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2026.11.8 (일)


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기사 메일전송  기사 출력  기사스크랩
 //www.joyseattle.com/news/65541
발행일: 2026/11/06  조이시애틀뉴스
[레지나 칼럼] 날벼락

그래, 그것은 날벼락이었다. 세상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마음이었다. 지난 시간 동안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랑받고 보호받으며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 행복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졌다.

내가 믿었던 행복은 진짜였을까? 우리 가족은 왜 이렇게 된 걸까? 엄마 아빠는 나를 사랑하기는 한 것일까? 앞으로 나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야 할까?

25년 만에 00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고 흥분이 되었다. 00는 25년 전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자라던 작은 꼬마 아이였다. 반짝이는 눈망울과 개구쟁이 같은 얼굴. 때로는 심통을 부리며 문을 작은 발로 차기도 하던 아이였다. 비 오는 날에는 뭐가 그리 좋은지 교회 지붕 처마 밑에 서서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에 머리를 대고 빗물을 받아내곤 했다. 그게 재미있어서였는지 다른 아이들도 00의 장난을 따라 하였다.

그 아이는 그때 다섯 살, 예쁘게 생긴 남자아이였다. 피부색이 하얗고 세련된 멋을 지닌 엄마의 손길로 멋지게 차려입은 모습은 귀공자 같은 귀여운 아이였다. 오늘은 그 00를 만나는 날이었다.

00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일찍 도착한 나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가슴이 설레었다. 00를 만난다는 생각에 조금은 흥분된 마음으로 찻집의 문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훤칠한 키와 하얀 얼굴을 가진 청년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아하, 00인가 보다? 맞았다. 문을 열고 찻집으로 들어서는 청년은 00가 맞았다.

25년 만의 만남이지만 나는 그 청년의 얼굴에서 희미하게나마 어릴 적 00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00를 마주한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어졌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할 말이 없어졌다. 반짝반짝 빛나던 그의 생기 있던 눈빛과 입가에 장난기 머금은 미소, 잘생겼던 모습은 어디로 간 걸까?

청년의 얼굴에는 거친 세상을 살면서 지친 듯한 표정과 오랜만에 만나는 나를 기억해 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겹쳐 있었다.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며칠 전 00의 엄마를 만나면서 알게 된 소식이 떠올랐다. 그렇게 다정했던 부부가 남편과의 불화로 갈라선 지 10여 년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럴 리가? 묻고 다시 되묻곤 하였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아주 예쁜 부부였다. 두 사람의 부모님도 윤택한 가정이어서 유학 생활을 하는 부부를 지원해 주었고, 살아가는 데 그리 부족함이 없었다. 그 부부의 아들을 오늘 만나게 된 것이다. 20여 년 만에 00의 엄마를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자청을 했다.

00의 엄마의 말을 빌리면 아이는 망가져 있었다. 그 잘생기고 씩씩하고 늘 개구쟁이였지만 당당했던 꼬마, 00의 요즘 사진을 보는 순간 내 가슴에 싸한 느낌이 들었다. 이 아이를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의 엄마에게 부탁하였다. 내가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00를 꼭 만나게 해 달라고. 그리고는 꼭 만나야겠다고 말하며 농담처럼 덧붙였다. “나 미국에서는 비싼 카운슬러인데, 자기네는 무료야!” 그렇게 말하면서 꼭 만나게 해 달라고 했다. 내가 00를 만나서 꼭 이 아이가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살아갈 길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00가 지금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어느새 서른 살이 되어 있었다. 엄마를 통해 전달받은 나의 만남 제안에 마지못해 응해서 나온, 키가 크고 얼굴이 핼쑥해진 세파에 지친 청년이었다. 무슨 이야기가 00에게 위로가 될까?

굳게 믿고 의지하고 사랑받던 부모가 이혼하면서 00가 잃어버린 것은 부모만이 아니다. 00가 잃어버린 것은, 상실한 것은 가족이 함께했던 평범한 일상, 집에 돌아가면 모두가 있다는 안정감, 미래에는 나도 행복한 가정을 이루리라는 꿈,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그리고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추억을 바라보는 마음의 평온함이었다.

과거에 행복했던 기억이 많을수록 상실감은 엄청나게 클 것이다. 함께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 지냈던 나도 이 부부가 이런 상황이 된 것에 대한 상실감이 큰데, 이 아이는 어떨까?

배신감. 부모님이 늘 함께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분노. 왜 우리 부모님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죄책감.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는 것은 아닌가?

공허함. 예전에는 당연했던 행복이 사라지고,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고 미래를 생각하는 것조차 무의미해지고….

외로움. 군중 속에 혼자인 것 같고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든다.

가장 힘들고 아픈 점은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사실보다 더 깊은 곳에서 아파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사랑했던 가족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야.”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는 뭐지?”

00는 부모님만 잃은 것이 아니라 부모님과 함께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과 행복했던 자기 자신도 함께 잃었다. 나는 00를 바라보며 꼭 해주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

네가 느끼는 아픔은 결코 작지 않단다. 15년 동안 행복하게 살아왔기에 상실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거야. 네가 사랑했던 가족이 변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해. 하지만 부모님의 결혼 생활이 끝났다고 해서 너의 인생까지 끝난 것은 아니야.

부모님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네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은 절대로 변하지 않아. 지금 당장 다시 행복해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슬프면 슬퍼해도 되고, 화가 나면 화를 내도 돼.

다만 이것은 꼭 기억하렴. 네가 잃어버린 것은 과거의 가족일 수 있지만, 네가 살아갈 미래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니란다. 부모님의 이혼이 너의 인생까지 무너뜨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네가 과거의 행복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지금의 슬픔도 존중하고 싶어. 우리 천천히 앞을 향해 가보자. 너에게는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행복이 남아 있거든!


레지나 채
소셜워커, 워싱턴가정상담소 소장
이메일: regina.chae3@gmail.com 

 

<저작권자 ⓒ 조이시애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l   About Us   l   기사제보   l   개인정보보호정책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