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애틀에는 싱싱한 연어가 남가주보다 훨씬 흔하다. 가격 차이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시애틀에 와서 연어를 먹을 때마다 신선함과 넉넉함에 마음이 흐뭇해진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내가 잘 아는 분 가운데 웨어하우스 회사에서 쌜몬 해추리 연구를 담당했던 분이 있었다.
그 분 이 연어의 회귀본능에 대해 재미난 설명을 해주었다. 그분 말에 의하면 연어를 수백만 마리 부화시켜 양어장에 넣고 풍부한 영양공급을 하여 짧은 기간에 크게 성숙시킨다. 연어 치어가 어느 정도 자라나 이제는 바다에 내보내도 될 만큼 성장을 하면 바닷가에 있는 큰 양식장으로 옮긴다. 이곳에서 10일 정도 머물게 하다가 수백만 마리의 연어 치어를 태평양 바다에 풀어 넣는다.
이 연어들은 태평양으로 들어가 북 태평양 쪽으로 올라가며 성장하게 된다. 그 과정에 다른 고기에 물려 죽기도 하고 어부에게 잡히게도 되고 하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연어는 일 년 쯤 지나면 산란을 위해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자신이 풀려났던 마지막 그 양어장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양어장으로 다시 돌아 온 연어가 이 회사가 얻는 수입이 된다. 방출 한 연어의 2% 정도가 돌아오면 이 회사의 수익은 이익도 손해도 아닌 본전이 된다.
그러나 3% 4%--가 돌아오면 이 회사는 큰 수익을 올리게 된다. 방출하는 치어에 연구용으로 칩을 심어 이 연어의 생존율과 이 연어가 어디로 갔다 오는지를 알아낸다. 연어가 어떻게 자기가 바다로 나갔던 그 처음 어장으로 정확하게 돌아오는지 아직은 모르지만 이런 연어의 회귀를 회귀본능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연어가 아닌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회귀 본능이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나이가 들수록 고향이 그리워지는 향수병을 계속 앓고 있다. 은퇴 후 일 년에 한번 정도는 한국에 가서 고향에 가본다. 너무나 변한 고향 동내 모습에 내가 그리워한 마음에 배신감을 느끼곤 하지만 그래도 고향은 고향이다. 그래도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오면 또 다시 고향이 그리워진다.
나는 요즈음 씨애틀에 와서 비가 오는 우중충한 날에 쌀을 아주 조금 넣고 보리쌀로 꽁보리 밥을 만들어 먹는다. 물론 충청도식 된장찌개를 함께 끓여 먹는다. 큰 대접에 꽁보리밥을 담고 된장찌개를 넣고 고추장을 넣어 썩썩 비벼먹는다. 이 꽁보리밥은 내가 어려서 고향에서 먹었던 그 꽁보리밥의 맛은 아니지만 아주 어느 정도 그 때 그 맛이다.
고향 집에서 논에 심은 벼가 시퍼렇게 자라날 때면 아주 더운 여름철이다. 이때는 한 번 꼭 논을 매주어야 한다. 논에서 더운 바람이 날아오르고 땡볕이 내려 쪼이는 가운데 할아버지와 일군들이 땀을 흘리며 논을 맨다. 어머니는 보리밥을 한 솥 지어 함지에 퍼 담고 삼베 보자기물에 축여 밥함지를 덮는다. 그 위에 바가지를 사람 숫자대로 얹어서 머리에 이고 논으로 점심을 가지고 간다.
애호박을 따서 숭숭 썰어 넣고 멸치 몇 마리로 맛을 낸 된장찌개와 고추장 단지도 함지 위에 올려 져 있다. 나는 큰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들고 어머니를 딸아 논으로 간다. 논두렁 길가에 앉아 점심들을 먹는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바가지에 담은 꽁보리밥에 된장을 넣고 고추장을 흠뻑 넣어 벌건 비빔밥을 꿀처럼 달게 먹는다.
나는 조금 옆에 떨어져 앉아 어머니와 함께 역시 꽁보리밥 된장 비빔밥을 먹었다. 아 그 꽁보리 밥, 비빔 밥 맛, 나는 다 비운 바가지를 박 박 긁어 먹으며 더 먹고 싶지만 꽁보리 밥 함지는 텅 비어있곤 했다. 아 그 꽁보리밥 맛, 나는 지금 씨애틀에서 그 흉내를 낸다. 이것도 연어가 제 고향 찾아가는 회귀본능 같은 것 일가.
올해 4월에 연어 같이 고향이 그리워 다시 고향엘 갔다.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면 한터마을, 한터마을은 새롭게 격을 높인 이름이고 원래대로 하면 한탄말이다. 이 한탄말은 내 이메일 주소이기도 하다. 한탄말에는 어머니 아버지 산소가 있고 내가 6.25사변 때까지 살았던 집도 있다. 지금은 이 한탄말에 나와 나이가 동갑인 오촌 당숙이 살고 있다. 나는 한탄말에 들릴 때마다 당숙의 늙은 얼굴에서 내 얼굴을 본다. 많이 늙었구나.
학교에서 공부는 별로였지만 노래를 참 잘 불렀던 아저씨, 정월 대보름, 달을 바라보며 구장 네 집 담벼락을 등지고 <우리가 새라면 우리가 새라면 나라 가리, 저 건너 산 너머 저 건너 강 너머 하늘 끝까지.> 참으로 곱게도 노래를 잘했던 아저씨, 이제는 햇볕에 그을려 구리 빛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다. 저 얼굴이 내 얼굴인 것을 생각하면 참 나도 꽤 오래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문둥이 시인 한하운은 고향 그리워 필릴리리 하는 시를 썼고 시인 정 지용은 꿈에도 잊지 못하는 고향을 그리며 주옥같은 향수의 시를 남겼다. 모든 사람에게 고향이 그리운 것은, 그리고 고향에 대한 추억은 아프고 쓰렸던 추억도 다 곱게 포장되어 아름답기만 한 것은 필경 연어가 가자고 있는 회귀본능 같은 것이 사람에게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점심으로 꽁보리밥에 된장 고추장으로 비빔밥을 해 먹었다. 씨애틀에는 지금도 비가 내린다. 씨애틀의 비는 고향의 봄비 같아서 실치가 않다. 아니 씨애틀 비는 참 좋다. 고향 그리워 필리리리. 눈에서 금방 눈물이 떨어질 것 같다. 고향 그리워 필릴리리.
김상구
워싱턴주 기독문인협회 회원
<저작권자 ⓒ 조이시애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www.joyseattle.com/news/28332
Powered by Newsbuild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