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계절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추위와 더위를 겪는다. 올 여름 한국은 100년 만에 찾아온 폭염(暴炎)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섭씨 40도를 넘는 살인적인 폭염(暴炎)이 며칠도 아니고 한 달이나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매년 한국은 연중행사처럼 여름에 장마가 진다. 장마전선이 한반도에 걸쳐 오락가락 하면서 비가 오다 안 오다하며 섭씨 30도~33도, 최고 더워야 섭씨 35도~36도 정도였었다.
그런데 올 여름은 장마전선이 한반도에 상륙하자 비를 뿌리며 그대로 북으로 사라져 그 후 계속 불볕 무더위가 맹위를 떨쳐 서울도 섭씨 40도에 육박하고 대부분 지방이 섭씨 41도~42도의 혹독한 더위로 고생을 하였다. 거기에 가뭄까지 겹쳐 전국이 가마솥처럼 찜통더위로 몸살을 앓았다.
그래도 에어컨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지 만약 그것마저 없는 옛날에 이런 더위를 겪었다면 어떠하였을까?
상극(相剋)개념을 가지고 있는 추위와 더위를 보자. 보통 섭씨 영하 20도의 한파 가 엄습해올 때 동장군(冬將軍)이 몰려온다고 말한다. 영하 섭씨 40도의 추위도 동장군이다. 추위의 맹위가 아무리 커도 역시 계급(階級)은 장군이다. 영하 60도 추위라 해서 장군이 제왕(帝王)이 되는 건 아니다.
더위는 계급이 장군이 아니고 제왕(帝王)이다. 더위(炎)의 황제(皇帝) 즉 염제(炎帝)이다. 염(炎)자를 보라. 불꽃 두 개가 이글거린다. 흔히 폭염(暴炎), 폭서(暴暑)라고 한다. 더위의 계급을 황제(왕)으로 격상한 것은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동장군이 쳐들어오면 옷을 껴입고 방에 불을 피우면 되지만 폭염은 다르다. 실인적인 더위를 냉방시설이 없던 옛날에는 막을 재간이 없었다. 그늘에 들어가 더위를 피하려 해도 체온(섭씨 36.5도)보다 훨씬 더운 40도의 그늘도 한증막이나 마찬가지이고, 물에 몸을 담근다 해도 물도 온수로 변해 있다.
밤에도 기온은 떨어지지 않고 33도 이상의 열대야(熱帶夜)여서 잠을 못 잔다. 체온보다 더 높은 기온은 참기 어렵다. 몸에서는 땀이 비 오 듯 줄줄 흐르고 불쾌하고 숨은 가쁘고 안절부절 못한다. 습기가 많기 때문이다. 바싹 말려둔 미역이 물에 담근 것처럼 물이 흐른다. 몸에 달라붙는 옷은 화학섬유이어서 몸이 가렵다. 천연섬유인 삼베, 모시 등으로 여름옷을 해 입던 옛날은 이렇게 몸에 달라붙지는 않았다.
지금은 과학문명이 눈부시게 발달하여 에어컨을 켜서 더위를 이긴다. 그런데 에어컨을 켜 놓고 오래 쐬면 소위 냉방병에 걸린다. 실제로 밖에서 더위를 견디고 나서 느끼는 체감(体感)과 에어컨을 오래 쐬고 난 후 느끼는 체감은 차이가 있다.
밖에서 더위를 이겨낸 후는 몸이 아무렇지도 않은데 에어컨을 오래 쐰 후는 두통이 오고, 몸이 무겁고, 무기력해지고 때로는 감기증세도 있다.
특히 젊은 여성은 노출된 하체에 찬바람을 쐬면 냉증(冷症)에 걸릴 수 도 있다. 에어컨을 틀고 사무를 보면 여름옷을 입었기 때문에 노출된 몸이 으스스 춥고 하체(下體)가 냉(冷)하여 부인병을 유발할 수 도 있으니 주의하여야 한다.
