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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8/10/22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 "현실을 잊게 되고 낙원 같아요"


서울 시내에서 석양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이 낙산이라고, 낙산공원 밤 산책이 좋다는 이야기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석양은 한강이 멋지고 야경은 강남 고층건물 위에 명소가 많을 텐데 굳이 뭐가 제일 좋다고 하는 것일까? 한번 가 보고 싶어진다.


낙산(駱山)은 서울을 둘러싼 내사산(인왕산, 남산, 북악산, 낙산) 중의 하나로, 능선을 따라 한양도성의 성곽이 만들어져, 동소문[혜화문]과 동대문 사이에 있다.


낙산이 대학로 근처의 산이고 공원으로 조성되고 하는 식으로 낙산을 알기 전에, 낙산이란 이름을 대학로 동숭동의 숯불갈비와 냉면 전문점의 상호로 더 먼저 인지한 것 같다.


대학로에서 대낮 공연을 보고 나오다 멀지 않은 곳에서 흥겨운 음악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나는 데로 마로니에 공원에 갔다가, 이화벽화마을 방향표지를 처음 보았다. 벽화마을이란 미술가들이 선정된 동네 집들의 담벼락에 그림을 그려 생활 환경에 활기를 불어넣는 상생의 현장작업이기에, 젊음의 창작에너지가 넘치는 대학로 주변의 벽화마을이 어떻게 꾸며졌을지 궁금했다.



시월의 어느 날씨 좋은 날, 혜화역에 내려 이화벽화마을 표지를 따라 산책에 나서 보았다. 골목을 따라 계속 올라가니 가파른 비탈길이 나왔고 길 양쪽으로 개성 넘치는 상점들과 다양한 간판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화벽화마을이 가까워 오자, 낙산공원이란 안내판이 나타났다. 낙산은 2002년 근린공원(도시화 과정에서 휴식공간의 확보를 목적으로 도시 주거지 근처에 설치한 공원)으로 개장되었으며, 2010년에는 동소문로에 진입로를 만들어 성곽길을 연결하여 공원조성을 완료하였다. 낙산공원은 이화동 벽화마을과 이웃해 있다.


우선 벽화마을 쪽으로 갔다. 집의 담벼락마다 밝은색으로 칠해져 있거나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고 카페, 마트, 음료점은 물론 동네박물관, 사진전시장 등의 구경거리도 꾸며져 있었다. 특이한 것은 방문객을 위한 옛날 교복 대여점이었다. 마치 북촌에서 관광객들이 금박은박 반짝이는 한복을 빌려 입고 고궁 나들이를 하듯, 이화벽화마을에서는 관광객들이 1960, 70년대를 연상시키는 교복이나 교련복을 입고 학생 기분을 내며 동네 여기저기를 다니며 사진 찍는 모습을 보였다. 이화벽화마을을 상징했던 돌층계의 대형 비단잉어 그림은 지금은 지워져, 볼 수 없었다. 아마도 관광으로 인해 주민들의 생활에 불편함이 문제가 된 거 같았다.


이화벽화마을 위쪽으로 암문(暗門: 성곽에 문루 없이 뚫은 문)을 통과하면 한양도성을 끼고 산책길이 계속되고 동대문 쪽으로 가게 된다. 전에 이화여대병원이었던 건물은 지금 한양도성박물관으로 탈바꿈하여 한양도성에 대한 정보와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맨날 종로와 동대문 시장의 평지에서 동대문을 올려 보다가, 낙산 쪽에서 내려오면서 언덕 위에서 동대문을 내려다보니 하늘 아래 동대문이 더욱 기품있고 멋있게 보였다.


낙산은 동대문 찻길에서 노선 마을버스를 타고 바로 정상으로 올 수도 있다. 산의 정상이라 하지만, 봉우리가 아니라 평평한 놀이마당으로 되어 있다. 이 마당에서 위쪽을 보면 한양도성 성곽인데, 밤에는 서치라이트가 켜져 성벽이 어둠 속에서 빛을 낸다. 반대쪽으로는 멀리 남산타워가 보이고, 아래로 시내 전경이 펼쳐져 방문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어둠이 찾아와도 관광객이 여전히 많고 또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지역주민들의 발걸음도 끊어지지 않는다. 낙산이 특별한 것은, 인왕산처럼 가파르지 않고, 남산처럼 노출되어 있지 않으며, 예술과 일상과 자연이 같이 잔잔히 흐르는 기운을 의식하며 서로 소외되지 않은 평온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한편 오랜 기간 낙산 복원 과정을 거치며 많은 어려움, 고민도 상상된다. 관광화로 인해 원래 살던 사람들의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부작용이 생긴다면, 혹은 내 집 벽을 배경으로 끊임없이 관광객들의 셔터 소리가 난다면, 나라면 어떻게 반응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낙산도 구경했겠다! 마음도 가라앉힐 겸, 생전 지나치기만 했던 낙산 상호 음식점에 불쑥 들어가 물냉면을 시켜 먹었다. 옆 테이블에 보니 열 살 되는 아이 둘과 그들의 엄마인 듯한 40대 여성 둘이서 아이 밥을 다 먹인 후, 어른들은 계속 밥을 먹고 있었다. 지루한 아이는 몸을 흔들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낙산이 뭐야? 여기가 왜 낙산가든이야?” 밥을 먹는 엄마는 대꾸하지 않고 계속 밥만 먹었다. “낙산은 산 이름인데 여기서 위로 좀 올라가면 있단다. 한 30분만 가면 돼. 산 모양이 낙타 등 같다고 하여 낙타산, 또는 낙산이라고 하는데, 높이는 내사산 중에서 가장 낮은 125m이란다. 옛날부터 숲이 우거지고 약수터가 있어 선비들이 많이 찾아 풍류를 즐기던 곳이지. 조선시대에는 궁궐에 우유를 조달하던 관아인 유우소(乳牛所)가 산기슭에 있어 타락산(駝酪山)이라고도 하였단다”라고, 검색한 정보를 말하고 싶었지만 남의 가족의 식탁 대화에 끼어들 수 없어 그냥 속으로만 생각을 계속했다.


돌아와 사라지지 않는 잔상은 대학로에 명멸하는 수많은 상점의 간판이다. 그들은 대학로 골목 골목의 기쁨과 고뇌로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하면서 이 지역을 팽팽한 에너지로 채운다. 그들의 마음을 파고 들어가면 결국은 대학로의 무대가 될 것이다. 실제로 간판들 사이사이 길지 않는 간격으로 소극장, 씨어터, 아트홀 등 각종 무대 공연장이 신기할 정도로 계속 나타난다.



많은 티켓 부스와 장기공연작품들의 전단 그리고 길게 서있는 관람객들은 대학로의 대단한 질적 양적 공연 역량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그들이 무대에 있기도 하고 상점 안이나 길 위에 있기도 하지만 그들의 창작 열정은 골목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동네로 이어지고 언덕을 지나 산으로 도성으로 연결되어 시내의 큰길과 만난다.


이화동 벽화마을에서 만난 한 점주는, “이 동네 있으면 어떤 때는 현실을 잊게 되고 낙원 같아요” 한다. 하늘 가까이 살면서, 도성을 두르고, 서울 풍경을 품고 있으니 그 마음 알 것 같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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