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지금 레지나 씨 여기서 월급 얼마 받아요? 아참, 레지나 씨가 그동안 나에게 너무 잘해주었으니 내 생각을 후하게 해서 월급은 만불을 주면 될까? 라면서 물어오셨다. 나는 “그럼요, 만불이면 충분해요.” 라고 대답했다.
내 대답에 “그래, 그럼 만불 약속할 테니 종이 한 장을 달라.” 하신다. 내가 종이 한 장을 갖다 주니 00씨는 종이 한 구석에 눈에도 잘 안 띄게 ‘만불’이라고 쓰고 동그라미를 쳐놓는다. 그리고는 그동안 수고한 레지나 씨에게 특별 선물로 빨간색 컨버터블 차 한 대를 뽑아준단다. (왜 빨간색 컨버터블, 오픈카를 00씨가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 그럼 레지나 씨가 내 수행비서로 함께 한국으로 가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00씨에게 “그런데 어떡하지요, 제 아이들과 남편은…?” 하고 물었다. 내 말을 들은 00씨의 얼굴이 별안간 단호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아이들과 남편은 버려요!”
그리고는 일장 훈계를 한다. “레지나 씨, 대통령의 수행비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귀한 일을 하러 가는데 무슨 아이들 걱정, 남편 생각을 하느냐”며 단호한 얼굴로 “아이들과 남편은 버리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던 00씨가 7일째 안 보여서 실종 신고를 하고 기다리는데, 타코마에 있는 병원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00씨가 어떻게 시애틀에서 타코마까지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병원에서는 00씨가 타코마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것을 사람들이 신고해 메딕차가 병원으로 이송했는데, 검사 결과 온몸에 암이 퍼진 상태라고 한다.
병원 직원은 실종신고 담당 카운슬러가 ‘레지나 채’로 확인되어 전화한다고 하면서, 00씨가 “며칠 못 갈 것 같다”는 위험한 상태라고 말했다.
나는 00씨를 만나러 가기 전, 잠깐 한국 마켓에 들러 인스턴트 한국 음식 몇 개와 00씨가 평소 좋아하던 호박죽 등 몇 가지 죽을 사서 병원으로 갔다.
입원 중인 00씨를 보는데, 00씨는 병원에서 자주 발작을 일으켜 온몸이 침대에 묶여 있는 모습이었다. 마음이 아파 간호원을 불러 “이분은 위험한 분이 아니니 묶은 것을 풀어달라”고 요청했지만, “규칙상 풀어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병실로 들어서며 00씨 이름을 부르자, 살짝 고개를 돌린 00씨가 나를 발견하고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레지나 씨가 나를 엄청 좋아하나 봐. 여기까지 쫓아왔네!”
나는 직원에게 도움을 받아 사온 호박죽을 데워 00씨에게 먹이려 했지만, 이미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상태의 00씨는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00씨, 우리 비행기 타고 한국에 가야죠?” 그 말에 순간적으로 00씨의 눈에 약한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나는 숫가락에 호박죽 한 스푼을 가득 떠서 허공에 올리며 말했다.
“자, 00씨! 지금 비행기가 뜹니다요. 활주로가 필요하니 입을 벌리세요. 윙~ 윙~ 윙윙~” 노란 호박죽 한 스푼은 허공에서 비행기가 되어 하늘에서 몇 번 회전하며 ‘윙윙’ 소리를 내더니,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띠고 입을 벌리고 있는 00씨의 입안—그 비행장 활주로에—살포시 안착했다.
나의 장난스러운 행동 덕분인지, 00씨는 호박죽을 1/3 정도 맛있게 받아먹었다. 그것이 00씨의 마지막 식사였다.
00씨가 세상을 떠난 후, 가끔 마켓에서 인스턴트 호박죽을 우연히 발견하면 내 가슴에 슬픈 파도가 밀려와 명치끝이 아프게 메이면서 눈물이 난다.
소셜워커, 워싱턴가정상담소 소장
이메일: regina.chae3@gmail.com
<저작권자 ⓒ 조이시애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www.joyseattle.com/news/61263
관련기사
Powered by Newsbuild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