혀있고 밑에 영어로 작게 써 있으니까 외국인들도 한국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것이다.
지구의를 가져와서 우선 한국을 봤는데, 그간 평면지도로 봐왔던 한국이 지도의로 보니 상당히 커서 놀랐다. 이거 한국사람이 만들어서 한국을 조금 크게 표시 했나 하고 유럽을 보는데 유럽이 너무 작고, 아프리카가 완전 크다.
한국지도의 제작사가 아프리카를 특히 크게 그릴 이유는 없을 것 같고, 지구의를 살짝 돌려 바로 등장하는 미국과 캐나다 또한 페루와 브라질에 비교하면 생각보다 상대적으로 작게 보이니, 그간 평면지도로 입력된 나의 머리 속 대륙들은 지구의로 보는 지도보다 많이 다르다는 것을 단박 알 수 있었다.
현재 교실을 꾸미거나 뉴스 룸 배경 같은 데 많이 사용하는 경선과 위선이 직각으로 만나는 메르카토르(Mercator) 평면지도는 고위도로 갈수록 면적이 확대된다.
그래서 극지방 쪽 캐나다 시베리아 그린란드는 크게 확대되어 나타나는데 이런 왜곡을 이용하여 비교적 북쪽에 위치한 강대국들은 열대지역에 위치한 나라들의 중요성을 축소시키는 의도로 이 지도를 이용하거나 국가 홍보에 활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달 영국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Julian Barnes 원작소설, 2011년 Man Booker Prize 수상작) 를 봤는데 영화 내용과 상관없이 등장인물이 고교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교실에 붙여진 세계지도를 유심히 보았다.
그 지도에 보면 당연 유럽이 중심에 놓여져 있다. 어느 나라 사람이나 자기 나라를 세계지도의 중심에 놓고 볼 것이다. 그 지도로 보면 한국은 동쪽으로의 먼 방향이다.
그런데 만일 교실에 구형의 지구의를 보면서 세계지도를 입체적으로 익혀왔다면 서양인이든 유럽에 영향을 받은 한국인 필자들이든 한반도를 보고 ‘동방의 작은 나라’, ‘극동의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 라는 유럽 중심의 표현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 중국, 미대륙 정말 크긴 크지만 아프리카나 남미, 오스트레일리아가 얼마나 큰지는 애써 외면하여 왔다는 것에 대하여 상당히 억울한 생각이 든다.
한국의 면적은 한반도로 22만㎢이고 영국이 약 24만㎢, 대륙으로 봐서도 유럽의 면적 1,018만㎢ 는 아프리카 3,022만㎢ 의 1/3 밖에 되지 않는다. 유럽의 타 대륙으로의 진출과 점령 그리고 그로 인한 문화적 영향이 세계로 확산 되었다 해서 둥근 지구의 중심이 어떤 한 대륙으로 고정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구의 어느 구석에 살든지 해는 자기를 중심으로 떴다가 지는 법이건만, 지구의 중심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관념의 그늘에 종속되거나 표현에 동화되어 편승으로 끝난다면 각자의 땅에서 태어난 자신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지구의 둘레는 40,075km. 웬만한 자동차 운전자들은 4만 정도는 다 운행기록을 넘겼을 것이다. 지구를 한바퀴 돈다는 것은 그렇게 비현실적인 거리가 아니고 생활에 밀착되어 있으며 현실적이라는 이야기이다.
필자는 지구의 기준점은 오늘 자신이 아침에 눈을 뜨는 그 곳이라고 각성한다. 지구의 덕분에 세계여행을 앞 둔 사람처럼 세상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지구를 대하는 부피가 두꺼워 지고 있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저작권자 ⓒ 조이시애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www.joyseattle.com/news/31931
Powered by Newsbuild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