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게 된 집은 사택으로, 동네에서 가장 멋진 벽돌집이었다. 이곳 제일 부자가 기증한 집으로 방이 9개나 되고 긴 대리석 복도가 있어, 겨울에 추워 밖에 나갈 수 없을 때 두 아이가 집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 정도로 컸다.
앞마당에는 오칸토 리버 물줄기가 흐르고, 이른 아침이면 수달 가족이 물고기를 잡아 하늘로 톡 던져 서로 주고받는 모습을 보곤 했다. 밤이면 코요테와 여우가 “하울링”하는 소리가 들렸다.
집 뒷마당 길로 100m쯤 가면 작은 사슴 공원이 있었는데, 갓 태어난 사슴이 얼마나 예쁘던지!
교회를 함께 다니던 ‘쟌’ 아저씨는 우리 집에서 20여 분 떨어진 산골에 살았는데, 그 집엔 냉장고가 필요 없었다. 돌산 입구를 파서 만든 천연 냉장고가 있었고, 그 안에는 겨울 양식이 저장되어 있었다. 여름에도 돌속은 차가워 몸이 떨릴 정도였다.
쟌 부부는 곰고기·사슴고기 병조림을 한가득 우리 차에 넣어주곤 했는데, 나는 요리법을 몰라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우리 집 앞 오칸토 리버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살았고, 두 아이는 틈만 나면 다리로 가서 물고기를 불러보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곳에서의 생활은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얼마나 안정감을 주었던지. 일과 공부, 육아로 늘 피곤했던 우리에게 처음 몇 개월은 자연이 주는 느긋함과 아름다움 속에서 푹 잠을 자며 피로를 풀었던 기억이 있다.
7월에 부임했다가 10월이 되니 날씨가 차가워지고, 11월에 눈이 내리자 그동안의 감사함과 즐거움이 사라지고 “이게 뭐지?” 하는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변화 없는 장소와 사람들, 눈 때문에 나갈 수 없는 길들…. 그러다 보면 “여기 얼마나 더 살아야 하지?”, “내일은 뭘 하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정신적으로 피곤해졌다.
며칠을 곰곰이 생각해보다 ‘내가 이곳에 살게 된 뜻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우선 이곳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6·25 전쟁밖에 기억이 없으니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시카고 총영사관에 전화해 나라를 홍보할 수 있는 VHS 비디오를 보내달라 부탁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 교육을 시작했다.
한국 교실에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찾아왔고, 이 소식을 들은 인터메리지를 한 한국 여성 네댓 명도 30분 거리를 넘어 찾아왔다.
이분들은 주한 미군과 결혼해 이곳에 정착하며 거의 미국인처럼 동화되어 한국어도 잊어버린 채 살던 분들이었는데, 나의 한국어 교실과 한국 요리로 잊어버린 한국의 향수를 달래곤 했다.
물론 미국 사람들에게는 한국의 문화·예절·음식을 소개했다. 나는 1980년도에 일찍이 대한민국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셈이다.
이곳의 수많은 기억들—치즈 함께 만들기, 사슴고기 요리, 이 동네의 명물 치킨부야 만들기….
오늘 새롭고 아름다운 추억이 떠오르는 것은 12월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매년 12월 초, 동네 사람들은 커다란 솥을 장작불에 걸어 소꼬리와 치킨, 야채를 넣고 치킨부야를 만들어 먹으며 추운 겨울을 났다.
지금도 생각나는 오칸토 리버. 아이들과 다리 위에서 은빛 물고기 뛰는 모습을 바라보던 순간들.
세월이 이만큼 지나고 나서 문득 떠오르는 오칸토 리버. 그립다.
소셜워커, 워싱턴가정상담소 소장
이메일: regina.chae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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