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에 아름다운 해변이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비무장지대(DMZ)와 가깝고 통일전망대가 있기에 아름답다는 말이 와 닿지 않고 대신 경계와 긴장이 마음을 압도하였다.
그러다, ‘딜쿠샤(Dil Kusha)’라는 특이한 이름의,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88번지에 있는 오래된 서양식 붉은 벽돌집을 알게 되었다. 이 집은 1897년 조선에 건너온 최초의 미국인 광산업자 조지 테일러(1829~1908)의 아들인, 앨버트 테일러(1875~1948)와 그의 아내 메리 테일러 (1889~1982)가 1924년부터 1942년까지 살았던 곳이다.
이후, 매각되었고 현재는 2017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외부와 내부를 최대로 복원한 후 2021년 3월부터 전시관 형태로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딜쿠샤의 안주인이었던 영국인 연극배우 출신 메리 테일러는 신혼여행을 마치고 1917년 한국에 와 서대문구 충정로의 한 기와집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하였다. 부부는 어느날 한양 도성의 성곽을 산책하다 은행나무가 있는 넓은 땅을 발견하고 딜쿠샤를 지어 이사해 살았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부부는 일제의 ‘외국인 추방령’에 의하여 1942년 한국을 떠났다. 1948년 남편 앨버트가 미국에서 사망하자, 메리는 다시 한국을 찾아 남편의 유해를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하였다. 1992년 아들 브루스(1919~2015)는 메리의 한국 생활이 담긴 유고를 정리하여 ‘호박목걸이’(Chain of Amber, 책과 함께, 송영달 옮김)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1920년대, 한국에서 금을 캐고, 한강에서 물놀이를 하고, 한국의 공예품을 국외로 판매하며, 외국을 수시로 드나들며 살았던 서양인 사업가의 시선에 비친 일제 강점기 한국인 모습은 그 동선이 생생히 그려지며 마음 절이다. 메리는 서울에서의 스물두 번의 여름 동안 한 번도 서울에만 묶여 지낸 적이 없이 매해 여행과 휴양을 즐겼다.
그 장소 중 대표적인 곳이 원산항 남쪽의 갈마해변, 금강산, 그리고 화진포이다. 그렇다! 메리의 책에서 화진포 이야기가 나오자, 나도 이제 그 아름답다는 고성 해변에 가 봐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서론이 길었다. 본론은, ‘호박목걸이’를 읽고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화진포 해변에 갔다. 화진포에 도착하니 나를 맞는 관광 테마는 100년 전의 우아한 바닷가가 아니라, 이승만 초대 대통령별장, 이기붕별장, 그리고 김일성별장 등 개수 복원 (1999년과 2005년) 되어 운영되는 별장 전시관이었다.
이 별장들은 ‘화진포역사안보전시관’이라는 통칭으로 입장권이 발행된다. 구경 복이 있는 것인지, 문화유적지나 자연 명소에 갈 때마다, 가는 길도 좋아지고 뭔가 더 복원되고 새로 개관하는 곳을 많이 만난다. 이번 여행에서는 해변도 좋지만, 자연정화습지대인 화진포 생태습지가 인상적이었다. 꾸민 듯 아닌 듯 무심하게 어우러지는 수변의 갈대가 봄볕에 수실처럼 그윽하고 윤기 내는 빛을 발산한다.
전시관 중에는 이기붕별장이 아늑하고 싱그러운 느낌이 들어 마치 내 별장처럼 한동안 머물고 싶었다. 이곳은 딜쿠샤처럼 1920년대에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되었다고 한다.
초대 이 대통령 별장 및 기념관에는 다양한 자료와 전시물이 잘 구비되어 있었다. 이 대통령의 정견과 경력, 그리고 프란체스카 여사에 대해서도 소개되어 있어, 요즘도 쉽지 않은 외국인 대통령 부인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었다.
초대 대통령 취임사 전문이 액자로 꾸며져 벽에 걸려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정색한 연설문을 좋아하기 때문에 소리 내서 읽어보았다. 시대에 적용되는 좋은 내용이었다. 또한 전시관의 한구석에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그토록 유명했던 구호를 오랜만에 본다. 얼마나 흩어졌길래 그랬을까! 이제는 흩어진다는 표현보다, 되는 데까지 갈라지다 스스로 뭉치기를 관망하는 추세가 된 것 같다.
화진포 해변을 둘러보고, 각 별장의 최고 지점에 서 보고, 연잇는 그림 같은 풍경을 여기저기 지나다녔다. 하지만, 약 15킬로미터 정도 만 더 가면 어렵지 않게 닿을 통일전망대나 DMZ박물관은 가지 않았다. 다음에 단체로 대형 버스를 타고 다시 올 생각이다. 화진포의 투명한 경관으로 한껏 이완된 마음을 도저히 DMZ 테마까지 끌고 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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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soonyoun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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