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코로나 바이러스 19 때문에 그동안 못 갔던 솔덕 온천을 삼 년 만에 다녀오는 날이다. 경비 일체를 교회에서 지원해 주고 목사님을 비롯하여 많은 성도들이 후원해 주어 풍성한 가운데 일일 관광 일정으로 다녀오게 되었다. 30명의 S교회 노인반 회원들은 초등학생들 소풍가는 것처럼 즐거워했다.
15인승 밴 2대에 나눠 타고 출발할 때 담임 목사님이 기도를 해 주셨다. 연록색 신록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는 101고속도로를 따라 훼더럴웨이에서 솔덕 온천까지 중간 조금 더 지난 곳에 포트 엔젤레스(Port Angeles)란 항구 도시가 있다. 휴게소가 따로 없어 그곳에 있는 맥도날드의 화장실에 들렀다. 여러 사람이 우르르 몰려 화장실만 이용하고 그냥 나오기가 미안하여 커피를 사서 마셨다.
차를 마시고 30분가량 101하이웨이를 달려가니 오른쪽으로 크레센트 호수(Lake Crescent)가 보였다. 이 호수는 최대 수심이 201m로 워싱턴 주에서는 가장 깊은 호수이다. 올림픽반도의 빙하호수로 초승달의 모습을 닮았다 해서 초승달호수라 부른다.
산그늘에 반사된 검푸른 색은 보기에도 깊은 호수임을 짐작케 하였다. 호수가 굉장히 커서 차는 13km의 꼬불꼬불한 호반 길을 따라 20분도 더 달려갔다. 호수를 지나 한참을 달려가서야 왼쪽에 솔덕 온천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이고 그 길로 접어 들면서 101번 고속도로와 헤어졌다.
작은 인형의 집 같은 안내소에서 빨간 옷을 입은 예쁜 젊은 아가씨가 국립공원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인형의 집에서 2.4마일(3.8km)을 힘겹게 달려가 솔덕 온천에 도착했다. 길 양편에 고사리가 자라고 있고 숲은 하늘을 찌를 듯이 삼베나무처럼 빽빽이 우거져 낮인데도 어두컴컴하였다. 그 속에서 금방이라도 곰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올 것만 같았다. 숲속 길 낭떠러지 밑으로는 올림픽산맥에서 흐르는 빙하수가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소리 내어 흐르고 있었다.
교회에서부터 3시간 반 동안 차를 타고 오느라 시달렸지만 우리 노인들은 비교적 건강하였다. 차 안에서 김밥과 떡으로 요기를 한 후에 간단한 입욕수속을 마치고 우리들은 서둘러 온천탕에 몸을 담갔다. 섭씨 40도의 뜨끈한 물이 나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미끈미끈한 촉감이 달걀 썩은 냄새와 더불어 여기가 몸에 좋다는 솔덕 온천이란 것을 실감케 하였다.
온몸을 온천수에 맡기고 눈을 감고 있으니 한국의 도고온천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달걀 썩는 유황 냄새가 똑같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가을, 한국에 갔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다녀갔다고 해서 지금도 유명한 그 도고 온천에 들렀는데 냄새는 두 곳이 비슷하지만 미끈미끈한 촉감은 솔덕이 훨씬 더 좋았다.
솔덕(Sol duc)온천은 인디언 말로 ‘반짝거리는 물’이라는 뜻이다. 즉 미국 워싱턴주 올림픽 국립공원에 보석과 같은 온천이 있다는 의미이다.
1880년 대 ‘데오 도어 모르처’란 사람이 이곳 원주민들을 간호해 주었는데 그에 대한 보답으로 원주민들은 마술의 물(magic water, 지금의 솔덕)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 이 물은 관절염, 피부병, 위장병 등에 탁월한 효험이 있어 ‘마술의 물’(magic water)이라고 불렀다. 모르처는 그곳에 통나무집을 짓고 사람들이 와서 노천에서 마술의 물로 치료받도록 하였다.
‘모르처’가 죽은 후 1912년 ‘마이클 얼리스’라는 사람이 그 땅을 사들이고 개발하여 오늘의 솔덕 온천을 이루어 놓았다고 한다. 한국 같으면 대대적으로 크게 개발할 터인데 솔덕 온천은 100년 전 그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 솔덕 온천은 야외 온천탕 3곳과 풀장 1개로 되어 있다. 15가지의 미네랄 성분이 들어 있는데 그 중 두 가지 성분이 아주 유명하다. 즉 피부를 촉촉이 매끄럽게 하는 것은 실리콘(규토) 성분이고, 달걀 썩은 냄새가 곧 유황성분인데 중간에 맹물을 섞지 않는 질 좋은 원액(原液)이라고 한다. 대개의 온천은 원액에 뜨거운 물을 희석한다.
곰국으로 말하자면 물을 타지 않은 ‘진국’인 셈이다. 땅에서 솟아나는 그대로의 온천수이기 때문에 솔덕 온천이 유명하다. 야외온천탕 근처만 가도 유황냄새가 진동을 하고 욕탕에 들어가면 매끈거리며 유황성분이 몸을 기분 좋게 감쌌다.
지난 번 왔을 때 온천에 들어가 몸을 푹 담그고, 머리도 적시고 샤워하지 않은 채 그냥 집에 가서 24시간 후에 목욕을 하였더니 피부가 매끈거리고 머리의 가려운 증세도 사라졌다.
다리가 아픈 나는 온천욕의 효과를 보려고 오래 푹 담그고 머리도 온천물로 적셨다.
야외 온천탕에 들어가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봄이면 단체로 솔덕 온천을 여러 번 왔지만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은 처음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원시림 사이에서 보슬비가 소리 없이 내린다. 아랫도리는 뜨거운 탕 속에 푹 담갔는데 어깨며 머리, 목은 싸늘한 비를 맞으니 온탕과 냉탕을 동시에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더욱 상쾌하였다.
뜨거운 온천물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우윳빛 하얀 김이 아지랑이처럼 뿌옇다. 빗방울이 커진다. 원시림 사이 드높은 회색빛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방울은 가속도가 붙어 파란 온천물위에 떨어지면서 반주 소리 같은 마찰음을 내며 물위에 원을 그린다. 이 원은 점점 커지면서 다른 무수한 원과 부딪쳐 사라지고 또 새로운 원을 그리며 수면 위에 멋진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비 오는 날에만 볼 수 있는 진풍경 속에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나는 행복감을 느꼈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지금 내리는 저 비는 진짜 가라고 내리는 ‘가랑비’이다. 2시간 전만 해도 있으라고 ‘이슬비’가 왔는데 이제는 모두 가야 한다고 ‘가랑비’가 내린다.
내년 이맘 때 또 온다는 기약을 하고 떠나가야 하니 아쉽기만 하다. 노인 중에 건강이 안 좋은 회원은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온천 약효가 있으라고 샤워하지 않은 채 옷을 갈아입고 차에 올랐다. 어서 가라고 가랑비는 손짓을 하며 계속 내렸다.
안락한 승용차도 아니고 털털거리는 15인승 밴을 타고 자그마치 서울에서 부산 왕복거리를 다녀왔으니 몸이 붕 떠 있고 좌우로 흔들거리며 어지러웠다. 이 증세는 차멀미도 아닌데 한동안 지속되었다.
무사히 소풍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비 오는 날씨였지만 운치를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이성수 (워싱턴주 페더럴웨이 거주)
수필가
서북미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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