더위는 초복, 중복, 말복의 삼복(三伏)으로 한 달간 맹위를 떨친다. 복(伏)은 ‘엎드릴 복자’이다. 한자 모습은 개(犬)가 사람(人)처럼 누어있다는 뜻이다. 개를 보라! 피부에 땀구멍이 없어 혀를 내놓고 헉! 헉! 하며 수분을 증발하여 체온조절을 한다.
더운 공기는 가벼워서 위로 올라가고, 찬 공기는 무거워 아래에 머물기 때문에 제일 낮은 땅 즉 제일 선선한 곳에 누워 개는 더위를 피한다. 40도가 넘는 더운 날 개는 돌아다니지 않고 그늘진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더위를 피한다. 개가 그런 과학적인 상식을 교육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신기하다. 어미개가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면서 실습을 통해 그런 곳을 알려주고 누워서 더위를 피했을 것이다.
복(伏)은 더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복중 제일 더운 때가 중복(中伏)이다. 올 해는 중복이 7월 16일이고. 말복은 8월 16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복날 ‘복달임’음식인 보신탕의 식재료로 개가 희생되고 있다.
중복 날 보신탕으로 팔려가는 수많은 개를 살리려고 미국의 동물보호단체의 여자 회원이 한복 차림으로 서울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하였다. 그녀는 목매달려 죽은 개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보신탕으로 죽을 100여 마리를 매입하여 그 중 5마리를 미국으로 입양 했다.
개를 가족처럼 한 방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 미국 사람이 개를 잡아 보신탕으로 먹는데 대해 악착같이 반대하는 건 당연할지 모른다. 그들에게 개는 애완동물이자 반려동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조상들에게 개는 애완동물이 아니었다. 한 방에서 자고 먹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개를 기르는 목적은 도둑을 지키는 것이기에 밖에서 길렀다. 어린애 배설물을 먹어 청소해주어 똥개라고 부르고 이름도 없이 개를 싸잡아 ‘워 리’라고 불렀다.
개는 소, 돼지, 닭처럼 가축으로 잡아먹는 식용견(食用犬)에 불과했다. 우리가 미국사람 보기에 창피할 것도 없다. 이런 문화적 차이를 미국 사람들이 이해하여 주었으면 한다.
우리 지방에는 옛 부터 ‘삼복더위에 오는 손님은 호랑이 보다 더 무섭다’는 속담이 있다. 더운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삼복에 손님을 치른다는 것은 보통 고역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현대주택에 에어컨 시설이 되어 있다면 모르지만 옛날 가난하고 열악한 집에 살 때 삼복에 손님이 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손님이 무섭기까지 했을 것이다. 손님은 한 끼 먹고 가면 1등 손님, 1박(泊)하고 2끼 먹고 가면 2등 손님으로 구별한다. 1등 손님 대접이 최고이다.
사돈 손님은 분명 2등 손님일 것이다. 사돈손님이 안 왔다면 옷도 가랑이가 무릎까지 오는 남자 홀 바지인 ‘잠방이’를 시원하게 입고, 또 가랑이 통이 넓은 여자 ‘고쟁이’ 옷을 입어도 될 것이고, 또 보리 찬밥에 고추장 넣고 슥슥 비벼 풋고추 따서 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되는데 체면상 그럴 수는 없고 두꺼운 옷 입고 삼복더위에 부엌에 들어가 불을 지펴 밥을 지어야 하니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은 비 오듯 하는데 또 반찬은 무엇으로 대접할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다.
이러니 삼복(三伏)에 오는 손님이 호랑이 보다 더 무섭다는 속담이 생길 만도 하다.
이성수 (워싱턴주 페더럴웨이 거주)
수필가, 서북미문인협회 회원
<저작권자 ⓒ 조이시애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www.joyseattle.com/news/35268
Powered by Newsbuild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